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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빠진 헌법전문 개정과 원구단 제천의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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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2 윤*현 조회수 241 | ||||||||||||||||||
박정희 군부는 4.19이후 무능과 계파정치로 혼란을 가중시켜 종북극좌세력을 준동케했던 민주당 정치에 철퇴를 가했다! [헌법전문 개정안]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단군한국을 계승하여 천자국을 선언한 대한제국의 국통을 계승하고,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대한제국 애국가/"상제(하느님=하나님)께서 보우하사.." 고구려 국조 고추모의 개국훈시,"3신 하나님께서 만물과 사람을 낳으셨으니 사람이 비로소 하나님을 대신하여 땅에 서게 되었다." [환단고기/고구려국본기]"광개토태왕께서 순수 말을 타고 마니산에 올라 제천하고 하늘음악을 연주케 하였다...을지문덕도 제천하였다." 뿌리와 정신을 상실하니 충효와 질서와 나눔이 무너지고 부모와 부부와 자식이 서로를 죽이고, 정치는 부패와 패거리주의로 분열하고 타락한 상태다! 한민족은 상제 하나님 제천신앙을 복원하여 민심을 모으고 국운을 세워야 한다. 한국의 대통령은 반드시 나라를 건국한 개천절에 참석하고 마니산 제천단에서 나라와 민족과 인류의 평안과 공존을 기원하는 기도문과 함께 제천해야 하고, 명절에는 천궁(청와대 개정 명칭)에서 가까운 원구단에서 제천의식을 통하여 나라와 민족과 인류의 평안과 공존을 기원하고, 국조에 감사제사를 지내야 한다. 1만년 민족사의 국조되는 마고-황궁-유인-환인-환웅-환검 대통령들을 모시는 국조전도 원구단 옆에 증축하여 국민과 민족과 인류가 뿌리를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외치면서 제천단인 원구단이 방치된건 우주의 조물주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 스스로 버리는 행위와 동일하다.복원시켜야 한다. 우주의 순리와 구조를 기록한 천부경과 사람되게 만드는 참전계경과 한민족사를 정립하기 위하여 [환단고기][부도지]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뿌리와 정신을 회복할 수 있음으로 국가질서와 공의가 서고 민족의 미래가 열린다. 세계 최고 학벌을 가진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교육 전반의 문제는 사람됨의 교육부재때문이다.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에 있는 대한제국시대의 제천단 환구단(圜丘壇)은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일명 환단(圜壇)이라고도 한다. 1967년 7월 15일에 사적 제157호로 지정되었고, 서울특별시 중구청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환구단은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를 드리는 둥근 단으로 된 제천단(祭天壇)인데, 예로부터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여 하늘에 제를 지내는 단은 둥글게, 땅에 제사 지내는 단은 모나게 쌓았다. 고대에 하나님께 제사를 주관한 대제사장이였던 단제(대통령/고대 한국의 대통령은 지구촌의 천제)이 정결한 곳에 제천단을 쌓고 기원과 감사의 제를 드리는 것은 농경문화의 형성과 더불어 일찍부터 있었다. 마고-환인-환웅-환검 단군왕검의 한국 이후 부여.고구려.대진국 발해의 대통령들이 제천을 한 이래로 983년(고려, 성종 2) 정월에 왕이 환구단에 풍년기원제(豊年祈願祭)를 드렸다는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으로 보아, 이미 이전부터 이러한 의식이 행하였다고 추측된다. 