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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되면 거짓은 들통나..진짜 김일성은 김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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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2 윤*현 조회수 490

● 사진으로 보는 마니산 참성단강화군 마니산 참성단 한시적 개방된다● 사진으로 보는 마니산 참성단
 

     

   

 

 


오직 양심 하나님만 섬기며



 







오직 양심 하나님만 섬기며




중도 양심정치를 하자! 그래야




정치인의 영적 권위가 서게 되고




국가안보와 민생을 살리는




정치를 할 수 있다. 사랑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과 조국 대한민국이다!



먼저 천국과 천국의 의를 구하라!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 곧 한국이다!


천국은 자유와 행복이 보장된 나라다!


따라서


사악한 세력은 침노하여 빼앗으려 한다!


그들은 도적이요, 강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도적과 강도의 집은 감옥이라!


▶가짜김일성 개새키본명은 김성주 -진짜김일성장군은 김광서


소련 공산주의 확장에 맞서 자유민주.시장경제주의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지켜낸 이승만 건국 대통령

 

자유민주.시장경제주의를 가치로 삼는 대한민국은 흥하였으나,세습독재의 가짜 김일성왕조는 망하게 되었다!

 

중공군으로 항일전을 벌이다 일제에 쫓겨 소련으로 이주하여 소련군인으로 테러와 정보강탈(현 사이버 테러) 특수훈련을 받고 스탈린만세를 부르며 충성을 맹세한 김성주를 소련의 스탈린은 1945년 해방 이후 선택하여 항일영웅투사인 김일성으로 둔갑시켜 소련군정이 꼭두각시로 내세운 30대 초반의 김성주가 평양군중대회에서 김일성으로 소개되자,

소련의 흉계(2), 위성국 꼭두각시 김일성 만들기항일영웅 김일성 대리자로 스탈린에게 간택된 연기자 김성주

평양군중은 "진짜 김일성이 맞아?"하면서 수군거렸다. 당시 평양군중도 김일성은 나이가 많이 먹은 노장군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반증인 것이다. 김성주는 소련군정에 만들어준 정권하에서 왕노릇하면서 부산에서 친일숙청을 피하여 월남해 온 친일소설가를 통하여 가짜 김일성 우상화 세뇌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김성주(김일성) 사이비개독~~~~~~~주체교변천김일성에게 인사갔더니 '김성주입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거짓은 참을 이길 수가 없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거짓 우상은 헛되고 헛되고 헛된 모래성이다!


 가짜김일성개새키~!본명은 김성주김일성가짜(본명김성주)vs진짜 김일성. 그리고 이승만 항일투사


북의 김성주 세습독재정권이 아편팔이와 달러조작-테러집단으로 전락한 이유는 김성주가 가짜 김일성으로서 만주 마적단 출신의 중공.소련군 집단이기 때문이다. 김성주는 본래 김정일의 이름까지 소련식 이름으로 지었을 만큼 소련인으로 살고 싶었던 인물인데, 소련이 괴뢰정권의 우두머리로 삼고 나라이름까지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으로 지어준 것이다.

 

이는 북한지역이 핵개발에 필요한 우라룸 생산지역으로 소련에게는 중요시되는 지역이였기 때문에 소련의 지배력이 강한 정권이 필요해서였다.


 

 

 

김성주 내각의 친일파




*김영주-북한 부주석, 당시 서열 2위, 김일성 동생 (일제시대 헌병 보조원)
*장헌근-북한 임시 인민위원회 사법부장, 당시 서열 10위 (일제시대 중추원 참의)
*강양욱-북한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당시 서열 11위 (일제시대 도의원)
*정국은-북한 문화선전성 부부상 (아사히 서울지국 기자)
*김정제-북한 보위성 부상 (일제시대 양주군수)
*조일명-북한 문화선전성 부상 (친일단체 ‘대화숙’ 출신, 학도병 지원유세 주도)
*홍명희-북한 부수상 (일제시대 임전대책협의회 가입 활동)
*이 활-북한군 초대공군 사령관 (일제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허민국-북한 인민군 9사단장 (일제시대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강치우-북한 인민군 기술 부사단장 (일제시대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김달삼-조선로동당 4.3사건 주동자 (일제시대 소위)
*박팔양-북한 노동신문 창간발기인, 노동신문 편집부장 (일제시대 만선일보 편집부장)
*한낙규-북한 김일성대 교수 (일제시대 검찰총장)
*정준택-북한 행정10국 산업국장 (일제시대 광산지배인 출신, 일본군 복무)
*한희진-북한 임시인민위원회 교통국장 (일제시대 함흥철도 국장)
*이승엽-남조선 로동당 서열 2위, 월북 후 빨치산 유격투쟁 지도 (일제시대 식량수탈기관인 ‘식량영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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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초대 내각 독립운동가 내각

