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민의 시사탱크 프로그램 이미지

시사

장성민의 시사탱크

세상을 듣는 귀!
세상을 보는 눈!
시사토크의 새로운 장이 열린다!
























장성민의 시사탱크 - 참여 게시판

장성민의 시사탱크 - 참여 게시판
[신화와 역사]이스라엘 민족신 여호와는 한국공주 여와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2016.01.10 윤*현 조회수 356




자유 대한민국으로 투항하기 바랍니다




미륵불 동방의인이 출현할 때는 우담바라가 핀다고 불경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북한 권력층은 철부지 김정은을 포박하여


국제사법재판소에 넘기고 대한민국에


투항하여 자유와 안전을 보장받기 바랍니다!


김정은 일당을 대변하는 대한민국 내부의


모든 종북-숙주 정치세력과 정치꾼들은


국민징벌로 몰락할 것임을 경고합니다!






국방부는 멀티 전광판으로 북한의 병사들에게도


한류의 자유혼을 보여 주기 바란다!


20151228063444363yznk.jpg


산뜻-과감-선명성이 아름답고 당당하다


20151228063547366owiz.jpg


고대 지나족은 한국공주 여와가 얼마나

 

이쁘고 영리했으면 신격화 시켰을까나?

 



[신화와 역사]태호복희와 여와는 한국인

 

지나대륙에서 신격화된 문명창시자 태호복희는 한국 태우의 한웅천왕의 막내 황태자다


지나대륙에서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호흡을 불어 넣은 창조신으로 신격화된 여와 역시


한국 태우의 한웅천왕의 공주다.여와신앙이 중동으로 전파,이스라엘 민족신으로 정착됨

 

 

중국의 학자들조차 자신들의 시조가 동이족임을 고백하고 있는데, 이제 이러한 사실을 우리의 역사와 문헌을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기로 하자.

 
태호복희는 삼황오제 중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제왕으로, 그가 동이족 이었다는 것은 앞서《고사변》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런데 한민족의 정통사서인 《환단고기/태백일사》는 태호복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환웅 천황에서 5대를 전하여 태우의太虞儀 한웅이 있었다.(.......)아들을 12명 두었는데 장자는 다의발多儀發 한웅이라 하고 막내는 태호太 라 하니 복희伏羲라고도 한다.』

삼황오제 중 첫 번째인 태호복희가 바로 밝땅국(환단국/배달국)의 5대 태우의 한웅천황의 막내아들이라는 분명한 기록이다. 태호복희는 5대 한웅의 막내로 태어나 배달국에서 雨師라는 관직에 있다가 중원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태백일사》는 이러한 사정에 대해 여러 문헌을 인용하여 자세히 밝히고 있다.

『《밀기密記》에 이르기를, 복희는 신시에서 태어나 우사雨師의 직을 세습하고 뒤에 청구靑邱와 낙랑樂浪을 거쳐 진으로 옮겨 갔다.(......)그의 후손들이 풍산風山에서 나누어 살았으므로 풍씨로 성을 삼았다. (......)지금 산서성의 제수濟水에 희족羲族의 옛 거처가 남아 있다.』

『《대변경大辯經》에 이르기를, 복희는 신시로부터 나와 우사가 되었다. 신룡神龍의 변화를 보고 괘도掛圖를 만들고 신시의 계해癸亥로 시작되는 역법易法을 갑자甲子로 시작하는 것으로 고쳤다. (...) 복희의 무덤은 지금 산동성 어대현魚臺縣 부산鳧山의 남쪽에 있다.』

태호복희는 배달국의 5대 한웅천왕의 막내로 태어나 배달국(신시)에서 우사라는 직책에 있으면서 역易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환역桓易이며, 후대로 오면서 이를 복희팔괘伏羲八卦 혹은 선천팔괘先天八卦라고 부르게 되었다. 결국 고대 동양의 음양 오행설은 한국문화에서 나온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러한 체계는 천부인 3개의 가르침에서 파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서량지 교수도《중국사전사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역법曆法은 사실 동이東夷가 창시자이며, 소호少 (?) 이전에 이미 발명되었다.』

또한 중국의 학자 필장복은 자신의 저서《중국인종북래설中國人種北來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방 인종의 오행五行관념은 원래 동북아에서 창시된 것을 계승한 것이다.』

