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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사는 한국사/명 태조 주원장은 고려 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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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4 윤*현 조회수 1201

 

 



1만년 한민족사 바로 세우기는 민족정기와 국가기강의 기반이다!


한국의 3신1체 제천문명/홍산.인더스.슈메르.이집트.인디언 문명


고대 지구촌 문명의 본국은 대한민국이였다! 국제외교에서 당당하자!


흉노세습독재자 김정은도 객기부리고 있지만 한민족사의 열등감인 동북공정 지나국도 객기부리고 있는 것이다!





고려인 주원장이 건국한

 

 

 

명나라는 한국의 분국이다


 

전남 해남출신의 청주 한씨 집안의 고려노비 주원장, 서해를 건너 지나대륙으로 이주하여

 

홍건족의 수장이 되어 원나라를 무너 뜨리고 명나라의 태조가 되었다. 주원장의 황후는 고려 한씨이고,

 

주원장의 참모진도 모두 고려인들이고, 황제에 즉위하여 한족을을 몰살시켰으며, 황제를 보좌하는

 

환관들도 조선인들이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주원장이 한반도 출신의 고려인임이 명확히 입증된다.

 

또한 주원장은 자신선조의 묘가 조선에 있으며, 조선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전남 해남 출신의 주원장은 고려 귀족 청주 한씨의 노비출신으로 신분의 제약을 느껴 서해를 건너 지나대륙으로 이주하여 홍건족 반란을 주도하여 명나라 황제가 되었다. 주원장의 황후나 참모들이 모두 고려인들이다.



▲ MBC'서프라이즈'방송화면 자료

청주 한씨 문정공파 족보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麗妃 明 太宗 永樂帝 西成府院君永恭愼夫人 明 宣宗宣德帝上 同昭惠王后 德宗大王 西原府院君確丁巳誕降 甲子昇遐..." 청주 한씨 여비가 주원장의 황후가 되어 명나라 황제 영락제를 낳았다는 족보 내용이다.
 
지나대륙의 주인이 되는 황제 정도면 황제의 생가 정도는 널리 알려져야 상식이다. 그러나 주원장의 생가는 그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주원장이 지나대륙으로 이주해 온 고려인이기 때문이다.

 

주원장이 전라도 해남의 한영정집안의 머슴이었을 때 주인집 딸인 한여비와 눈이 맞아 지나국으로 도피하였거나 주원장이 지나국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은 후에 여비를 불러들인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아 더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나, 명나라 영락제(永樂帝)의 모친이며 주원장의 부인되는 여비를 낳은 문정공파 한씨의 족보에 고려 중엽에 왕후들(容信王后,容懿王后)를 배출한 고려 최고의 명문 대가다.
 
따라서 지나 사학계가 주원장의 황후 여비에 대해 공녀 운운함은 이미 앞에서도 기술한 바 홍건족의 민란이 일어나던 시기에 해당함으로 오히려 원나라에 공녀를 바쳤어야 했던 상황에 비하면 이미 명나라를 개국하기 전에 혼인을 하여 자식(영락제)을 낳던 연대상 혹은 조건상에서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민간 전설집에는 주원장이 지나국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웠다는 얘기가 적혀 있어 더욱 신빙성을 더했다. 주원장의 출생지로 회자되는 곳이 우리 나라의 전라남도 해남 마을로 전해져 내려 온다.
 
이성계 아버지가 고려 당대 유명한 풍수지리가 '유현'으로부터 천하 명당이 전라남도 해남 바닷가 어딘가에 있음을 알아 내고는 급히 찾아가 보았는데, 수영을 잘 하고 털이 많고 피부가 붉그래해서 털복숭아라는 별명을 가진 주원장(초상화의 이미지와 동일)이라는 사람이 3년전에 자기 부모를 모신 후 지나지역의 '안휘'라는 곳으로 갔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말년에 주원장의 유언에 의해 극비밀리에 해남에 묻혔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나국 화교들(지나국의 자본을 독점하고 있는 백제유민들)이 최고로 치는 백제지역 출신의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묘지라고 불리는 곳인 명효능이란 곳에는 터만 성대하게 궁궐같이 지어져 있을 뿐, 묘지가 없다. 주원장은 아들 영락제(광개토태왕 연호와 동일)에게 황제를 양위하고 가묘만 만들어 놓게 한 후에 고향인 전남 해남으로 가서 여생을 마친 것은 아닐까?

 

 

고구려 광개토태왕 역시 38세에 붕어했다는건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아들 장수왕이 100세에 가깝게 살았던 장수 dna이기 때문이다. 광개토태왕은 아들 장수태왕에게 태왕을 물려 주고, 집안에 유물만 넣은 가묘를 만들어 300여명의 수묘인으로 지키게 한 후에 자신은 초원으로 이주시킨 54만의 고구려인들 중에 지원병만 모아 고구려 기마군을 구성한 후에 서진하여 헝가리 초원에 출현한 훈족의 대왕 아틸라가 아닐까 싶다.

 

아틸라는 광개토태왕 시기에 동일인물이며, 군 전술이나 성품과 기질이 광개토태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아틸라가 죽은 후에 백성들은 한(훈)민족의 위대한 왕이라면서 찰갑옷을 묻었다고 한다. 아틸라의 투구는 고구려 태왕들의 쓴 투구와 같다. 그리고 아틸라 사후 훈족이 세운 나라 헝-가리는 한-고리로 한-고구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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