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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나 먹으면 독사과..김정은 일당에 반하면 사라져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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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7 윤*현 조회수 235 | ||||||||||||||||||||||||||||||||||||
일반적으로 ‘가치관’ 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해 가지는 가치에 대한 우리의 생각’ 을 말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세계에서의 가치판단에는 첫째, 진리와 비진리를 가리는 지(知)적 판단. 둘째,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못한 것을 가리는 정(情)적 판단. 셋째, 선과 악을 가리는 의(意)적 판단이 있다. 다시 말해서 자유민주주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사람다운 생활’ 또는 ‘사람다운 발전’ 이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어있는 것이다. 우리가 거짓말과 속임수, 폭력과 독재와 전쟁을 배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며, 이것들을 일삼고 있는 공산당을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특유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데, ‘공산혁명의 목적인 정권장악’ 이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정권을 잡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가치가 있는 것’ 으로, 여기에 도움이 안 되면 ‘가치가 없는 것’으로 저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레닌은 ‘우리의 윤리는 전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의 이익에 종속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윤리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의 이익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계급투쟁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본가를 타도하여 자본가 계급을 절멸하는 것이다. 인간사회의 밖으로부터 취해온 윤리 따위는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레닌, 청년동맹의 임무> 즉 저들의 가치관이라고 하는 것은 ‘지배계급과 자본가를 타도함으로써 자본가 계급을 말살시키고 공산당이 정권을 잡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정권을 잡는다는 목적에 도움이 되는 이론은 ‘진리’ 이고 저들의 계급투쟁에 해롭고 도움이 되지 않는 이론을 가리켜 ‘비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이 같은 계급적 가치관은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을 가리는 경우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즉 자본주의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끓어 오르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혁명투쟁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바치도록 만드는데 도움이 되면, ‘아름다운 것, 또는 예술적’ 이라고 판단하며, 이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은 것, 예술적 가치가 없는 것’ 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저들이 ‘춘향전’ 에 대해서는 아무런 가치도 인정하지 않는 반면, 이름마저도 섬뜩한 ‘피바다’ 를 가리켜서는 최고의 예술적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같이 공산주의자들의 가치관에 있어서는 진리와 미와 윤리의 기준을 언제나 계급투쟁이라는 한 가지 사실에 두고 있어서, 모든 공산주의자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를 대할 때에도 이 가치관 위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며 실천해야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바, 저들은 이른바 이것을 가리켜서 소위 ‘당성’ 이라고 부르고 있다. 즉 저들의 가치관에 철저한 것을 당성이 ‘강하다’ 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가리켜서는 당성이 ‘약하다’ 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공산당의 주장이나 이론을 면밀히 살펴보면 우리와 똑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그 뜻이 우리와는 다르게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이따끔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은 술책은 ‘용어를 혼란시켜라’ 라고 한 레닌의 지시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공산주의자들은 이론을 ‘선전이론’ 과 ‘실천이론’ 의 이중으로 꾸며 놓은 다음 이것을 용어 혼란전술로 전개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의 이론이라는 것은 마치 땅에 지뢰가 묻혀있는 전쟁터와 같다고 할 수 있는 바, 얼핏 보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이는 전쟁터의 여기저기에 지뢰가 묻혀있듯이 공산주의자들의 글과 이론가운데는 우리의 눈에 익은 많은 용어들이 엉뚱한 뜻을 품고 곳곳에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뢰를 탐지할 기재나 기술 없이 지뢰밭을 전진하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들의 용어혼란전술을 간파 할 수 있는 능력 없이 공산주의자들의 이론을 취급하는 것은 저들의 함정에 빠지는 꼴이 되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 가운데는 ‘평화’ 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도 원하고 저들도 내세우는 이 ‘평화’ 라고 하는 말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사용될 때는 그 뜻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가 ‘평화’ 라고 말할 때는 전쟁의 반대개념으로서 전쟁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의 용법에 따르면 ‘평화’ 라는 것은 이 지구위에서 자본주의가 완전히 말살된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왜냐하면 전쟁의 유일한 원인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라는 것이며 따라서 이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더 나아가서는 모든 자본주의를 없애버려야만, 즉 전 세계가 공산화 되어야만 전쟁이 사라지는 ‘평화’ 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을 직접 들어 보기로 하면, ‘현재의 근본적인 문제는 평화와 전쟁의 문제이다. 전쟁의 위험의 유일한 원천은 제국주의(자본주의)이며, 제국주의(자본주의) 진영은 세계적 열핵전쟁이라는 인류에 대한 가장 무서운 범죄를 준비하고 있다.’ - <소련 공산당 강령> ‘우리들이 전 세계에 걸쳐서 부르조아지를 타도하여, 종국적으로 타도한 뒤에야 비로소 전쟁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레닌, 프롤레타리아혁명의 군사강령> 즉 전 세계가 공산화 되어야만 전쟁이 없어지고 평화가 실현 된다는 것이니, 따라서 이 지구위에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전쟁이 없더라도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는 논리인 것이다.
예를 들어 1953년 7월 27일 한국동란은 휴전이 되었다. 따라서 휴전이후의 시기를 가리켜서 우리는 평화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은 이 동일한 시기를 평화라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남쪽에 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있기 때문이다. 즉 휴전선 남쪽에 자본주의 국가가 남아 있는 한 아무리 휴전이 되고 전쟁이 없어도 저들은 평화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이전’에도 전쟁은 있었으며, ‘제국주의가 아닌 이란과 이라크 사이, 이스라엘과 레바논사이는 물론이고 공산주의 국가인 중공과 월맹사이, 월맹과 크메르 사이’ 에도 전쟁이 있었고,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소련의 적색 제국주의 국가’ 도 분명히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 왜 공산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평화관을 주장하는가? 그 이유는 자본주의만 타도하면 영원한 평화가 실현될 것처럼 주장함으로써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혁명을 선동하기 위해서 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자들의 용어혼란전술을 정확히 이해하고, 저들의 위장된 평화공세에 슬기롭게 대처해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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