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세상을 듣는 귀!
세상을 보는 눈!
시사토크의 새로운 장이 열린다!
뒤바뀌는 1만년 인류문명사/빛은 동방 한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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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9 윤*현 조회수 288 |
우주를 창조한 조물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공의와 나눔이다
침략과 독식과 살인은
절대로 사랑이 아니다
한민족 사명은
세계 모든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와 병과
기아의 완전 폐기다!
원숭이뇌로 퇴락하지 말고 홍익인간뇌로 진화하라! 1950년 조지 아담스키가 내다 본 한국의 미래,"민주적으로 통일이 되며 인류중심국이 된다." 자유 민주 시장 복지의 가치를 전제한 통일을 전제로 한국은 앞으로 45년 뒤인 2050년경에 이르면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권으로 도약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미국의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는 최근 발표한 세계경제보고서를 통해 세계 170개국의 2050년까지 장기 성장 시나리오를 분석하며 이같이 내다 봤다.
한민족의 근본정신은
하나님을 경외하고=경천
사람을 사랑하다=애인
하나님은 만물의 뿌리고, 임금은 백성들의 부모다 굶주리는 몽골 공동체의 복지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한 징기스한은 어린시절 나누지 않는 이복형제를 죽여 버리다! 정치는 나눔에서 백성의 웃음과 행복이 있다! 소수 부패와 탐욕은 백성의 눈물임을 알찌어다! 물은 자고로 저수지에 갇혀서는 안되고
메마른 논을 적셔야 하듯이 돈이란 자고로
백성 속으로 생산적으로 돌아야 경제가 산다.
부자들이 당당하게 더욱 많은 돈을 벌고
공정하게 세금을 내면 되는 것이고,
백성들은 생계와 노후가 걱정이 없어야
선진국이다. 부자감세를 100조 이상을
해주면서 공공부채는 누적시키고
저출산 양극화를 심화시켜 인구수를
줄이고 결국 나라가 망하게 하는
정치는 있으나 마나한 정치인 것이다!
공정경제 공정조세 공정복지가
자본주의 병폐를 해소하고 국민과
인류가 행복하게 사는 홍익주의다!
저출산 노령화 자살율이 oecd최하위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국가예산의 1차적 지출목적은 국민을 살리는데 있다. 국민이
사라진 나라가 존재할 수 없고, 정치와 대통령도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380조 국가예산 중에서 최소 매년 50조 이상을 국민에게
배당하여 가정경제와 내수시장을 살리고, 노동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늘려서 선순환 경제구조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50조를 국민배당해도 20조 이상은 내수시장으로 들어 간다.
부자는 감세해 주면서 서민증세를 하는 정부와 정치권이라면
그 나라는 희망과 미래가 보장될 수가 없다. 원숭이뇌가 아닌 이상
세계 최고 학벌을 가진 정치인들이 모를리 없다. 단지, 그들이
그 좋은 두뇌를 애민이 아니라, 부유층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통일 이후에도 남과 북의 경제적 격차를 해소하고
민족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북한의
국민에게도 30조는 배당해 줘야 한다. 백성부터
살리는 정치가 진정한 정치이고, 미래정치가 아니겠는가?
여성과 용의 관계에서 서방으로 전파된 모성신앙 대상이 되었던 여와.마리아로 대변되는 여성의 원형은 1만년 전에 3신 1체하나님을 섬기고 제사지낸 대제상으로서 서남해 마고한국을 다스린 마고여제이며, 용은 수 많은 큰강들이 결합된 서남해 대강의 모양을 형상한 동물토템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그래서 여성 마고가 뱀이나 용의 위에 서 있는 것이고, 용이 물고 있는 둥근 여의주는 지구의 중심성인 마고성을 의미한다.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 이후 다신문화를 융합하여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한 상징인 로마교황청은 여성(마고)과 결합된 용토템으로 도배되어 있다.그래서 개신교는 로마 교황청을 마귀의 소굴로 비난 비판하고 있는 상태다.
