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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모와 이승만의 북진노선은 다물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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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6 윤*현 조회수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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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동방 한국은 인류의 대제사장족이고 지구촌의 천제국


한국의 대통령은 반드시 제천해야만 하는 지구촌의 천제

 

 

 

 



바람의 나라 코리아


 

북진노선을 통하여


 

동부여를 통합하고


 

단군한국을 회복코자 했던


 

고구려의 시조 고추모를


 

국부로 부정할 수 있는가?

 

 

 

 

 북진노선을 통하여 북한을 통합하고 100년전

 

대한민국의 고토인 만주를 회복하고자 했던

 

이승만을 국부로 부정할 수 있는가?

 

있다면 그 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죽음으로써


 

이승만에게 복종하기를 맹세하자던 김구는


 

이승만과 함께 반공 반탁운동도 벌이면서


 

대한민국 합법정부 유엔결의 환영했다가


 

감정적으로 틀어져 김일성에게로 달려 갔다.


 

김구.김규식은 현재 김일성 일당의 대남


 

적화통일을 위한 선전물로 악용되고 있을 뿐이다!


 

김구,죽음으로써 이승만 박사께 복종하기를 맹세합시다


 

 1947년 11월 14일 유엔총회에서 유엔감시하의 한반도 자유선거 실시를 가결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11월 24일 김구는 남한 단독선거는 국토양분의 비극을 가져올 것이라고 발표했다가 11월 30일 이승만을 방문한 뒤 번복하여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였다. 김구의 방문을 받고 한시간여 요담을 한 후,

 

 

 김구는 자신과 이승만은 조금도 근본 의사의 차이를 보지 못했다고 말하고 사실상 단독정부 참여 의사를 밝히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김구의 성명 발표 후 이승만은 김구와 함께 서북청년단 1주년 기념식에 참석회 훈화를 하였다.

 

그러나 협력관계가 강화되어 가던 12월 2일 발생한 장덕수 암살사건으로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가게 되었다.

 

 

이승만이 대세인 상황에서 이승만을 라이벌로 생각해 버린 나머지, 권력욕에 눈이 멀었던 김구는 역시 흉노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다!

 

1946년 5월 20일, 전남 목포에서

 

이승만은 반공주의적인 발언을 하게 되는데 이는

 

향후 자신의 정치노선을 분명히 드러내게 된다.

 

"공산주의자는 소련으로 보내야 한다. 가족의 일원이라도 거부하라.공산주의자는 파괴주의자이므로 전부 체포할 것이다.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면 남조선에 단독정부를 세워 3.8선을 깨트리고 소련군을 내어 쫓고 북조선을 차지할 것이다."

 

 

이러한 그의 과감한 발언으로 그는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들로부터 '늙은 보수꼴통'이라고 비난받기도 하였다.

 

1946년 6월 11일 서울 정동교회에서 열린 독촉국민회 전국대표자대회에 참석하였다. 이승만은 이날 연설에서 "소련 사람을 내보내고 공산당을 이땅에 발못붙이게 하자,"고 역설하면서, "최고사령부라고나 할까, 최고의 명령을 내리는 기구를 조직할 터이니 이 명령에 복종함을 맹세"할 것을 요구하였다.그러자 김구는 "우리는 죽음으로써 이승만 박사께 복종하기를 맹세합시다."라고 화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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