제주도에는 구석기·중석기·신석기에 이르는 문화 층위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을 만큼, 오랜 세월을 거치며 탐라의 역사가 이루어져왔다.
제주는 고인돌의 섬이기도 하다. 가파도에는 무려 40여 기가 있다. 한반도 본토에서 내려오던 석기인들이 더 내려가지 못하고 가파도에서 행로를 멈추고 정착한 것으로 여겨진다.
제주사 정립의 목표를 내걸고 개최된 ‘탐라사 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 심포지엄에서 제주출신 석학인 신용하 교수는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놓은 바가 있다.
BC 1세기에서 AD 1세기 사이에 양맥(良貊)족과 부여(夫餘)족 일부가 바닷길로 시차를 두면서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AD 65년에 일어난 한라산 폭발 시 한반도 남해안에서도 밤에는 붉은 기운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남해안에서 제주도는 청명한 날은 가시거리 안이므로 민족이동이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시기를 조금씩 달리하며 제주도에 도착한 양맥족, 고구려족, 부여족은 각각 그들의 인솔 족장인 을나(乙那)의 지휘 하에 정착생활을 하였을 것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자 한라산 북쪽 모흥혈에서 회의를 하여 BC 1세기에서 AD 1세기에 연맹왕국으로서의 나라를 건국하였을 것이다.
신용하 교수에 의하면, 을나는 맥족에서 사용하던 왕과 족장의 호칭이다. 부여·양맥·고구려는 물론 동예·읍루·여진도 왕, 군장, 족장을 을나라고 칭하였다.
삼성신화에서 탐라를 개국한 3을라를 번역하면 양맥족의 군장, 고구려의 군장, 부여족의 군장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고·양·부가 북방에서 이동해왔다는 증거로, 신용하 교수는 ‘을나’라는 족장 호칭을 제시한다.
'출처 : 제이누리(http://www.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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