로마교황청에 도배된 종교문화는 고대 한민족의 태양신앙.용신앙.선도문화가 결합된 문화다. 인류문화사적으로 바르게 풀이해 내고 해석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게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다 보면 기독교 사상의 뿌리도 동방 한국임을 알게 된다.
붉은 용 신바벨론성(로마교황청)이 무너질 것이다(요한 계시록)=동방 한국으로 중심지가 이동하게 된다.
즉, 로마 교황청의 권위도 무너지고 그 권위는 동방 한국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영국.프랑스가 훔쳐다가 세운 이집트 오벨리스크라는 것도 바로 마고 모계문화 이후 생겨난 부계문화의 상징으로 남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한반도 선돌을 형상화한 것이다. [자료:인류문명사 고찰] 농경.용.봉황.토기.고인돌 문화의 시원지는 서남해 중심의 마고 한국
동아시아에서 이보다 더 오래된 토기는 사실 한반도에 널리 발견되는 ‘빗살무늬토기’로서 탄소 연대 측정 상 기원전 4,000년 이상으로 올라가며, 앙소문화 유적의 채색토기보다도 오래 된 것이다. 빗살무늬토기보다 더 오래된 강원도 양양에서 발견된 덧무늬토기의 연대는 무려 기원전 5,1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동안 빗살무늬토기를 중국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북방에서 그 문화를 전파 받은 북방기원 단일민족설의 상징으로 쓰여 왔다. 그러나 지난 장에서 밝힌 바 있듯이 이는 한반도의 선주민이었던 왜인들의 자생문화이다. 또한 만일 토기라는 개념의 문화전파 경로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앙소문화의 세련된 채색토기는 빗살무늬토기의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서양의 채도문토기도 이베리안, 카프카즈인의 영향일 수 있다.)
어로민족들이 물고기가 있는데, 물이 흐르는 황하를 거슬러 올라가 토기문화전파를 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또한 굳은 땅이 아니라 점토가 풍부한 서해안의 갯벌이나 강변이라는 어로 생활환경이 토기제작이 일어난 자연적 조건이라 볼 수도 있다.
용오름 (출처 : 미공군 촬영 2003
참고로 씨(氏)는 알타이어계통인 한국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씨앗’과도 의미가 통한다. 이 개념은 한자가 한국어(알타이어)에서 유래할 수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중국어로는 종(種)이 씨를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한단고기나 중국설화에 고대인들의 이름은 주로 씨로서 통칭한다. 따라서 씨라는 것은 유목민전통을 가진 부계사회의 종족집단을 의미하는 단어로 보아야한다. 한단고기를 읽으면서 치우, 고시씨 등이 여러 명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씨는 대부분 두 글자이며 이는 알타이어의 이두식 표기이기 때문이다. 조선, 고려, 백제, 신라, 부여, 발해 등 나라 이름 또한 그렇다고 본다.
반면에 성(姓)은 티벳-중국어에서 유래하는 종족집단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女와 生을 합친 한자 그대로 모계사회전통을 가지고 있는 집단을 의미한다. 따라서 웅녀나 여왜는 모두 모계사회전통의 집단이었던 것이다. 성은 곧 부족명칭이며 나아가서 국가의 이름도 되는데, 하, 은, 주, 진, 한 등 중국의 모든 나라들이 한결같이 단음절임은 티벳-중국어족의 고유한 전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와 맥도 마찬가지이다. 역사가 흐르면서 유교문화의 정착이후 성을 부계사회 개념으로 전승하여 왔지만, 성의 본래 의미라면 오히려 엄마 성을 따르는 게 정설로 보인다.
태호복희씨가 최초로 풍(風)성을 가졌음은 통합의 결과이며 오로지 부계사회 종족의 관점일 뿐이다. 남방농경민에게 모계사회 전통의 성(姓)은 이미 있었다고 본다. 따라서 강(姜, 역시 女를 포함한다.)성을 가졌다고 알려진 염제신농은 복희씨보다 후대의 사람이 아니라, 선대의 사람으로 남방계 농경민에게 농사와 의약을 가르친 선조로 그 집단의 대표시조이다. 제곡고신도 마찬가지 개념으로 생각한다. 환인, 환웅, 단군이 한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듯이 신농과 제곡도 여러 명으로 보아야 한다. 심지어 여성이 아니었을까 의심되기도 한다. (베트남신화의 데 밍, 데 응이, 데 라이 모두 염제신농이며, 후직 역시 제곡고신이다.)
