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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사에서 왜 고구려는 멋진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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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7윤복현 조회수 465

한 고구려는 내분으로 패망!이적세력 반드시 척결!








한민족사에서 왜 고구려는 멋진 나라인가?


쉽게 잊어 버리는 오늘날의 국민성이 과연

한민족의 국민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고구려인들은 결코 과거치욕을 잊지 않았다!

안보를 더욱 튼튼히 하여 치욕을 응징,궤멸했다!
모용황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굵은실선 : 모용선비왕 모용황 주력부/ 점선 : 전연 특공연대/가는 실선 : 고구려 고무장군의 추격로

침략도발로 고구려 영토를 유린하고 미천왕의

시신까지 도굴하고,태후.왕후를 포함하여 고구려

백성 5만을 인질로 끌고가 고구려에 치욕을 안겨준

철천지 원수 오랑캐 모용선비족을 철저히 응징하여

궤멸시켜 버린 광개토호태왕처럼 우리는 무도한 오랑캐의

침략도발과 협박에 결코 굴복하지 않고 철저히 응징하고

굴복 궤멸시키는 고구려의 상무정신을 가진 한민족이다!
고구려 모용선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김정은의 견노릇하고 있는 사이비 야권에

맞서 고분분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북핵 대응에 더 주도적이고 단호해야 한다!

사드가 아니라,전술핵 배치까지 나가야 한다!

트럼프가 대통령되어 미군철수시키면 당하는건

대한민국이다! 8.15이후 우리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고 일본이 일어나니

조선아 조심하라고 했다! 결코 빈말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적을 이롭게 하여 패배를 안겨 주는 내부의
 
적은 인정사정없이 형법에 따라 처형을 해야 한다!











경주 흉노무덤군의 주인은 모용선비에 흡수된 흉노

-신라왕족 후손인 김일성의 선조는 바로 이 때 남하한 흉노족이다-

2세기 초원의 주인은 선비족이고,분열된 흉노족은 선비족에 흡수되었다!

4세기에 등징하는 법흥왕의 성과 이름은 김씨가 아니라 모+즉지로 모씨다!

이들은 본래 흉노족인데, 선비족에 흡수되어 왕족인 모씨로 성씨를 바꾸었다 본다.

신라왕조에서 김씨 성은 진흥왕 이후 등장한다.본래 흉노 성씨로 바뀐거다!

법흥왕의 아버지 지증왕은 흉노족의 풍습인 순장을 금지하고 농경을 정착함

신라왕조사/부여황족 박혁거세 왕조=>마한계 석씨왕조=>흉노 김씨왕조

고구려에 쫓겨 내려 온 흉노 기마군은 석씨왕조를 찬탈하고 김씨왕조 세움

흉노 기마군은 경주에 김씨 시조인 김일세 세력의 도움으로 족보작업을

했고,김춘추 아들인 김법민(문무왕)은 비로소 비문에 자신들은 투후 김일제

후손임을 기록하였던 것이다.신라왕조를 세운 흉노기마족은 성골이 되었을

것이고,경주에 정착한 김일제 집단은 귀족으로 진골이 되었을 것이다.
경주적석목곽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자료]모용선비족에 흡수된 흉노족의 동해안 이동 루트

우리는 누구인가 1 : 고구려-전연의 전쟁 1 - 송진완  http://tadream.tistory.com/4450
우리는 누구인가 2 : 고구려-전연의 전쟁 2 - 송진완  http://tadream.tistory.com/4451
우리는 누구인가 3 : 선비족은 누구인가? - 송진완  http://tadream.tistory.com/4453

굵은실선 : 모용황 주력부대
점선 : 전연 특공연대
가는 실선 : 고구려 고무장군의 추격로

이번 칼럼에서는 지난 시간에 잘못 얼버무렸던 부분을 바로 잡을까 합니다. 고구려가 선비족에게 유린당하는 과정에서 기억으로만 추정하다보니, 제가 참고하고 있는 책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의 내용을 잘못 전달한 점이 있어서..아예 책의 해당부분을 스캔해서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지금 보시는 그림은  책의 저자인 장한식씨가 세운 가설을 설명하는 것으로서, 선비족이 고구려를 어떻게 침공했고, 특공연대가 어떻게 신라 땅으로 흘러들었나 하는 루트를 표현한 삽화입니다.
 
굵은실선과 점선은 전연 모용황 군대의 고구려 이동루트 입니다. 굵은실선은 모용황이 직접 이끄는 주력부대였고, 점선이 바로 전연 특공연대의 루트입니다. 삼국사기등 문헌에 의하면 왕우-장사라는 두명의 장군이 이끌었다고 합니다. 가는 실선은 고구려 고무장군의 추격로 입니다.

그림의 설명을 좀 드리겠습니다. 보시다시피 모용황의 군대는 양동작전을 폅니다. 옥저성까지는 주력과 특공대가 함께오다가 옥저성에 이르러 두갈래로 날개를 폅니다. 이처럼 양동작전을 구사한 이유는 고구려의 수도 환도성으로 이동하기 위한 루트가 북로와 남로 2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전선형성의 가능성이 2곳이었습니다.
 
