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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민의 시사탱크 - 장성민의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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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 "폭풍전야를 방불케 하는 정치권 공방과 北-中 충돌 6대 사건 전격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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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4 관*자 조회수 238

저우언라이 이래 중국 최고의 외교관으로 꼽힌 전 지첸 전중국외교부장의 외교 비망록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서울에 첫 발을 내 딛게 된 것은 91년 11월로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일명 APEC의 제3차 장관급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중국과 한국 간에는 어떤 정부 간 교류도 없었습니다. 하물며 한국 전쟁 기간의 격렬했던 대치는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전 지첸 당시 중국외교부장은 APEC 대표단을 태운 중국전세기가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땐 아직 양국관계가 없었고 항공편은 더더욱 없었기 때문에 중국 전세기는 한국에 머물지 않고 곧바로 베이징으로 돌아갔으며 회의가 끝난 뒤 다시 서울에 와 귀국하는 중국 대표단을 태우고 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중수교관계가 확정되었을 때는 자신이 장쩌민 총서기의 구도 메시지를 갖고 김일성주석에게 한중수교관계에 대한 중국정부의 입장을 직접 전달했으며 당시 자신은 김 주석에게 선물로 “옥으로 만든 아홉 마리 용이 구슬을 희롱하는 모습을 새긴 조각품”을 전달했다고 했습니다. 아마 김일성 주석이 역대 중국 대표단과 회견한 것 중 가장 짧은 회견으로 기억된다고 했으며, 회견 뒤에 관례처럼 따르던 초대 연회도 없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올해가 한중수교21주년, 한국전쟁 63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어제의 적은 새로운 친구로 변해가고 있고, 한중간의 비행기 편수는 일평균 200편 이상일 정도로 늘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어느 때보다 긴밀해지고 있는 반면, 북중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북중관계가 언제까지 이렇게 가게 될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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