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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민의 시사탱크 - 참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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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항일독립운동가 후손 이종걸은 부끄럽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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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9 윤*현 조회수 265



중도정치는 단순히 중간지대를 의미하지 않고 정화와 개혁을 주도하는 핵core과 중심이라는 의미다


정치판의 난세는 리더들의 부재가 낳은 결과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 박정희는 잘 살아 보세와


튼튼한 안보태세를 중시하며 산업화를 기반다졌다


김일성이 반대세력 숙청으로 자신의 일가 독점체제에


열을 올릴 때 박정희는 백성과 나라의 미래를 생각했다!



국권이 강탈당한 후에



모든 재산을 팔아서



고구려가 일어난 만주에



항일무장장교를 양성한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할아버지에


부끄럽지 않는가?


원내 대표라는 사람이


더민당의 단기 당권을 장악한


전두환 충견 김종인


비위를 맞추며 비대위


회의에 참여하는 정치인으로서


자세가 말이다! 꼭 그렇게까지


정치를 해야 하는가? 이회영이라면


"전두환 개넘에게 당권을 넘겨준


정당은 더 이상 민주당도 아니다!"며


탈당하지 않았을까?



이회영(李會榮, 1867년 음력 3월 17일(양력 4월 21일) ~ 1932년 11월 17일)은 대한제국의 교육인, 사상가이자 일제 강점기의 한국의 아나키스트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장훈학교, 공옥학교에서 교편을 잡다 신민회의 창립 멤버였고, 서전서숙을 설립하였으며 일가 6형제와 함께 유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설립, 독립군을 양성과 군자금 모금 활동을 했다. 그 뒤 신흥무관학교가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하자, 상하이에서 아나키즘 사상에 심취하였으며 1928년 재중국조선무정부공산주의자연맹, 1931년 항일구국연맹 등의 창설을 주도하였으며 국내외 단체와 연대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1931년 9월에는 흑색공포단을 조직하여 일본과 일본 관련 시설의 파괴, 암살을 지휘하였으나 1932년 11월 상하이 항구에서 한인 교포들의 밀고로 체포되어 옥사하였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고려, 조선의 양반가 출신으로 고려시대의 재상 익재 이제현과, 조선 선조조의 정승 오성 이항복의 후손이었다. 아호는 우당(友堂). 종교는 감리교로서, 7형제 중 넷째 아들이며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의 형이다. 해공 신익희와는 사돈간이며, 정치인 이종찬, 이종걸은 그의 손자였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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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 CHOSUN 안*환 2016.01.29 04:14

    이종걸씨! 경주이씨 상서공파 36대손- 빨리 조부님대를 생각하면 과감히 털고 국민이 당으로 가시게나? 이시영,이회영 조상님을 생각해서...빠른 시간대에 "국민의 당"으로 가길 바란다네! 썩어도 준치란 속담이 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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