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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직할고토는 광개토태왕이 다스린 황하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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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7 윤*현 조회수 201


지나국과 일본은 모국인 한국이 역사의식을 통해 정신적으로 제압,상생해야!


[자료]우.남.권.서.엄씨 등의 한국 성씨들의 유래는 단군한국의 제후국가들의 국호에서 왔다!

단군한국 영토를 회복하겠다는 고구려 다물국시를 실현한 광개토태왕이 황하이북을 다스린 이유


서기전2240년 신축년에 단군한국의 2대 부루천왕은, 서기전2247년 이후에 우순(虞舜)이 허락없이 임의로 재설치한 유주(幽州)와 영주(營州)를 정벌하여 동무(東武)와 도라(道羅) 등을 봉하여 그 공(功)을 표창하였다. 즉 동무와 도라 등이 명을 받아 군사를 이끌고 산동지역의 남국(藍國) 인근에 설치된 유주와 영주를 정벌하니 부루천왕이 동무와 도라 등을 그 곳의 제후로 봉하였다는 것이다.  


단군한국은 황하이남의 자치권을 부여한 우나라의 왕 유순(虞舜)이 설치한 황하 이북의 유주, 영주를 회수(回收)하여 직할영토로 삼았다


남국(藍國)은 산동지역에 위치하며 단군조선의 군후국(君侯國)의 하나인 군국(君國)으로서, 배달나라 시대 치우천왕(治尤天王)의 중심백성으로서 치우천왕의 후손이라 불리는데, 단군왕검 천왕이 한국을 개국하자마자 치우천왕의 후손을 남국의 임금(君)으로 봉한 것이다. 남국(藍國)의 동쪽과 북쪽이 되는 산동반도와 발해만 서쪽 지역으로 고죽국의 남동지역은 청구국(靑邱國)이 된다. 청구국은 치우천왕 시대 수도가 있던 곳으로서 고시씨(高矢氏)의 후손이 봉해진 단군한국의 군국(君國)이다.  

남국(藍國)은 고대 지나기록에 의하면 남이(藍夷)라고 적힌다. 주로 황하이남과 양자강 사이에 사는 족속으로서 홍산문명 지역에서 남하하여 산동지역의 기준이 되는 태산(泰山)과 남쪽의 회수(淮水)를 중심으로 정착한 것이 되며, 양자강 남쪽에 주로 정착한 적족(赤族)와 같은 족속이 된다. 적족은 고대중국의 기록에 적이(赤夷)라 기록되며 후대의 주나라 춘추전국시대에는 남만(南蠻)이라 격하하여 적기도 한다.

남국(藍國)의 영역은 대략적으로 청구(靑邱)의 서남지역으로서 태산(泰山)의 남쪽으로 회수(淮水)에 걸치는 지역이 된다. 태산은 서기전2267년에 단군왕검의 장남인 부루 태자가 도산회의(塗山會議)를 주관(主管)하러 가던 중 번한(番韓) 낭야(琅耶)에게 명하여 하늘에 제를 올리게 하였던 제천단(祭天壇)이 있는 산으로서, 후대에 주진한(周秦漢)에 이르기까지 봉선(封禪)이 행해지곤 하던 장소이다.

우나라의 왕 유순(虞舜)이 재설치한 유주(幽州)와 영주(營州)는 남국(藍國)의 인근으로서 남국의 서쪽에 위치한 것이 된다. 처음 순임금이 설치한 유주는 요나라 왕이 설치한 태원 북쪽이 되는 기주(冀州)를 나누어 태항산(太行山) 동쪽에 설치한 것이 되는데, 서기전2267년 도산회의에서 단군한국이 이 유주를 거두어 단군한국의 직할영역으로 편입시키고서 이곳을 포함하여 지금의 북경과 천진을 중심으로 고죽국(孤竹國)으로 봉하였던 것이 된다.  

또, 우순(虞舜)이 처음 설치한 영주(營州)는 산동지역에 있던 청주(靑州)를 나누어 청주의 북쪽이자 연주(兗州)의 동남쪽에 위치한 것이 되는데, 서기전2267년 도산회의에서 단군한국 땅으로 편입시켜 남국(藍國)에 붙인 것이 된다.  그러니까 광개토태왕이 유주자사 진을 임명하여 직접 다스린 황하이북 지역이 단군한국의 직할영토가 되었다는 의미다. 단군한국의 서토를 모두 회복하겠다는 고구려의 다물국시를 광개토태왕이 실현한 것이고, 단군한국의 직할영토의 영역이 확실히 증명된 셈이다.

