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도발에 맹공 퍼부은 박정인 장군 해임사건"
북한의 지뢰 공격 소식을 듣고 북이 우리 국민의 생명을 가지고 논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에서도 죽여보고, 땅에서도 죽여보고, 어뢰도 쏴보고, 대포도 쏴보고, 지뢰도 터뜨려보고…. 다음엔 또 무슨 새로운 아이디어로 우리 국민을 살상할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이 지경이 된 것은 기본적으로 북이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포'는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인데 우리는 그 수단을 잃어버렸다. 그 시초는 우리 정부가 1973년 박정인(朴定仁·87) 백골사단장(육군 3사단장)을 해임·예편시킨 것이라고 본다. 박 사단장 회고록에 따르면 3사단은 그해 3월 7일 비무장지대 내 표지판 보수 작업을 실시했다. 매년 봄·가을에 정기적으로 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작업을 마치고 귀대하는 우리 장병을 향해 북이 기습 사격을 가해 왔다. 대위 1명과 하사 1명이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박 사단장은 마이크로 북측에 사격 중지를 요구했다. "차후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인민군 측에 있다"고 몇 차례 경고했다. 북이 경고를 무시하자 박 사단장은 관측기를 상공에 띄운 다음 북측 GP(초소)에 포 사격을 개시했다(박 사단장은 연대장 시절 군사분계선 남쪽을 제 집처럼 넘나드는 북한군을 향해 일제사격을 퍼부어 5명을 쓰러뜨린 다음 붙잡아 온 사람이다. 그 중 둘은 죽었다). 포탄이 북 GP를 그대로 강타했다. 이어 북한군 보병들 배치 지역에도 포탄을 쏟아부었다. 부상 장병을 구출하기 위해 연막탄도 발사했다. 이 연막탄으로 일대에 불이 붙자 지뢰들이 연이어 폭발했다. 북한군이 달아나는 것이 목격됐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박 사단장은 그날 밤 사단 내 모든 트럭에 라이트를 켜라고 명령했다. 그 상태로 한꺼번에 DMZ 남방한계선까지 돌진케 했고 일부 차량은 군사분계선까지 밀고 갔다. 나중에 박 사단장은 "김일성에게 겁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 북에서 난리가 나고 김일성은 전군에 비상동원령을 내렸다. 김일성은 분명 떨었을 것이다.
1972년 이후 남북협상을 진행 중이던 정부는 한 달도 되지 않은 1973년 4월 3일 박 사단장을 해임했다. 군복까지 벗겼다. 미군의 요구도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북은 도발하면 훈장을 주고, 우리는 반격하면 벌을 준다"고 했는데 바로 그런 경우였다. 박 사단장은 회고글에서 "나는 나의 판단과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북한 공산당들은 약한 자에게는 강하지만 강한 자에게는 더없이 약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포격을 퍼붓는 동안 그들은 단 한 발의 포도 우리 쪽에 발사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 군인의 무모함이 나라를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다. 군인에게 용맹이 덕목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용맹하지 못하면 절대 군인일 수 없다. 민간 정부의 통제를 받되 군은 용맹해야만 적에게 공포를 줄 수 있다. 온화한 신사가 집에 호랑이를 키우는 것이 정부와 군의 관계다. 박 사단장 해임·예편은 우리 군인들에게서 그와 같은 용맹을 빼앗아가 버렸다. '용맹하면 군복을 벗어야 한다'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군인들 머릿속에 들어박혔다.
월남(越南)한 청년들이 주축이 된 연대 하나가 "백골이 돼서도 통일을 이루겠다"고 맹세한 데서 백골사단의 이름이 유래했다. 그 사단의 진정한 부대장은 박정인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백골사단에 취임한 날 '전 장병 철모 착용'을 명령 1호로 하달했다. 연이은 2호 명령은 '총기 거치대 자물쇠 제거와 실탄 장전'이었다. "백골!" 경례 구호도 부활시켰다. 끔찍해서 안전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고 없앤 구호였다. 총검술 훈련도 남쪽 방향이 아닌 북쪽으로 하게 했다. 심지어 야외 화장실조차 북쪽으로 방향을 틀게 했다. 박 사단장은 '모든 일을 전투 기준으로' '죽어서 백골이 돼도 조국과 민족의 수호신이 되겠다'는 백골용사 선서문을 만들어 복창케 했다. 사단장에서 해임됐을 때 이임사는 "북진통일을 완수하지 못해 유감이다"는 것이었다.
육사 출신인 박 사단장은 아들도 육사에 보냈다. 그 아들이 첫 방학 때 찾아오자 "내가 북진하다 전사하면 네가 백두산으로 진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손자가 태어나자 할아버지에게 "백골!" 구호로 경례하게 했다. 그 손자가 또 육사에 들어갔다.
이런 무장(武將)은 진급이 뒤처지다 결국 별 한 개를 달고 물러나야 했고, 전투가 아닌 사고 방지와 진급이 목적인 군인들은 출세해 온 것이 지금 우리 군의 실정이다. 북·중·일 누가 두려워하겠나. 장비가 낡고 연료도 없는 북은 전면전은 불가능하다. 핵은 쓸 수 없는 무기다. 결국 천안함 폭침이나 지뢰 도발처럼 등 뒤에서 찌르는 짓밖에 할 수 없다.
그런 세력일수록 '공포'가 특효약이다. 그런데 우리는 얌전한 신사가 집에 호랑이가 아니라 고양이를 키우는 꼴이다. 과거 남북회담 때 북측 사람들은 박 사단장의 근황을 궁금해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를 두려워하고 의식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군인이 몇이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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