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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를 국보1호로 삼는 대한민국 식민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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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2 윤*현 조회수 220







한민족은 우주민족=천손족

 

 

우주법칙은 순환-반복 구조



 지금은 인간의식을 바꾸어 합일되는 빛의 시대다!

 


등축제         네이버 지식in에서 퍼온 고구려문제


 

현대기술로도 재현이 어려운 고대 한국의 최첨단 나노기술-다뉴세문경(청동거울)

 

 



고도의 첨단기술을 가진


 

우주인들이 땅으로 하강한


 

외계문명의 흔적인가?


북두칠성 모양의 UFO편대가


출현(영화 쉬리제작팀이 촬영)한,


1만년 전 마고한국 지역인


서남해 지역에서 다량 출토되는


다뉴세문경의 비밀은 무엇인가?


 

우리 한민족이 왜 문화민족인지 입증하는 결정판이다!

 


다뉴세문경을 비롯한 청동거울들은 대부분 화려한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가운데 무언가 매달 수 있는 고리가 있고 고리에 당시 가죽끈이 남아있는 걸 보면 아마도 옛 사람들은 거울을 옷에 매달아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고대인들에게 태양은 생명의 빛이었다. 하여 거울은 강력한 정치권력을 지닌 왕이나 신의 뜻을 받는 제사장의 상징이었다. 삼국시대에 와서 청동거울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왕의 상징이자 국가간의 주고받는 물건으로도 쓰였는데 일본에서 발견된 인물화상병이라는 거울에는 백제 무령왕이 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 지름 21.2㎝ ]

 

다뉴세문경(多紐細汶鏡)은 고리(紐(뉴))가 여러개이고 세세한 무늬가 있는 청동거울을 뜻합니다.

 

다뉴세문경은 마고한국의 중심지 한반도를 중심으로 만주, 연해주, 일본에서 발견되는 청동거울이다.

 

지나국에서도 청동거울이 많이 발견되지만[다뉴조문경으로 불리는데 문양은 우리의 다뉴세문경과 비슷하지만 세밀함은 크게 뒤떨어지는 짱퉁이다.세문경(細汶鏡) 즉 세세한 무늬가 있는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은 한국의 여러 다뉴세문경 중 하나로 1971년도에 국보로 지정됩니다.

 

이외에도 여러 개. 우리가 살고 있는 해땅 한반도를 결코 웃습게 보아서는 안 되는 고고학적 증거다.



[단군한국의 다뉴세문경 - 전북 완주 갈동 유적]


기사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1568292§ion_id=103&menu_id=103


[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 지름 21.2㎝ : 충남 논산 출토 ]

 

위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의 특징은 불과 지름 21㎝ 정도 되는 크기 안에 0.3㎜ 간격으로 무려 가는 선 약 1만3000개를 새겨넣었다는데 있다.

 

0.3㎜ 간격 가는 선 약 1만3000개

 

여러 차례 현대기술로 복원을 시도했으나 아직도 제대로 복원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우주인들의 첨단기술인가?





다뉴세문경은 금속을 깍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주물로 떠서 만든 것이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한반도 지역에서 다수가 발견된다면 다뉴세문경을


 

제작한 문명인들의 고향은 한반도 지역이 분명하다!


 

단군한국 이전 시기인 6000년전의 첨단 나노기술의


 

청동거울은 한반도 땅이 동방문명의 뿌리임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한웅천왕이 해땅국을 세운 태백산은 백두산이


 

아니라, 제천단이 존재하는 대한민국 태백산이 아닐까?


 

흑수는 여수를 의미하는 지명이고, 백산은 태백산이면


 

한웅천왕이 해땅국을 세운 태백산 이남지역이 신시가


 

아니였을까? 배달은 밝땅이고 순우리말로 해땅이니


 

해땅은 3천리 한반도가 아니겠는가?한반도 나라다!



