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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국부인가.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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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5 이*현 조회수 244 |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붙여드리는 별칭 이승만 전대통령 - 국부(國父) 이승만 전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라고 하면 일부 진보주의 사람들을 놀라서 펄쩍 뛰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 놀라서 공중부양할 것입니다. 진보주의자들뿐 아니라 '건국의 아버지'라는 칭호에 결사반대하시는 항일 투쟁, 광복운동을 하신 독립투사분들도 공중부양에 동참하실 것입니다.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승만 전대통령'만'이 '건국의 아버지'라고 하면 항일운동을 하신 분들의 항일운동이 무효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승만 전대통령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인 김구 선생과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서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한 자유민주주의 지향 인사들(자유민주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들은 제외)중 주요 인물들을 '건국의 아버지들'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영어: Founding Fathers of the United States)는 미국 독립 전쟁과 관련된 미국의 역사 초기의 5명의 대통령들을 포함해, 미국 독립 선언에 참여한 정치인들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미국과 같은 의미에서 이승만 전대통령은 '건국의 아버지'들 중에 한 분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승만 전대통령은 상해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중에 한 분입니다. 미국인들은 영국의 식민지 치하의 미국에서 활약한 국가지도자들을 포함한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과는 조심스럽게 구분되는 '독립 자유민주주의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대통령에게 '국부(國父)'라는 칭호를 부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승만 전대통령을 일제 식민지 치하의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에서 활약한 국가지도자들을 포함한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과는 조심스럽게 구분되는 '독립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대통령에게 '국부(國父)'라는 칭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방과 독립 이후 공산주의계열 사회주의 계열의 정치지도자들이 난무하여 국민들의 77%가 사회주의 체제로 가는 것이 좋다는 여론조사가 나올 정도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정립되지 못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미국도 한국을 버린 상황입니다. 이 때 이승만 전대통령이 공산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국민들을 설득하여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확립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승만 전대통령은 일제 식민지 치하의 대한민국상해임시정부와 조심스럽게 구분되는 독립자유민주주의체제 대한민국의 국부(國父)라는 칭호를 부여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건국의 아버지들'이라는 칭호는 대한민국상해임시정부의 요인들과 독립자유민주 대한민국의 건국에 앞장 선 자유민주사상의 정치지도자들을 총칭하는 것이라야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 광복군들의 공적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에게 국부(國父)라는 칭호를 붙이듯이 이승만 전대통령에게 국부(國父)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은 논란거리가 아닐 것입니다. 이승만 전대통령이 국부라고 칭하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조국 광복을 위하여 수고하셨던 광복군과 항일운동가들의 공적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수립 과정의 공로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전대통령 - 대한민국 근대화의 아버지 박정희 전대통령의 공적을 깎아 내리기 위해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든 '프레이저 보고서'라는 동영상을 보면 박정희 전대통령 시기 한국의 근대화를 기획하고 실천한 것은 미국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은 한국이 공산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경제를 빨리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서 일본과 합작해서 한국을 근대화 시켰다고 합니다. 일본은 한국을 경제식민지로 만들기 위해서 한국에 적극적인 투자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박정희 전대통령이 한국의 근대화를 이룩한 대통령이라고 추앙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프레이저 보고서의 말은 100% 맞습니다. 미국이 한국의 경제를 기획하고 실행했기에 한국의 근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일본은 한국을 경제식민지로 만들기 위해서 투자를 했다는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다른 면으로 생각해 봅시다. 남로당원으로서 남한의 공산혁명에 앞장섰던 공산주의자 박정희 전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자로 전향하지 않고 공산주의자로 남아서 미국의 기획을 끝까지 거부하고 일본의 도움을 거부하고 공산주의자인 김일성같이 소련의 지령을 받아서 모든 것을 국유화하고 공산주의 경제계획을 실천했더라면 지금쯤 대한민국은 김정일이 망하게 하고 300만명이 굶어죽게 한 북한처럼 되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극단적 비유, 최악의 비유이기는 하지만 박대통령이 끝까지 남로당 군인으로서 사상전향을 하지 않고 장성이 되어서 남로당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서 소련의 지령을 받아서 대한민국을 공산화했다면 지금쯤 북한과 같은 끔찍한 나라가 되어있을 것입니다.