서방으로 전파된 용 토템의 어로민족
최근 신시배달국 유적으로 보여지는 홍산문화나 앙소문화보다 ‘오래된’ 선홍산문화유적인 발해만의 ‘사해문화유적’(BC 4,000여 년)에서는 빗살무늬토기의 변형인 지자문토기가 발견되고, 특이할 만한 사실은 용에 대한 토템이 있다는 사실이며, 문화유적의 특징상 ‘모계사회’의 여군장 제도를 가진 사회라고 한다. 참고로 앙소문화 역시 여자의 부장품이 많은 것으로 모계사회로 추정한다.
사해문화의 용무늬와 지자문 토기 (출처: 단군문화지도)
고인돌의 한반도 밀집분포로 미루어, 북방계 에스키모어족의 이동루트의 기원이 한반도이듯이, ‘고인돌의 초승달’도 남방계 고인돌 문화의 분포를 따라 한반도에서 대만, 필리핀을 거쳐, 인도네시아 및 동남아로 그리고 여기서 다시 인도지방(문다족), 나아가서 ‘마다가스카르’로 심지어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 지방까지 남방계 고인돌 문화를 역전파시켰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오스트로-아시아어족 루트 중 태국에서도 기원전 3,000년 보다 오래된 토기는 발견된다고 하지만, ‘빗살무늬토기’는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원전 4,000년의 새로운 유행사조(?)로 한반도에서 만들기 시작한 빗살무늬토기인인 에스키모어족의 북방이동루트보다 오스트로-아시아어족의 남방 해상 이동 루트는 더 ‘이전시기’ 원형의 토기(덧무늬토기? 또는 원시무문토기?)를 사용하는 집단의 이동 루트였다고 보아야 하며, 따라서 그 남방 이동 시기는 ‘2만 년 전 대빙하기 이후’에서 6,000년 전(BC 4,000 최고-最古-의 빗살무늬 토기연대)의 사이로 계산된다. 에스키모와 다른 점은 북방으로 이주하기에는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김병모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이 인골의 주인공이 인도에서 벼농사 전래 경로를 따라 동남아시아를 거쳐 한반도에 들어왔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말 가운데 400여개 어휘는 인도토착어인 드라비다어에서 유래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면서 ‘쌀은 살(Sal), 풀은 풀(Pul), 벼는 비야(Biya), 메뚜기는 메티(Metti), 농기구인 가래는 가라이(Kalai) 등이 그것으로 벼농사 기술과 함께 소개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윗 기사는 기원전 1,000년 강원도 정선군 아우라지 인골이 영국인 유전자를 가진 백인으로 나타나자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인도에서 유래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김병모교수가 그것을 해석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벼농사와 관련된 단어가 반드시 드라비다어가 기원이라고는 볼 수 없다. 부산 신석기문화 유적지에서 독일인들의 두골이 발견되었듯이 백인종들이 초원길을 경유하여 동해안을 따라 한반도로 유입되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더욱이 정말 백인(영국인 유전자)에 가까운 인도인은 기원전 1,000년 에야 비로소 인도를 침략한 인도-유러피안어의 아리안족이다. 그럼 BC 1,000년의 동 시기에 아리안족 일부는 인도를 침입하고, 일부는 비행기(?)나 배를 타고 한반도 아우라지에 와서 죽었단 말인가? ;-) 또한 바다에 살던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라면 몰라도 쌀농사의 농경민이던 드라비다어족(M20) 또는 아리안족이 어떻게 배를 타고 한국으로 왔다는 생각을 했을까? 차라리 드라비다어가 아니라 인도의 문다어라면 이해가능하다. 