이때 북로는 남로에 비해 비교적 평탄했고 남로는 험준한 산지가 많았습니다. '2가지 루트중에서 어느곳으로 주력군을 보낼까'.... 고구려군은 당근 고민했겠지요. 그리고 상식적으로 판단했겠지요.  기마병이 대부분인 전연의 군대는 산지보다는 평탄한곳에 주력부대를 파견할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고국원왕의 동생인 고무장군이 이끄는 5만의 고구려 주력군은 북로에 대기하고, 고국원왕은 1만명 정도의 상비군으로 험준한 남로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전연 모용황의 이복형 모용한(募容翰)은 작전참모로서 고구려의 허를 찌를것을 제안하고, 모용황은 상당한 리스크를 안고 모용한의 작전을 승인합니다. 이 시대에 중국중원을 휩쓴 유목민족이 분명 야만족은 아닙니다만, 보시다시피 위험한 전술을 흔쾌히 선택하는 등 매우 터프합니다. 50:50의 확률이었죠. 잘되면 대박이고 못되면 전멸입니다. 바로 이러한 야인적인 호방함때문에 그들이 세운 왕조의 역사는 길어야 몇십년이었습니다. 전연도 40여년 남짓 존속했을뿐입니다.

어쨋거나 저쨌거나, 고구려의 허를 찔러 험준한 남로로 이동한 전연의 주력군 4만여 기마병은 용케 산악지대를 통과하여 고구려 1만 예비병력을 순식간에 제압하고 환도성을 유린합니다. 고국원왕은 어안이 벙벙한채 깊은 계곡으로 도망갑니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주력군과 맞딱드린 전연의 특공대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들은 분명 자신들이 양동작전의 미끼였다는것을 알았을겁니다. 더구나 고구려의 주력군 5만명과 붙어봐야 승산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정면으로 돌파하지는 않고 충돌직전에 방향을 남쪽으로 틉니다.(위 그림참조) 자신들의 주력군과 합류하려는 의도였을겁니다.
 
그러나 고구려군이 그냥 도망가게 놔두지 않았을겁니다. 고구려는 당시 동북아시아의 군사대국으로서 농경이 주업이 아니라 주변을 약탈하는 것이 최대 국가사업이니 터프하기는 전연과 매한가지였을겁니다. 곧 전연의 특공대를 따라잡았고 다급해진 특공대는 본진과 합류하지 못하고 한반도 이남으로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개마고원을 넘어 정신없이 도망가던 특공대는 얼마후 고구려군이 더 이상 추격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고구려 주력군도 그때는 이미 수도 환도성이 함락된것을 알고 전연의 주력군쪽으로 이동했을테지요.
 
전연 왕 모용황은 고국원왕의 항복을 받고자 했으나, 고국원왕은 항복요구를 거절합니다. 고무장군의 주력군만 도착한다면 이 치욕을 씨을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모용황도 이를 잘 알고있었습니다. 항복은 받지 못했지만 충분히 고구려의 기를 꺽었고, 더구나 더이상 시간을 지체한다면 다른 유목민족의 침공을 받아 빈집털이를 당하거나, 고구려 주력군과 맞붙어 자칫 퇴로마저 차단될 위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용황은 용의주도하게 고국원왕의 마누라-엄마등 수많은 인질과 고국원왕의 아버지 미천왕의 시신까지 파혜쳐 들쳐업고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고구려군의 추격을 저지시키기 위한 볼모였던 것이죠... 고국원왕은 비록 항복을 하진 않았지만, 인질과 미천왕의 시신을 돌려받기위해 전연의 신하국이 될것과 조공을 바칠것을 모용황에게 맹세하게됩니다.
 
이때..하나 짚어봐야 될것이 있죠...아까 개마고원을 넘어 한반도 남쪽으로 도망간 전연의 특공대는 어디로 갔을까요? 방향을 돌려 전연으로 복귀하기란 불가능했을겁니다. 모용황에게 철저히 유린당한 고국원왕이 퇴로를 열어줄리도 없거니와 선비족 스스로 복귀가 불가능하게 되었을음 깨달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계속 도망갔을겁니다. 개마고원을 넘으면 바로 동해안의 평탄한 육로와 만나게되고 이길로 바다를 따라 달리면 부산까지 갑니다. 오늘날 동해선 철도가 바로 이 루트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십여년후 한반도 남쪽산골의 시골국가 신라에서 갑자기 북방유목민족의 문화가 발생합니다. 이것이 본 컬럼의 요지이지요...고구려와의 전쟁중에 이탈한 선비족 군벌이 신라까지 도망가 왕권을 찬탈한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선비족 특공대의 장군은 왕우와 장사라고 했는데, 왜 제가 지난칼럼에서 모용한이 특공대를 이끌었다고 했을까요? 다음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선비족 관련글
모용선비의 역사 (연나라, 전연, 후연, 북연)  http://tadream.tistory.com/607  
우리는 누구인가 1 : 고구려-전연의 전쟁 1 - 송진완  http://tadream.tistory.com/4450
우리는 누구인가 2 : 고구려-전연의 전쟁 2 - 송진완  http://tadream.tistory.com/4451
우리는 누구인가 3 : 선비족은 누구인가? - 송진완  http://tadream.tistory.com/4453
우리는 누구인가 4 : 선비족의 동해안 이동 루트 - 송진완  http://tadream.tistory.com/569
선비 (민족) - 위키  http://tadream.tistory.com/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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