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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이승만박사께 복종하기를 맹세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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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윤*현 조회수 275 |
"해(하나님) 아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침략.부패.탐욕.날조의 악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반공 자유민주 시장주의자였던 이승만에 대한 김구의 본심 악의 노예가 될 것인가? 악을 제압하여 승리할 것인가? 김구,"죽음으로써 이승만 박사께 복종하기를 맹세합시다!"
1947년 11월 14일 유엔총회에서 유엔감시하의 한반도 자유선거 실시를 가결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11월 24일 김구는 남한 단독선거는 국토양분의 비극을 가져올 것이라고 발표했다가 11월 30일 이승만을 방문한 뒤 번복하여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였다. 김구의 방문을 받고 한시간여 요담을 한 후,
김구는 자신과 이승만은 조금도 근본 의사의 차이를 보지 못했다고 말하고 사실상 대한민국 정부 참여 의사를 밝히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김구의 성명 발표 후 이승만은 김구와 함께 서북청년단 1주년 기념식에 참석회 훈화를 하였다.
그러나 협력관계가 강화되어 가던 12월 2일 발생한 장덕수 암살사건으로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가게 되었다.
이승만이 대세인 상황에서 이승만을 라이벌로 생각해 버린 나머지, 권력욕에 눈이 멀었던 김구는 역시 흉노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다!
이승만은 반공주의적인 발언을 하게 되는데 이는
향후 자신의 정치노선을 분명히 드러내게 된다.
이러한 그의 과감한 발언으로 그는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들로부터 '늙은 보수꼴통'이라고 비난받기도 하였다.
1946년 6월 11일 서울 정동교회에서 열린 독촉국민회 전국대표자대회에 참석하였다. 이승만은 이날 연설에서 "소련 사람을 내보내고 공산당을 이땅에 발못붙이게 하자,"고 역설하면서, "최고사령부라고나 할까, 최고의 명령을 내리는 기구를 조직할 터이니 이 명령에 복종함을 맹세"할 것을 요구하였다.그러자 김구는 "우리는 죽음으로써 이승만 박사께 복종하기를 맹세합시다."라고 화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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