한반도는 그 위치상 항상 문화를 전파 받는다는 고정관념의 탈피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이 오스트로-아시아어족은 한반도에서 벼를 처음 발견했고, 남쪽 해상 이동루트를 따라 원시농경을 하며 전파했겠지만, 제대로 된 농경에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어로’라는 주 경제생활이 있었기 때문이며 농경생활은 익숙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마치 그림인터페이스(GUI)를 맨 처음 개발한 제록스가 복사기 시장 때문에 컴퓨터 OS 개발을 방기한 이유와도 같을지는 모르겠다.(애플은 MS를, 제록스는 애플을 같은 이유로 고소했으며 모두 패소했다.) 오히려, 산지에서 오래된 채집-농경의 경험을 가진 드라비다어족과 티벳-중국어족이 문다족을 만나게 된 인도 아셈지방에서 벼 재배를 성공하여, 그들의 이동루트에 따라 벼농사의 문화전파에 일익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양자강을 따라 다시 벼농사에 적합한 환경-범람원-을 찾아 동남아로 들어간 집단은 아셈지방에서 그 문화를 전승받아 벼 재배를 성공한 염농의 후손인 순수 남방계 티벳-중국어족 집단이다. 이들이 다시, 베트남지역에서 어로를 주생활로 하는 오스트로-아시아어족과 혼혈을 이루어 중국 동해안을 타고 북상한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강서대묘 사신도
“오방(동.서.남.북.중)에 각기 사명이 있으니 하늘에서는 제라하고 땅에서는 대장군이라 한다. 오방을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천하대장군이라 하고 지하를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지하여장군이라 한다. 용왕현구는 선악을 주관하며, 주작적표는 목숨을 주관하며, 청룡령산은 곡식을 주관하며, 백호병신은 형벌을 주관하며, 황웅여신은 병을 주관한다..... 인류의 조상을 나반이라 한다. 처음 아만과 서로 만난 곳을 아이시다라 한다. 또 사타려아라고도 한다. 어느 날 꿈에 신의 계시를 받아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정안수를 떠 놓고 하늘에 알린 후 돌아가며 술을 마셨는데, 산남의 주작이 날아와서 즐기고, 수북의 신구가 상서를 나타내고, 곡서엔 백호가 산모퉁이를 지키고, 계동엔 창룡이 하늘로 승천하고, 가운데 황웅이 있었다.”(한단고기: 삼신오제본기)
지금까지의 정보를 종합하면, 서백호는 한족(예족)의 토템을 이야기하며, 동청룡은 한반도 및 중국 동해안의 왜인의 토템인 셈이다. 설명을 하지 않은 북현무는 말갈 및 몽골족 즉 뭍으로 올라온 거북이와 같은 북방 어로민족을 의미하며, 남주작은 역시 쌀농사를 하며, 양쯔강을 따라 내려온 티벳-중국어족인 초나라지역의 봉황토템을 일컫는 이야기이다.
주작이던 봉황이던 이들 민족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동물은 ‘중국남부에서 인도차이나반도’에 이르기까지 서식지가 분포하는 ‘공작’이란 동물이 그 원형으로 생각된다. 중난(中南)민족대학 황창링(黃長凌) 교수는 “초 문화의 핵심은 무속에 있다. 귀신을 숭상하며 다양한 종교사상을 발전시켰다. 초나라 고분에서 출토되는 봉황은 초나라 원주민들이 섬겼던 토템에서 유래한 것으로 후일 초 문화의 상징이 됐다”라고 말했다. 기원은 논농사의 웅족과 동일하다고 보지만, 조금은 다른 민족일 수도 있다.
방위상 색상의 의미는 마고신화와도 연관이 된다. 서남해의 마고성을 기준으로 백소족은 서쪽에, 그리고 청궁족은 동쪽으로 갔다. 북으로 간 황궁족은 중앙으로 내려왔으며, 남쪽의 흑소를 적과 흑으로 나뉘어 각기 남,북에 자리 잡은 꼴로 본 듯하다. 물론 마고신화의 종족별 기원과는 전혀 다르지만, 조상들은 색상의 배치를 그러한 뿌리 깊은 신앙 속에서 3, 4, 5로 커가는 어떤 수리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신도가 최초 그려진 시점이 언제일까? 그것은 그림문자인 한자와 마찬가지로 치우천황이 황하유역을 평정하고 나서, 황하유역 곰족의 농경민들에게 통합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4방 오랑캐를 의미하는 뜻으로 차별성을 강조하는 뜻에서 그려진 그림으로 생각한다. (그림을 그린 이유가 지난 장에 언급했듯이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후 사방수호신의 개념으로 왜곡된 것이다.