역법과 음양오행이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생각하면, 중국 학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결국 역법과 음양오행이 모두 동이족의 문화였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한편 복희의 성이 풍씨 라고 하였는데, 《사기》에도 복희는 풍씨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복희는 당시 동이족의 아홉갈래인 견이 夷·방이方夷·적이赤夷·백이白夷·우이 (?)夷·황이黃夷·현이玄夷·양이陽夷·풍이風夷 가운데 풍이에 속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규원사화》에도 복희는 풍족이기 때문에 성을 풍씨라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태백일사》는 복희가 배달국의 5대 환웅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고 했는데, 이러한 복희의 탄생에 대해 《사기》와《중국고대신화中國古代神話》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복희의 어머니 화서씨華胥氏가 어느 날 동쪽에 있는 울창한 숲속으로 놀러 가게 되었다. 그녀는 뇌택雷澤이라는 연못가에서 노닐다가 우연히 대인大人의 발자국을 밟게 되었는데, 그 후 온몸에 전율이 일면서 아이를 갖게 되었으니 이가 곧 복희이다.』

여기서 복희의 어머니 화서씨가 동방에 있는 뇌택이라는 연못으로 갔다는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뇌雷'는 팔괘중에서 진괘震卦를 말하며, 진괘는 팔괘 중 동방과 동북방에 배치된 괘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록은 복희가 배달국에서 출생했음을 강력사게 암시하고 있다.


고구려의 시조 고추모의 어머니 유화柳花부인이 수신水神 하백河伯의 딸이며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왕비 역시 모두 우물가에서 태어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수생설水生說은 난생설卵生說과 함께 동이족 탄생설화의 공통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한다면 복희가 뇌택이라는 연못에서 잉태 되었다는 것 역시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복희의 어머니 화서씨가 뇌택에서 대인大人의 발자국을 밟고 난 뒤에 보희를 낳았다고 했는데, 여기서 대인이 한웅천왕을 의미한다는 데 대해서는 이미 검토 했었다.《사기》에서는 대인을 신인神人 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신시의 대인을 말하는 것이며, 또 《삼국유사》에서는 환웅을 신웅神雄이라고도 말하고 있으므로 대인가 신인은 모두 배달국의 역대 한웅을 일컫는 말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복희의 부인 혹은 누이동생이라고 하는 여와女渦(?)는 황토를 반죽하여 인간을 만들었다고 전하는데, 이러한 복희와 여와의 뒤를 이어 중국에서 농사와 의약의 시조로 불리고 있는 炎帝神農이 등장하게 된다.

 

지나대륙에서 한국천왕의 막내 아들 태호복희는 문명의 창시자로, 태호복희의 부인이자 배다른 누이동생인 여와는 한국의 결혼제도를 보급했던바 흙으로 사람을 만드는 창조신으로 신격화되어 중동지역으로 전파가 되니 한민족의 슈메르족이였던 해불함(아브라함)이 수용하여 이스라엘의 모성신이 된 것이다.

 

 

(자료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위키백과) 복희와 여와의 이야기는 세계 곳곳의 인간 탄생 신화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와가 흙으로 사람을 빚어낸다는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강물에 흙을 반죽해 사람을 만들었다는 내용, 성경에서 하나님이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코에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었다고 한 내용과 닮아 있다. 홍수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데우칼리온 부부 이야기, 성경에서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닮아 있다. 여와 신화는 실제 역사라기보다는 신화로 이해되고 있다.

 

복희여와도(伏羲女媧圖)는 중국 신강(新疆)의 투르판(吐魯番) 아스타나(阿斯塔那) 묘실(墓室) 천정(天丁)에 부착되어 있었던 사직채색(絲織彩色)한 7세기 그림을 복원(復元)한 모습이다. 한(漢) 나라 때의 돌에 새긴 그림과 당(唐) 나라 때의 채색(彩色)한 비단(緋緞) 그림도 발견되었다.