 


다뉴세문경 문화인들은 만주로 북상하면서

 

청동거울을 남긴 것이 아닐까? 그리고


 

단군한국시대에도 단제들이 청동거울을


 

목에 걸고 제천권과 통치권의 상징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1만년전 마고한국 문명이 잠들어 있을 서남해 해저에는

 

 

마고문명의 유적들과 유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보도자료]단군한국 이전 시기인 6000년전 청동거울‘신비한 비밀’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의 '초정밀 문양' 제작 비법 실마리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 한반도에 최첨단 나노 기술이 존재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기원전 4세기 무렵 청동기 시대에 만든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多紐細汶鏡)은 이 시기 한반도에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정밀 기술이 존재했음을 웅변하는 유물이다. 

 

다뉴세문경 제작 방법의 비밀을 풀기 위해 지금껏 수차례 복원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을 정도다. 



↑ 위_ 수많은 직선을 이어서 그린 다뉴세문경의 삼각 문양. 아래 _ 다뉴세문경 외구의 동심원. <국립중앙박물관>



↑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경향신문사>


다뉴세문경은 청동기 후기에서 초기 철기 시대에 유행한 청동 거울이다. 

 

다뉴(多紐)란 뉴(끈으로 묶을 수 있는 고리)가 여러 개 달려 있다는 뜻으로, 거울 뒷면에 달려 있는 고리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에는 두 개의 고리가 달려 있는데,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이 고리에 끈을 걸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울 뒷면에는 직선과 원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문양을 새겼다. 

 

세문(細汶)은 이 문양이 정밀하다는 뜻에서 붙은 것으로, 무늬가 굵고 거친 거울은 따로 다뉴조문경(多紐粗汶境)이라고 부른다. 다뉴조문경은 청동기 전기에 많이 사용되었다. 

지름 21㎝ 공간에 수많은 선과 원 새겨 

다뉴세문경은 지나 동북지방과 러시아 연해주를 비롯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같은 종류의 청동 거울이 발견된다. 

 

숭실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숭실대 국보경)은 1960년대 충남 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100여 점의 다뉴세문경 중 가장 크고 정교하게 만든 것이다. 

 

숭실대 국보경은 한때 출토지가 강원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고(故) 한병삼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말을 빌려 국보경은 원래 논산훈련소에서 참호를 파던 군인들이 발견했는데 중간상인에게 넘어가는 과정에서 강원도에서 발견한 것으로 둔갑했다고 전했다. 

국보 다뉴세문경의 비밀은 무엇보다도 문양의 정교함에 있다. 

 

국보 다뉴세문경은 지금껏 발견된 것 중 가장 크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지름이 21.2㎝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좁은 공간에 무려 1만3000개가 넘는 정교한 선과 100여 개의 동심원이 새겨져 있다. 

 

선과 선 사이의 간격은 불과 0.3㎜에 불과한데다, 원과 직선이 복잡하게 교차하면서 기하학적인 아름다움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현대 최고의 숙련된 제도사가 확대경과 초정밀 제도 기구의 도움을 받아 그린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은 작업이다. 오로지 육안과 초보적인 수준의 기구에 의존해서 이처럼 정교한 문양을 그렸다는 것 때문에 신비감은 물론,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위조 논란까지 일고 있는 것이다. 

국보 다뉴세문경의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그것이 거푸집에 청동을 부어 만든 주물 작품이라는 점이다. 도안이 아무리 정밀하더라도 그 도안을 바탕으로 주물을 떠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주물 기술이 필요하다. 

 

주물 기술에 문제가 있을 경우 도안의 정교함이 희생되어 최종적으로 만들어낸 거울이 도안과 같은 수준의 정밀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거푸집이 출토된 적이 없기 때문에 거푸집의 재질과 형태는 더욱더 수수께끼에 휩싸여 있었다. 


다뉴세문경 제작의 비밀을 푸는 관건은 주석과 구리의 비율, 거푸집의 재질, 문양 제도 방법 등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국보 다뉴세문경은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매우 이상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중요한 것은 주석 함유량이 많을수록 거울의 반사율이 높아지지만 주석 함유량이 일정 비율을 초과하면 인장 강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작은 충격만으로도 쉽게 깨지기 때문이다. 