(사실 미국은 박정희 장군이 혁명 혹은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보고를 받고 박정희 소장의 뒷조사를 한 결과 남로당원 군인이었다는 것을 알고 긴장했었지만 사상전향을 했다는 것을 알고 안심했다고 합니다.) 박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의 기획에 일부 반대하기도 했지만 적극 수용하여 대한민국의 경제를 근대화 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새마을 운동을 해서 농촌의 근대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박정희 전대통령에게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수여하고 싶습니다. 김영삼 전대통령 -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 김영삼 전대통령의 일생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투쟁해 온 일생입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민주화 투쟁은 '터프'했습니다. 민주화 투쟁을 탱크같이 저돌적으로 추진했습니다. 마치 '대한민국에 두려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통령도 두렵지 않다.'는 것처럼 무섭게 돌진했습니다. 그에게는 두려운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무서운 사람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하나회 해체 때였습니다. 전두환 전대통령도 감히 막강한 '하나회'를 해체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김대통령은 해체했습니다. '하나회 회원 장군들 말이야. 내가 초선 국회의원 때 소위 달고 있었지.'라고 하며 두려움 없이 하나회를 해체한 것입니다. 그래서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한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붙이고 싶습니다. 김대중 전대통령 -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어머니 김영삼 전대통령을 한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김대중 전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의 어머니입니다.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이고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입니다. 헨델은 남자지만 음악의 어머니입니다. 이처럼 김대중 전대통령은 남자지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어머니입니다. 한국 민주화 투쟁사를 보면 저돌적인 투쟁의 시작은 '대통령도 무섭지 않다.'는 김영삼 전대통령이 합니다. 반면에 김영삼 전대통령이 시작한 투쟁을 도와주고 마무리 하고 완성하는 분은 김대중 전대통령입니다. 마치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했고 칼빈이 완성한 것과 같습니다. 기자들에게 점심값을 줄 때 김영삼 전대통령은 지갑에 돈이 얼마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듬뿍 쥐어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막상 돈을 써야 할 때 빈 지갑이 될 때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대중 전대통령은 돌아서서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침을 뱉아서 지폐를 한 장 한 장 꼼꼼히 세어서 얼마를 꺼내서 준다고 합니다. 이것은 누가 옳고 누가 틀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갑 속에 얼마있는지도 모르고 꺼내주다가 꼭 필요할 때 빈지갑이 되기 일쑤인 김영삼 전대통령은 '머리를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며 공부보다 운동에 신경을 많이 쓴 반면 김대중 전대통령은 꼼꼼히 공부를 많이 해서 '대중경제론'을 쓰기도 했습니다. ('김영삼 전대통령' '김대중 전대통령'을 일일이 쓰려니 너무 길어서 이하 간단하게 YS, DJ라고 쓰겠습니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YS에게 미국에 가서 조용히 살아라고 하니 '내 시신을 미국에 데려놓아라.'라며 미국행을 거절해서 3년 동안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가택연금을 당하다가 23일 단식투쟁을 한 반면 DJ는 미국에 망명을 가서 해외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습니다. 이것도 누가 잘했고 잘못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YS는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과 가까운 상해에서 터프하게 무장항일 투쟁을 한 것과 같고 DJ는 이승만 전대통령이 미국에서 외교적인 독립운동을 한 것과 같습니다. YS는 터프한 용장(勇將)이었고 DJ는 섬세한 지장(智將)이었습니다. 그래서 YS에게는 '한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DJ에게는 '한국 민주주의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수여하고 싶습니다. 민주주의의 꽃, 근대화의 꽃 노무현 전대통령 시기는 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운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전대통령 시기는 민주주의의 절정기였습니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대통령에 대해서 온갖 비판을 해도 제재가 없던 시기였습니다. 농어민들, 노동자들, 어린이들도 대통령을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스스럼없이 대했습니다. 국민들은 대통령이나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없이 말하고 행동했던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핀 시기가 노무현 전대통령 집권기였습니다. 이명박 전대통령 시기는 근대화의 꽃이 활짝 피어서 대한민국이 글로벌 리더로 우뚝 섰던 시기였습니다.‘공여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고 G20 정상회의를 개최함으로서 근대화의 꽃을 피운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였습니다. 이분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인터넷에 넘치고 서점에도 책이 널려있으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분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필요한 것은 앞으로 오고 오는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에게 반면교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역사적 사명으로 삼고 있는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보수주의자도 아니고 진보주의자도 아닌 국민통합주의자로서 저의 역사적 사명은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임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의 주소