*대통령-이승만(李承晩, 상해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부통령-이시영(李始榮, 임정내무총장)
*국무총리*국방장관-이범석(李範奭, 광복군 참모장)
*국회의장-신익희(申翼熙, 임정내무총장)
*대법원장-김병로(金炳魯, 항일변호사)
*무임소장관-이윤영(李允榮, 국내항일)
*무임소 장관-이청천(李靑天*광복군 총사령관)
*외무장관-장택상(張澤相, 청구구락부사건)
*내무장관-윤치영(尹致映, 홍업구락부사건)
*법무장관-이 인(李 仁, 항일변호사, 한글학회사건)
*재무장관-김도연(金度演, 2.8독립사건)
*상공장관-임영신(任永信, 독립운동가-교육가)
*문교장관-안호상(安浩相, 항일교육)
*사회장관-전진한(錢鎭漢, 국내항일)
*체신장관-윤석구(尹錫龜, 국내항일, 6.25전쟁 중 인민군에게 총살)
*교통장관-민희식(閔熙植, 재미항일)
*총무처장-김병연(국내항일)
*기획처장-이순탁(국내항일)
*공보처장-김동성(국내항일)

 

 

 

진짜 김일성은 일본육사 출신의 신출귀몰한 항일투사 김광서

 

일본육사 27기 김석장군이 진짜 김일성은 1기 선배인 김광서라고 증언했다

백마를 타고 다녔다는 항일투사 김광서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참아 이 곳을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여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사진 左下:서대문 감옥의 이육사)

     

    인류중심이 될 한민족의 광명시대를 열어줄

     

    동방의인의 출현을 고대한 이육사의 민족저항시

     

     

     

     

    (주:신흥무관학교-우당 이회영 선생..조선 말기에 흔한 부자들과 다르게 5번째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만주로 넘어 가서 만주무관학교를 설립하였다.모든 재산을 처분한 돈은 당시 40만원 현재 가치로는 600억원 의 해당하는 돈이였다.)

     

    그리고는 호적을 바꾸면서 김해(金海) 김씨를 시흥(始興) 김씨로 바꾼다.그러나 그는 경기도 시흥(始興)과는 전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물이고 <본인이 시작하고 일으켜 흥하게 한다=始興>는 단호한 의지를 본관으로 쓴 듯하다.

     

    그러니 그는 시흥 김씨 시조인데 그는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었다 그렇다면 그 딸들이 현재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다는데 시흥 김씨는 대가 끊긴 것이라고 보아야 할 듯 하다.

     

     김광서는 일본군을 탈출하면서 이름을 또 바꿔서 위장하면서 김경천(金敬天)으로 불렀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청천 같이 모친의 성을 따서 윤경천으로 쓰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어느 때부터 역사 속에 별안간 사라진다. 그가 바로 원조(元祖)의 진짜 김일성이다.

     

    첫째로 김경천(金敬天)이라는 이름으로 곳곳에 출몰하여 일본 정보문서에는 김경천(金敬天)이란 불령선인(不逞鮮人)의 두목이 곳곳에서 부하를 규합하여 무장투쟁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는 예전에 많은 동포들과 독립군이 있던 소만(蘇滿)국경지역이 일본군에 의해 폐허가 되면서 수 많은 동포들이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을 보면서 곳곳의 침략군을 응징했고 신출귀몰하는 전법으로 일본군을 괴롭히며 동포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그러다가 일본 정보문서에는 훗날 그가 김광서(金光瑞)라는 것이 밝혀 진다.