 

보존과학팀에 따르면 다뉴세문경의 구리 대 주석 비율은 65.7:34.3으로 다른 청동 거울에 비해 주석 함유량이 높은 편이고, 제작 당시 거울면의 빛깔은 은백색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푸집의 재료는 모래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거푸집의 재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많았다. 몇 차례 복원 시도에서도 동판이나 납 등에 무늬를 새긴 뒤 밀랍판으로 눌러 모양을 본뜨는 방법을 사용했으나 최종 주물에서 무늬가 망가지는 등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보존과학팀은 거울 면과 문양 면에 걸쳐 있는 주조 당시 발생한 결함 부위를 분석했을 때 거푸집에 사용한 주물사(거푸집 모래)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거푸집의 재질이 모래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완성된 거울의 단면에 모래가 밀려 올라간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거푸집이 그리 튼튼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만3000여 개의 선과 100여 개의 동심원을 0.3㎜ 간격으로 어떻게 그려냈는지는 가장 큰 관심거리다. 보존과학팀은 화상분석기로 21개의 원에 대해 반지름을 구한 결과, 반지름 분포가 동일한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토대로 미루어볼 때 이 원들은 다치구(일종의 컴퍼스로 여러 개의 바늘을 갖고 있어 한 번에 여러 개의 원을 그릴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컴퍼스를 사용하여 한 번에 원을 하나씩 그린다면 이처럼 일정한 분포의 반지름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보존과학팀은 또 각각의 선과 동심원이 어떤 순서로 그려졌는지에 대해서도 분석을 내놓았다. 

거품집 재료는 모래로 추정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부분 또한 많다. 우선 다치구를 사용하여 원을 그렸다고는 하지만 그 다치구를 어떻게 만들었는 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1㎝ 길이 안에 무려 20개의 바늘을 박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초정밀 기계의 도움 없이 어떻게 다치구를 만들어냈는지는 수수께끼다. 

 

또한 직선과 동심원이 그려진 순서를 추정했다고 하지만 확대경이나 초정밀 제도 기구의 도움 없이 청동기 시대의 장인이 어떻게 그처럼 복잡한 문양을 그려냈는지도 상상력의 영역에 있다. 

 

무엇보다도 제작 방법에 대한 이론적인 분석과 실제 복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현대의 장인이 실제 복원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 비밀이 완전히 풀렸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몇 년 전 다뉴세문경 복원에 도전했던 한 장인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라면서 그 정밀한 제작 기술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위대한 예술 작품은 분석할수록 더 많은 비밀을 드러낸다.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비밀을 간직한 채 현대인들에게 지속적인 찬탄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기사입력 2008.11.06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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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뉴세문경의 비밀



선과 선이 만나 기하학적 도형을 이루고 크고 작은 원들이 여백을 채운다.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거울의 탄생. 지금으로부터 2400여년전 이 땅에서 탄생한 아름다운 청동거울, 다뉴세문경이다.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다뉴란 뉴가 여러가 달려있다는 뜻으로 거울 뒤에 달려있는 고리때문에 붙은 것이고 세문이라는 것은 거울 뒤에 새겨진 문양이 정밀하다는 뜻이다. 지름 21.2CM 원안에 새겨진 만삼천개가 넘는 선과 백여개의 동심원, 작지만 더없이 세밀한 다뉴세문경에는 당대의 청동기술이 담겨있다.

 

윤용현 연구관 ㅣ 국립중앙과학관 : 지름 21CM 안에 이런 심원을 했던 도구 제작기술과 나노기술, 반사가 잘 되도록 주석의 양을 조절했다는 점에서 합금제조기술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이 다뉴세문경은 당대의 하이테크 기술이 모두 집약되어서 제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뉴세문경의 주조법은 크게 석제거푸집 주조법과 신라법으로 추정된다. 그 중 석제거푸집 주조법이란 활석에 직접 문양을 새기고 청동쇳물을 넣어 주조하는 방법이다.