http://blog.naver.com/717991/22059437850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화합의 화신(化身) 김대중, 자유수호의 화신(化身) 이승만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서로 비난하고 증오하는 행태를 버리고, 국민통합주의적인 시각을 갖자는 의미에서 진보 대통령과 보수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소개합니다. 화합의 화신 김대중 전대통령 김대중 전대통령의 일생의 모토는 ‘화합’이었습니다. 그는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이 수감되었을 때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했습니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건의로 사면된 전두환 전대통령은 일평생 김대중 전대통령에 대해서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누구나 화합을 하려다 보니 김정일과도 화합을 시도했습니다. 김정일과의 화합 시도는 김정일, 김정은이 연평도 포격을 하는 배신으로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큰 고통과 상처를 입혔습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나를 미워하고 나를 죽이려고 한 사람과도 화합을 해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사형시키려고 했던 전두환 전대통령이나 자신의 정적이었던 박정희 전대통령의 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도 화합을 시도했었습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동서화합을 위해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후임자로 길러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신동아 기사를 살펴봅시다. • • • • • “DJ, 박근혜 대통령 만들려 했었다”- 한화갑 증언 이정훈 기자 리틀 DJ 한화갑 전의원은 놀라운 증언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3년 2월 말 임기를 마치고 동교동으로 돌아갔다. 전(前) 대통령이 된 것이다. 이듬해인 2004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동교동의 DJ 자택을 방문했는데 그때 김 전 대통령은 박 대표를 보고 “박정희 대통령이 환생해 온 기분이다. 고맙다. 박 대표야 말로 동서화합의 적임자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화갑 전 대표는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근혜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 중반이던 2000년 민주당의 권노갑 고문과 한나라당 김윤환 의원을 불러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키워보는 방안을 만들어보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한화갑 대표는 “김대중 대통령은 ‘막상 대통령이 돼 보니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이 힘들다. 내가 모든 것을 초월해서 발상의 전환을 하겠다. 최대 정적의 딸을 지도자로 길러냈다는 말을 듣는다면 내 성의에 감격해서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이 되지 않겠느냐. 두 사람은 그 방안을 찾아보라’라고 했다.”고 말한 것. 그는 이 증언을 뒷받침하기 위해 불교방송 총무국장을 지낸 이태호 씨가 쓴 책 ‘1급 비밀, 그랜드 플랜’을 지목했다. 이 책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권노갑 고문과 김윤환 의원에게 방안을 만들어보라고 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계획이 ‘2002 그랜드 플랜’ 줄여서 ‘GP-프로젝트’ 혹은 특별 보안이 필요하다고 하여 ‘불여묵(不如黙)’으로 불렸다고 돼 있었다. 이 책에 따르면 김윤환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부탁을 울산 출신의 한나라당 김태호 의원에게 전달해 방법을 찾게 했고, 김태호 의원은 이태호 씨에게 실무를 맡겼기에, 이씨는 DJ의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잘 알고 있다고 돼 있었다. 한화갑 전 대표는 “그러나 이 계획은 권노갑 고문이 사법기관의 조사를 받다 2002년 구속되고 민주당에서 대통령 후보 경선이 시작되면서, 그리고 김윤환 의원과 김태호 의원이 작고하면서 폐기됐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중반 대한민국의 고질인 지역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당시에는 유력한 대권 후보가 아니었던 박근혜 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은 놀라운 증언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참여했던 김대중 권노갑 김윤환 김태호 4인 중 권노갑 고문을 제외한 3인은 고인이 됐다. 그러나 권노갑 고문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참여했다. 한화갑 전 대표의 증언은 사실일까. 이태호 씨는 책에서 권노갑 고문을 K로 표현해 놓았다. 그는 전화 통화에서 K가 권노갑 고문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은 동서화합을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것은 우리 국민들이 제대로 알고 DJ를 평가해야 하기에, 어떠한 경우라도 기록을 남겨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이 책을 썼다. 기회가 된다면 내가 알고 있는 김대중의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김대중의 동서 화합 노력을 보다 상세히 밝힐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지역감정 극복노력은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저자 소개에 따르면 이태호씨는 경남 함양 출생이었다.