    둘째로 그는 신문기자들에게 당당하게 본인의 전투내용을 떳떳이 알린 듯하다. 신문에 알릴 때는 김광서(金光瑞)라는 본명으로 알려줬기에 독립군 대장으로 신문에 인터뷰한 기사가 상당히 많아 남아 있다.


    동아일보에는 당시의 김광서 장군이 나폴레옹에 본인을 비유하는 대담한 지휘자였음을 말한 내용까지 실려 있을 정도이다 그가 일본육사 23기 기병과를 나왔고 탁월한 지휘자임이 상세히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아마도 신문기자들에게 독립운동의 꿈이요, 태양과 같은 존재로 보였던듯 하다. 독립군 대장으로 인터뷰 기사가 나간 사례는 거의 독보적인 사례에 해당할 정도의 용기있는 행위였다. 

    그런데! 그는 결정적인 데에서는 동포들에게 본인을 김일성(金日成)이라고 말하고 떠난 듯하다. 그는 흡사 의적 일지매나 임꺽정같은 행동도 하고 백마를 타고 홀연히 나타나 일본군을 단호히 혼내 주고는 동포를 도와준 뒤에 귀신같은 사라지는 멋진 행위를 만주 동포들에게 서서히 신화 같은 인물로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가며 날로 신비성을 증폭시키는 가운데 <김일성 신화>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불행한 영웅이었던 듯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의 적(敵)인 공산 소련군과 손을 잡기도 하며 공동작전을 펴는 등의 전투를 하다가 서서히 소련군에 잡혀 버리는 길을 가고 끝내 그들에게 이용당하며 인생을 마친 듯하다.


    어떻든 <김일성 신화>는 그가 사라졌어도 만주 땅에 강력히 남았었고 그것이 이어지며 말기에는 김성주가 김일성 장군(김광서 장군)을 빌려 쓰면서 6.25동족상잔을 일으켜 <김일성 신화>에 흙칠을 하고 마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전설의 김일성 장군 유족에

    건국훈장 수여 (옥포誌 2000년 1월호)

     

    한인들 사이에 전해져 온 김일성장군에 관한 전설은 한인들이 그저 알고 있기로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주권을 약탈하던 그 때부터 '김일성 장군'이란 용맹한 항일전사가 있어서 오랜 세월을 두고 韓滿국경 혹은 露滿국경에서 일본의 군경과 숱한 전투를 백전백승으로 치루어 낸 특출한 군략가이며 애국자였다는 이야기였다.

     

     

    <김경천 장군의 자식들. 앞줄 왼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맏딸 지리, 셋째딸 지란, 막내딸 지희, 맏아들 수범>

     

    그 전설적 김일성장군 그 중의 한 사람인 김경천 장군의 혈육이 8·15 50주년을 맞아 지난 98년에야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게 되었다고 하니 후손 된 우리로서 심히 민망스러워 몸둘 곳을 모르겠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일성(본명 김성주)는 희대의 "역사 도적놈"이자 "영웅 사기꾼"이다.

     

     

     

     

     

     

     

     

     

     

     

     

    • 김광서는 일본육군사관학교 23기 기병과를 나와 일본군 장교였는데 탈출하여 신흥무관학교 달려간 인물이다.

     

    • 그런데 그는 역사상 극비 신비의 인물이다 비슷한 출신에다가 동시에 비슷한 길을 간이청천(지청천)의 모든 것이 알려진 바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이 가려져 있다

     

     

    (사진 좌:김광서(金光瑞)

     

    그는 너무나 위장을 많이 해서 성은 물론 본관까지 바꾼 특이한 인물이다 그는 원래 이름이 김현충(金顯忠)이었다 그런데 일본육사를 다니면서 김광서(金光瑞,일본육사23기 기병과)로 바꾼다 김광서장군이 육사23기생이며 이청천이나 홍사익장군이 육사 26기이며 김석원장군이 육사27기생이었다 그리고 박정희장군이 육사57기생이다.