 

이완규 주성장 ㅣ 경기무형문화재 제47호 : 우리나라 전 지역에 퍼져있는 활석이라는 돌인데요. 돌이 무르기때문에 일반 톱으로도 잘 쓸어지고 돌이 아주 고와서 섬세한 문양을 파는데 적합합니다.

 

이제 문양을 새길 차례이다. 먹물을 바르는건 각석이 잘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이 기구는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원형 크기에 맞게 톱니를 만든 후 판을 돌려 동심원을 그리는 것이다. 현대의 컴퍼스와 같은 원리이다. 톱니를 여러개 만들면 한꺼번에 많은 동심원을 일정한 크기로 그릴 수도 있다. 작은 원 안에 만개가 넘는 선과 백여개의 동심원을 담는 도면작업, 이 작업만 해도 40일이 넘게 소요된다고 한다.

 

이완규 주성장 ㅣ 경기무형문화재 제47호 : 이걸 파면서 돌 안에 모래 알갱이 하나만 있어도 선을 못 그으니까 실패고 선을 그으면서 한 선만 밖으로 넘어가도 실패인데 지금 좋은 기계가 있어도 힘든데 조상들은 아무것도 없었을텐데 팠다는 게 제가 하면서도 놀랍고 존경스럽습니다.

 


이제 청동쇳물을 만들기 위해 구리와 주석을 혼합한다. 그 비율이 잘 조절되어야 강도도 높고 빛의 반사율이 좋은 거울이 탄생한다. 그 다음에는 소나무에서 채취한 관솔을 불에 태운다. 이때 나오는 그을음을 입혀 코팅하면 주물의 표면이 상하지도 않고 거울이 거푸집에서 깨끗하게 분리가 된다. 이렇게 녹인 쇳물을 거푸집 사이에 붓고 2~3분 뒤 거푸집을 떼어내면 다뉴세문경이 완성된다.

 



석제 거푸집 주조법으로 완성된 다뉴세문경이다. 일정한 굵기와 간격으로 그려진 섬세한 문양들. 2000여년전의 감흥이 고스란히 재현된 듯 하다. 또다른 제조방식인 신라법은 활석에 거푸집 도안을 하고 그 거푸집에 밀랍을 부어 거울 모형을 만든다. 만들어진 모형 위에 진흙을 씌운 후 열을 가해 밀랍을 녹여내고 청동쇳물을 부어 완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다뉴세문경을 복원하고 있지만 이 아름다운 거울은 여전히 많은 부분이 비밀에 쌓인채 남아있다.

 

다뉴세문경을 비롯한 청동거울들은 대부분 화려한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가운데 무언가 매달 수 있는 고리가 있고 고리에 당시 가죽끈이 남아있는 걸 보면 아마도 옛 사람들은 거울을 옷에 매달아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고대인들에게 태양은 생명의 빛이었다. 하여 거울은 강력한 정치권력을 지닌 왕이나 신의 뜻을 받는 제사장의 상징이었다. 삼국시대에 와서 청동거울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왕의 상징이자 국가간의 주고받는 물건으로도 쓰였는데 일본에서 발견된 인물화상병이라는 거울에는 백제 무령왕이 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윤용현 연구관 ㅣ 국립중앙과학관 : 중국의 동경 같은 경우에는 꼭지가 하나에 동물 또는 물고기, 새 문양을 양각하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꼭지가 두개 이상이고 문양을 선각했다는데서 다른 점이 있다. 선각에 의한 새김 문화는 신석기시대의 토기 계통을 이어받는 것으로써 우리나라 역사발전에 일관되게 이루어졌다는 걸 살펴볼 수 있는 겁니다.

 

기원전 4세기, 어느 이름 모를 기술자에게서 탄생된 청동거울. 아름다운 비밀을 품고 수천년의 빛을 내는 다뉴세문경이다

 

옹혜옹주(손예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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