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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러시아 항모 도입과 해체과정의 전말과 北 내부 동향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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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5 관*자 조회수 265
중국의 모택동은 1950년 10월 25일 왜 한국전 참전을 결정했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전쟁을 결심했던 것일까요? 가장 일차적으로는 북한 정권의 붕괴를 방지하고 그것이 곧 중국의 안정을 도모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핵심적 전략지역이 본토 베이징이라면, 그 주변지역인 동북3성 지역을 우선 방위해야하고, 이 동북3성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그 주변인 북한을 지켜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김일성 정권의 유지가 중국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곧 순망치한의 북중관계인 것입니다. 중국은 대륙본토를 치아로 생각했고, 북한을 곧 그 치아를 덮고있는 보호막, 울타리로 생각한 것입니다. 1950년 5월 모택동이 김일성의 남침 전쟁구상에 동의하면서 지지의사를 밝힌 것도 순망치한의 북중관계 때문입니다. 중국은 미군의 참전이 한반도 통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중국 대륙 본토로 진출해 들어올 것으로 걱정했던 것입니다. 중국이 이런 걱정을 갖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6.25 발발직후 미7함대를 대만지역으로 급파시킨 미국의 행동이었습니다. 모택동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군의 단독 북진은 수용하겠지만, 미군의 38도선 월경북진은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1951년 10월 23일 중국 제3차 인민정치협상회의 개막사에서 미국이 대만을 점령하고 중국 동북 국경지역까지 쳐들어왔기 때문에. 중국은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기치를 내걸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자신의 저서인 <디플로머시>에서 모택동으로서는 만약 북한에서 미국을 저지하지 못하면, 중국영토내에서 미국과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을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북한을 관리하여 통일한국을 이루는데 있어서, 미중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중심변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시대적 상황과 주변정세는 조금 달라졌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초강대국들의 사활적 국가이익이 걸린 핵심지역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곧 통일한국을 통한 대한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통일한국을 꿈꾼다면, 지금 우리가 숨쉬고 있는 이 시대의 한반도는 미중시대의 한반도라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미중시대의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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