(신동아 2013년 2월호) http://blog.donga.com/milhoon/archives/1295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이승만 전대통령
미국의 원자탄 투하로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고 대한민국은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해방 정국의 세계 정세는 어떠했습니까? 소련이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침략해서 삼키고, 중공도 동남아 나라 등 주변 나라들을 삼켰습니다. 아시아 대륙 전체가 공산화되어서 붉게 물들었는데 극동의 한반도의 북쪽은 소련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에 의해 공산화되고 남쪽만이 공산화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46년 9월 미군정이 한국 국민을 대상으로 바람직한 사회체제에 대해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를 본국에 보고한 G2보고서에서는 ‘사회주의 77%, 자본주의 14%’의 결과가 나타남으로써 사회주의에 대한 압도적 지지가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남한지역 88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로서, 사회주의 77%(사회주의 70%, 공산주의 7%), 자본주의 14%가 나온 것을 의미합니다. 문맹율 70% 하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한반도의 반쪽은 공산화 되지 않았지만 공산당인 남로당이 국민적인 지지를 얻어서 국민들의 77%가 북한식 사회주의 정권 수립을 원했습니다. ‘북한 정권이 지주들의 토지를 무상몰수해서 소작들에게 무상분배한다.’는 소문이 남한 국민들에게 퍼져서 남한의 국민의 77%가 사회주의 정권의 수립을 지지했습니다.(북한은 1차로 지주들의 토지를 무상몰수해서 소작인들에게 무상분배했다가 2차로 소작들에게 분배했던 토지를 집단농장화해서 국가가 소유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한국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한국을 지켜주는 것을 포기하고 일본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적으로는 국민들이 북한식 사회주의 정권 수립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고, 외적으로는 미국이 한국을 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리하여 극동의 작은 반도의 아래쪽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위치는 거대한 공산권에 붙어 있는 밥풀떼기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거대한 거인 헐크의 손바닥에 있는 작은 벌레 같았습니다. 미국은 한국을 포기한 상태이고, 한국 국민들은 77%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지지하고 있었고 소련과 김일성은 남한을 넘보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공산화는 시간문제 같았습니다. 한국은‘거대한 공산주의 태풍 앞의 촛불’이었습니다. 위의 그림은 공산주의가 가장 극성을 부리던 때의 공산화 지도입니다. 공산화된 나라는 25개국입니다. 소련연방 15개국, 유고연방 3개국(이후 6개로 갈라짐)을 분리하면 총 44개국이 공산화되었습니다. 그 중 쿠바, 소말리아, 앙골라 등 멀리 떨어진 7개국과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 중국을 빼면, 나머지 35개국이 모두 소련과 중국에 붙어있는 나라들이입니다. 중국과 소련 거대한 공산주의 종주국 두 나라와 붙어있는 북한은 공산화 되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도 소련과 중국 두 나라에 붙어있는 나라와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과 중공에 붙어있는 밥풀떼기만한 나라인 대한민국이 공산화 되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습니다. 이 때는 미국조차 소련을 두려워했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이승만 전대통령은 한국의 정치지도자 중에 공산주의의 잔악상을 뚜렷이 알고 있던 유일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청년시절부터 소련의 공산주의혁명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승만은 '공산주의는 콜레라와 같다. 인간은 콜레라와 타협할 수 없다.'며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독립운동가였던 김구 선생조차 공산주의의 실체에 대해서 잘 모르고 김일성과 좌우합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평양을 방문했다가 속아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 이미 레닌의 공산주의 혁명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한 이승만은 안으로는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원하는 77%의 국민들을 설득하고 밖으로는 한국을 버린 미국을 설득하여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온 몸으로 막아낸 지도자였습니다. 저 거대한 소련과 중공과 붙어있는 나라들은 대부분이 공산화 되었는데 대한민국은 공산화 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켰습니다. 이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이 기적을 만들어낸 것은 이승만 전대통령이었습니다. 이승만 전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우리는 종교의 자유가 완벽하게 말살되고, 미국 허리웃 영화를 보면 총살을 당하고, 성경을 읽거나 지하에서 몰래 예배를 드리다가 발각되면 총살 당하는 끔찍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나라에서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글의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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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이상현 목사 청교도의 복음 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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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 2016.01.15 23:37
다른걸따떠나서 이승만대통령을 다른사람도 아닌 김대중 노무현에 비교하는것은 좀 지나치신갓같습니다 급이다른데 종편들은 겁나서인지 김대중 욕하기가 싫어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은 인지하고 살아야하는것 아닐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