     

    백마를 타고 번개같이 날아다녔다는 김경천 장군의 본명은 '김광서'로서 함경남도 북청출신이며 1911년 일본 육사 23기생으로 기병과를 졸업하고 도쿄 기병 제1연대에 근무한 바 있고, 1917년 1월에서 9월까지는 육군기병실시학교에서 용병법과 기마술을 교육받은 바 있으며 일본육사출신 한인 친목 모임인 "전의회"의 회장으로서 그 회원 중에는 일본 육사 26기 흥사익, 이응준, 27기 김석원, 김인욱 등 34명이 있었다.

     

     

    앨범에 적힌 김경천(본명 김광서)의 생일은 1887년이나, 종로구청 호적계의 제적서고에 있는 그의 호적등본에는 1888년 6월 5일로 되어있으며, 1919년 6월 망명이전까지의 주소는 사직동 166번지인데 1912년 12월 2일 본인 출원에 의한 취적 등록이라 되어있고 본적도 이 곳으로 옮겨져 있고,


     

     


    본관도 김해에서 시흥으로 되어 있는데 본인 출원에 의한 정정이라 기록되어 있다. 동향인의 증언에 의하면 북청군 해안의 승평태생임이 틀림없다고 한다.

     

    육사 재학 중에 이름을 김광서로 개명했고 그 이전의 이름은 김현충이며 김경천, 윤경천 등의 별호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父 김정우는 구한말 포병부령까지 지낸 자로서 1857년생이며 1894년 5월 38세의 나이로 일본 경응의숙보통과에 입학하였다. 그의 반에는 윤치성(윤치영의 형) 노백린 등이 함께 했는데,

     

     

    이들은 육사 11기로 1899년에 졸업하게 되고 김정우는 동경고등공업학교를 거쳐 포병공작창에서 총탄제조법을 익힌 후에 돌아와서는 군기창장을 지낸 바 있으며 1906년에는 윤치성과 함께 부령으로 승진된 바 있는 사람이다. 

     

     

    1919년 2월 20일 김경천은 병가를 얻어 귀국하여서는 6월에 일본육사 3년 후배인 이청천(지대형)과 함께 만주로 탈출 신흥무관학교에 찾아가 독립군 교육부터 담당했다. 이 소식에 고무되어 열혈청년이 600여명이나 신흥학교에 몰려들었다 한다. 이 때에 구한국군 정위(대위) 신팔균도 함께 교관으로 있었는데 세 사람이 합심단결하여 조국광복을 쟁취하자는 뜻에서 天자 돌림 별호를 쓰기로 하여 신동천, 김경천(또는 윤경천, 母가 윤씨), 지청천(이청천, 母가 이씨)으로 서로 불렀는데 한인 사회에서는 이들을 남만삼천(南滿三天)이라 부르며 따랐다고 한다.

     

     

    이 남만 3천에 열혈 청년장교가 한 사람이 더 끼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철기(鐵騎)란 별호를 가진 이범석(李範奭)이었다.

     

     

    그는 그해 봄에 중국의 운남성에 있는 운남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에 장교로 배치되었는데 남만의 신흥무관학교가 독립군의 집결지라는 소문을 듣고 그해 여름에 그리로 찾아와서 남만 3천과 합세했다.

     

     

    이들 4사람의 장교들은 당면 목표를 다음해(즉1920년) 3월 1일을 기해 국경을 넘어 조선 땅으로 진격함으로써 3·1민족봉기를 재현시키는 일대 계기를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이범석씨(1900-1972) 증언에 따르면, 1920년 3월 1일을 기하여 국내로 진격하기 위한 거사 계획의 일환으로 김경천은 1919년 초겨울에 무기구입차 소련으로 떠났다고 한다.

     

     

    그때 시베리아에는 볼셰비키 혁명의 파급을 막기 위해 일본군이 출병해 있었는데 일본군의 한인 독립운동 근거지에 대한 공격 때문에 김경천은 독립군을 규합하여 日軍과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원리에 따라 赤軍(볼셰비키군)과 연합하여 일본군 또는 白軍(反볼셰비키군)과 싸웠는데 이때에 그는 김일성이란 또 하나의 별호를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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