이리하여 우순(虞舜)의 나라는 부루천왕에 의하여 유주와 영주가 철폐되고 원래 요왕이 설치하였던 9주(州)에다 병주를 포함한 10주(州)가 된다. 즉 기주(冀州), 병주(幷州), 연주(兗州), 청주(靑州), 서주(徐州), 양주(揚州), 형주(荊州), 양주(梁州), 옹주(雍州), 예주(豫州)이다.

병주(幷州)는 태항산(太行山) 서쪽이자 태원(太原)의 북쪽으로서 서기전1122년경 은(殷)나라 왕족 기자(箕子) 서여(胥餘)가 망명한 곳으로서, 우순(虞舜) 이후 서기전2224년 이후 하(夏)나라 때부터는 단군조선의 영역이었던 것이 된다.  

또, 연주와 청주 사이에 위치한 태산(泰山) 지역은 엄독홀(奄瀆忽)이라 불리며, 서기전1236년에 단군한국이 엄국(淹國)을 봉한 곳이 된다. 서주(徐州)는 서기전1236년에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서국(徐國)이 봉해진 곳이 된다. 서국(徐國)은 서기전680년경 주(周)나라 춘추시대 바로 직전 시기에 서언왕(徐偃王)의 나라로 유명하며 중국기록에서는 서이(徐夷)라 적힌다. 또, 서기전1236년에 서국의 남쪽이 되는 회수(淮水)에 걸치는 지역에 회국(淮國)을 봉하였다. 회국(淮國)은 지나기록에서 회이(淮夷)라 적힌다. 엄(淹), 서(徐), 회(淮)라는 나라는 모두 단군한국의 제후국으로서 천군국(天君國)의 아래인 일반 천자국(天子國)에 해당한다.

단군한국 시대의 제후국들의 국경은 명백히 설정된 것이 아니며, 제후국들의 수도를 중심으로 상당한 범위로 영향력을 미친 것이 되고, 상대적으로 제후국들의 영역범위는 어느 정도 설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이러한 제후국들을 통할하는 단군한국 천국(天國)은 중앙조정(中央朝廷)이 있을 뿐이며 통할 범위는 그 경계나 국경이 없는 것이 된다.

즉, 단군한국의 외곽 국경은 없으며  땅을 나누어 제후를 봉하는 곳이 곧 그 제후국이 되며, 제후국은 주로 수도인 읍(邑)이나 성(城)을 중심으로 하여 국(國)으로서 관할하게 된다.  

크게는 삼한을 두어 진한(眞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이 있으며, 진한관경에 구려(句麗), 진번(眞番), 부여(扶餘), 낙랑(樂浪), 숙신(肅愼), 예국(濊國), 옥저(沃沮), 졸본(卒本), 비류(沸流), 몽고리(蒙古里), 남선비(南鮮卑), 흉노(匈奴) 등의 군후국(君侯國)이 있고, 번한관경에 청구(靑邱), 남국(藍國), 고죽(孤竹), 엄(淹), 서(徐), 회(淮) 등의 군후국(君侯國)이 있으며, 마한관경에 개마(蓋馬)가 소속되어 있고, 그 외에 수많은 소국들이 각 관경에 속해 있었던 것이 된다. 성(城)을 중심으로 제후인 한(汗)이 봉해지면 일반 천자국(天子國)이 되고, 지방장관으로서 대부격(大夫格)에 해당하면 성주(城主)로서 욕살(褥薩)이 되며, 읍(邑)에 봉해지면 읍차(邑借)가 된다.  

군(郡) 단위에 해당하는 영역에 봉해진 제후는 군국(君國) 또는 대략 사방 백리 이상의 제후국(諸侯國)이 되고, 사방 십리에 봉해지면 읍차에 해당하게 된다. 원래 군(郡)이라는 글자가 군(君)이 봉해져 다스리는 땅이라는 의미가 된다. 단군한국 시대의 군(君)에 해당하는 사람으로서 소국에 봉해진 경우로 낙랑홀, 엄독홀 등이 있는데, 군(郡)의 크기에 해당하는 나라가 된다.

우순(虞舜)이 재설치한 유주(幽州)와 영주(營州)를 정벌하여 회수(回收)한 부루천왕은 이후에 반역(反逆)의 틈을 노리는 우순(虞舜)을 경계하여 특별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단군한국의 사자(使者)이던 유호씨(有戶氏)는 부루천왕의 명을 받아 이행함으로써 유호의 아들인 유순(舜) 왕은 주어진 천명(天命)을 다 누리지 못하고 서기전2224년에 제거되어 120세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이는 두 명의 왕후가 강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유순이 단군한국에 반항을 했다 정치적으로 제거당했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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