이러한 제천의례는 조선시대에도 계승되었다. “1398년(태조 7) 4월, 가뭄이 심할 때 종묘(宗廟)·사직(社稷)·원단(圓壇)과 여러 용추(龍湫 : 폭포수 아래의 깊은 웅덩이)에 비를 빌었다.”는 실록의 기록은 이를 잘 말해준다. 조선시대 문헌에 나오는 환단의 위치를 보면, 한강 서동(西洞) 또는 남교(南郊)로 되어 지금의 한남동 부근으로 추정된다. 또한 환구단의 구조는 처음에는 고려의 제도를 따라 단 주위를 6장(丈)으로 하고 단 위에 천황대제(天皇大帝)와 오방오제(五方五帝)의 신위를 봉안하였다. 그러나 단상이 좁아 1411년(태종 11)에 확장하여 단 주위를 7장으로 하여 단으로 오르는 12층계를 만들고 단 아래에는 3개의 토담〔土壝〕을 만들어 주위 담에는 4개의 문을 냈다. 그리고 단 남쪽에는 다시 높이 1장 2척 창호방(窓戶方)의 요단(燎壇)을 쌓았고 신주(神廚)와 재궁(齋宮)을 지어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세조 때에 환구단을 쌓게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환구단의 명칭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천자가 아닌 지나국의 제후국(諸侯國)의 왕으로서 천제(天祭)를 지냄이 합당하지 않다는 논의때문이며, 이로 인해 이후 여러 차례 제천단을 폐한 일이 있었다. 그 뒤 고종이 1897년(광무 1)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천자가 되었기에 완전한 제천의식(祭天儀式)을 행하게 되었다. 환구단은 1897년(광무 1) 우리나라도 천신(天神)에게 제를 드려야 한다는 의정(議政) 심순택(沈舜澤)의 상소에 따라 영선사(營繕史) 이근명(李根命)이 지관(地官)을 데리고 지금의 소공동 해좌사향(亥坐巳向)에다 길지(吉地)를 정하고 제단을 쌓게 하였다. 제천단이 조성된 이후에 고종은 이 곳 환구에서 천지에 제를 드리고 황제위(皇帝位)에 오르게 되었다. 이때에 조성된 환구단의 제도를 보면, 황천상제(皇天上帝)의 위(位)는 제1층 북동쪽에서 남향하여 있고 황지기(皇地祇)의 위는 북서쪽에서 남향하였다. 제2층 동쪽에는 대명(大明), 서쪽에는 야명(夜明)의 위가 봉안되었으며, 제3층 동쪽에는 북두칠성(北斗七星)·오성(五星)·이십팔수(二十八宿)·오악(五嶽)·사해(四海)·명산(名山)·성황(城隍)의 위와 서쪽에는 운사(雲師)·우사(雨師)·풍백(風伯)·뇌사(雷師)·오진(五鎭 : 다섯 鎭山)·사독(四瀆 : 나라에서 위하던 네 江)·대천(大川)·사토(司土)의 위가 모셔졌다. 그리고 제를 올릴 때 영신궁가(迎神宮架)에는 중화(中和)의 악, 진찬궁가(進饌宮架)에는 응화(凝和)의 악 등, 여러 주악이 의식에 따라 연주되었다. 그 뒤 1899년(광무 3)환구의 북쪽에 황궁우(皇穹宇)를 건립하고 신위판(神位板)을 봉안하면서 태조를 추존하여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로 삼고, 환구 황지기 위의 동남에 배천(配天)하였다. 1913년 민족혼을 말살하고자 했던 일제에 의하여 환구단이 헐리고 그 터는 지금 조선호텔이 되었는데,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팔각정의 황궁우는 지금도 남아 있다. 기단 위에는 돌난간이 둘러져 있고 1·2층은 통층(通層)인데, 중앙에 태조의 신위가 있다. 3층은 각 면에 3개의 창을 냈다. 건물의 양식은 익공계(翼工系)인데, 청나라 영향을 받은 장식이 많다. 황궁우 옆에는 제천을 위한 악기를 상징한 듯 3개의 석고(石鼓)가 있는데, 몸통에 조각된 용문(龍文)이 화려하다. 제천단의 또 한 예로 강화도 마니산 정상에 자리잡은 참성단(塹星壇)을 들 수 있겠는데, 이는 단군왕검 천왕이 제천을 위하여 쌓았다. 밑부분은 둥글며(지름 4.5m), 윗부분은 정방형(한 변이 2m)으로 전체 높이는 6m이고 동서에 단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1639년(인조 17)과 1700년(숙종 26)에 중수하였고 매년 음력 1월과 9월에 제사를 올렸다 하며, 요즈음에는 전국체육대회의 성화가 이곳에서 채화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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