 

  중국(中國)의 천지창조신화(天地創造神話)에 등장하는 남신(男神)인 복희(伏羲)와 여신(女神)인 여와(女媧)를 소재로 삼은 그림이다. 중앙에 두 신이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뱀의 모습을 하고 등장하며, 왼쪽이 여와, 오른쪽이 복희이다. 각각 손에는 창조의 상징물인 각각 컴퍼스(規)와 구부러진 자(曲尺)를 들고 있다. 몸을 꼬고 있는 모습은 세상의 조화와 만물의 생성이 초래됨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으로 이루어진 중국의 전통적인 우주관(宇宙觀)과 관련된 상징물이다. 배경에는 해와 달, 별자리가 그려져 있어 하나의 소우주(小宇宙)를 재현하고 있다. 중국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얼굴과 손에 보이는 음영 표현(陰影法), 해와 달의 형상화 방식에서 중앙아시아적인 특징이 잘 드러난다.

 

  * 복희씨(伏羲氏)는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 또는 포희씨(庖犧氏)로 중국의 수인씨(燧人氏)와 신농씨(神農氏)와 함께 삼황(三皇) 중 하나이다. 전설에서 복희는 인류에게 닥친 대홍수 시절에 표주박 속에 들어가 있던 덕분에 되살아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로 복희라고 했다고 전한다. ‘복희(伏羲)’란 희생(제사에 쓰이는 짐승)을 길러 붙여진 이름이다. 성씨는 풍(風)으로 전해진다.

 

  전설에 의하면 기원전 2800년 무렵에 100년 이상 살았다고 전해진다. 무덤은 화이양 현 북쪽 3리 떨어진 곳에 있다. 하지만 다른 전설 시대에 나오는 인물 무덤처럼 실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는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하고 있다고 하며, 다른 전설에는 용의 몸 이라고도 한다. 원래 민간 전설상으로는 태호와 복희는 별개의 인물이었다. 전국시대 진(秦)나라에서 편찬한 세본(世本)에서 동일 인물로 서술하자, 이후 황조 이후부터 동일인으로 서술하기 시작하였다.

 

이름이 두 개이고, 본래 동일인이 아니라는 기록이 존재하므로 실존성은 낮은 신화적인 상징이라고 해석이 하기도 한다. 태호 복희는 여와처럼 고대 민간 신앙의 신화일 뿐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복희 상상도가 출토된 신장의 경우 본래 한족 지역이 아니며, 한족 이외에 남방 소수 민족들도 복희 신화를 가지고 있어, 고대 씨족 사회에 널리 사용된 민간 신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당나라 시대 간행된 역경에 따르면 복희가 팔괘(八卦)를 만들었다고 서술하고 있으나, 복희가 살았다는 기원전 25세기의 문자나 기호가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팔괘는 주나라 초기 점술가들이 제안하였고 기원전 5세기 무렵에 여러 신앙과 풍습이 더해져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여, 사서의 내용들과는 실제로는 다른 면도 있다. 글자를 만들었다고 믿어지기도 하지만, 역시 복희가 살았던 시대의 문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 여와(女媧)는 중국 신화에서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알려진 여신이다. 복희와 남매로 구전된다. 뱀모양의 복회와 여와가 서로의 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이 화상석(畵像石) 등에 새겨져 있다. 여와(女媧)라는 단어는 여성 여신(女神)을 나타내는 단어이기도 하다.

 

 

풍속통의(風俗通義)에는 여와가 황토로 사람을 만들고, 결혼 제도를 만든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와의 사당에 가서 빌면 결혼도 할 수 있고 자식도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부족 사회를 이루고서 살고 있었고, 여성의 비중이 컸다. 여와 신화는 이러한 모계 사회를 대변한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에 따르면, 태고 하늘에 4개의 기둥이 부러지자, 대지는 갈라지고 화재와 홍수가 발생했다. 맹수와 괴조(怪鳥)가 횡행하여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이때 여와가 5색으로 빛나는 돌을 녹여 하늘의 구멍 뚫린 부분을 메웠다고 서술되어 있다.

 

  남신 복희와 여신 여와의 모티프는 인도나 서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복희, 여와라는 테마가 중국이 아닌 남방 문화에 의해 형성되어 중국으로 전래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중국의 소수 민족들도 여와을 신으로 모시는 풍습이 있다. 투르판 아스타나(阿斯塔那)의 묘실 천정에 부착되어 있었던 복희 여와도는 중국 내륙에서는 출토 예가 없다.

 

 







댓글 0

(0/100)
  •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