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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혁당사건의 진실과 좌파정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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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8 송*근 조회수 259 |
인민혁명당 사건 은 FACT 다. 몇몇 일부 오류의 사범자가 있다해도, 취조 중 고문이 있었다 해도 그 당시에 빨갱이가 없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지금도 통진당에 있고, 대학 운동권에 있고, 민통당에도 그런 류의 정치인이 존재하지 않는가 우리 솔직해 지자
하기 첫번째 글은 좌파정부에서 정리된 사항을 포탈회사가 정리한 것이고 두번째 글은 실제 자기자신이 인혁당 소속이었고 안기부수사결과가 맞다고 증언한 내용의 지식사이트 내용이다.
우선 중요한 것은 좌파정부10년간 시국사범들이 사면되었고(이석기가 대표적) 노무현정부하에서 김현희 KAL테러범 가짜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멤버들이 좌파사고적 위인들이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면 빨갱이가 넘쳐날 때이다. 왜냐하면, 70년대초반에 남북 경제 지표가 역전되어 한국이 가까스로 앞서기 시작했고 남북이 같은 독재통치였지만 남한 지성인 중 못난일부는 북한이 독립적인 국가라고 착각하고(중공/소련의 위성국가임을 망각) 남한을 미제국주의 식민주의라 착각하는 상황이었음
안병직 서울대 교수안병직 교수는 2011년 5월 26일에 출간한 책 《보수가 이끌다-한국 민주주의 기원과 미래》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안 교수는 1964년 8월 수사기관이 발표한 1차 인민혁명당 사건을 4·19 이후 최초의 좌익운동으로 평가했다. 안 교수는 1962년 대학원에 진학해 빨치산 출신의 인혁당 가담자인 박현채를 만나 교육을 받았다.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의 저술을 탐독했고 한용운과 신채호의 사상에 따라 결국은 민족주의를 중심축으로 하는 사회주의자가 됐다. 인혁당의 조직 목적은 당시 활발하게 전개되던 학생운동을 지도하는 것이었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그는 평가했다. 당시 학생운동은 서울대 문리대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는데, 인혁당이 박범진 전 의원 등을 중심으로 이들 운동단체에 하부조직을 심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지난해 박 전 의원이 인혁당의 실재에 대해 증언한 것을 상기시키며 인혁당은 남한에서 자발적으로 생긴 공산혁명을 위한 조직이었다고 증언했다. 박범진 전직 국회의원 박범진 전직 국회의원은 조선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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