그런데, 가운데 황웅 이야기는 한단고기(삼신오제본기)이외는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곰족은 배달족과의 통혼으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템을 좋아하는 중국인은 산해경이 제작된 한나라 때 스스로 멋있는 황룡을 중앙에 그려 넣었는지는 모르지만, 고구려의 사신도처럼 중심은 무덤의 주인인 ‘사람’이어야 한다.
모악산 천용사 산신각 탱화
“산신도에 그려지는 호랑이는 백호이다. 백호는 서쪽과 금성(金星)을 의미한다. 하늘에서 천제(天帝)의 호위를 담당하는 별이 금성이다. 그러므로 산신도에 모셔진 산신이 금성의 호위를 받는 천제의 화신임을 알 수 있다. 천제의 화신은 곧 천자(天子)이다. 호랑이 2마리가 호위하는 대인, 즉 천제의 화신은 한웅천왕이고, 호랑이 1마리가 호위하는 대인도 천제의 화신인 단군왕검이다. 동자는 마고의 외동아들을 상징한다. 그를 막동이라고 한다. 막동이는 막동이(邈東夷), 즉 마고에게서 태어난 동이족을 의미한다. 부인 1명은 한웅천왕의 부인인 매화부인, 즉 직녀이고, 부인 2명은 단군왕검의 2 부인, 즉 웅심국왕의 딸인 웅녀(熊女)와 하백 부소갑의 딸인 하백녀(河伯女)이다. (노중평, 마고지나, http://blog.empas.com/got7777/3821129)”
단군신화에서도 배척되었고 사방에서 위협하는 적대적 존재가 어떻게 수호신이 된 것일까? 곰이 사람이 된 것부터가 이미 포용의 전략임을 안다면 사방 오랑캐의 신관을 수호신으로 만드는 것 역시 포용의 전략이다. 마치 외래종교인 불교가 삼신각을 포용하여 민중에게 전파되듯이, 로마 카톨릭이 이집트의 이시스 신앙을 포용해서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미국의 청교도가 카톨릭을 모방해 자유의 여신을 상징으로 쓰듯이…….
태양, 천손족으로서 해모수를 상징하는 까마귀(신을 의미하는 곰, 검다와 어원이 같다는 의견도 있다)의 북부여계와 비록 갈등관계에 있었지만 어로생활 말갈과의 혼혈족으로서의 길러준 아버지인 동부여계의 ‘금와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해모수가 항상 까마귀 깃털 모자를 하고 다녔다는 전설, 그리고 금와가 의미하는 바가 말갈족 토템으로 추정되는 거북이처럼 수륙양생동물인 개구리 또는 두꺼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리숫자인 3수와 4수가 가지는 의미는 역시 남녀를 상징하는 수리적 의미로서 각기 해모수와 유화부인(하백의 딸)을 의미하는 것 같다. 아무튼 마무리하자.
사람과 동물의 차이가 무엇인가? 생태계란 어찌 보면 욕심으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잉여산물이 없을 때는 욕심만으로도 모든 것이 채워지며 조화롭게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열악한 경제활동이었던 수렵은 하나라도 나누어 먹어야하는 인간 공동체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었지만, 반대로 동물자원의 멸종이라는 자연 파괴의 반성도 안겨주었다.
거꾸로 풍부한 생산력의 농경은 인류를 멸종에서 구해낸 소중한 경제활동이었다. 그러나 땅에 대한 소유욕은 스스로를 동물과 동일시하며 인류 집단 간에 전쟁 문화를 발생시켰고 인간 공동체의 소중함을 잃어버리게 하였다. 사람을 중시하는 한민족의 홍익인간 이념은 그것에 대한 반성이었고 인류 공동체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마고성에의 복본을 향한 진정한 부도의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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