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위해 용감하게 싸운 해도의 구국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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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5 윤*현 조회수 344 |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나?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나?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인 자유. 민주. 시장. 복지. 공존이라는 인류보편적 가치다!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는 세습독재 종노릇하는 종북민주주의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적을 이롭게 하고 대한민국에 대적하는 정치인들과 언론인들과 종교인들과 교육자들이 득실거린다면 형법93조에 의거,단호히 사형에 처해야 한다 그것은 영혼을 팔아 버린 좀비들의 나라가 되도록 방치하지 않고, 천국 대한민국을 수호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보도자료]제66주기 완도 약산전몰경찰관 위령제 전남 장흥경찰서는 지난 9일 전남 완도군 약산면 약산 경찰충혼탑에서 '제66주기 완도 약산 전몰경찰관 위령제'를 거행했다고 11일 밝혔다. 약산전몰경찰관 위령제 [전남지방경찰청 제공=연합뉴스] 위령제에는 박경민 전남지방경찰청장과 김성 장흥군수 등이 참석해 전몰경찰관을 추모하고 유가족과 참전동지회원들을 위로했다. 박경민 청장은 추도사에서 "선배들의 헌신적 사명감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거룩한 희생정신을 계승해 전남 치안을 더욱 안정되게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1950년 9월 14일 6·25 한국전쟁 당시 장흥경찰서 부대 70여명과 지역방위군 30여명은 완도 약산도에서 해안 방어 임무 수행 중 야음을 이용해 장용리 해상을 통해 대규모 선단으로 침공해 온 적군 대대 병력과 격전을 벌였다.이 과정에서 경찰관 26명과 지역방위군 3명이 전사했다.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61년 9월 약산중학교 운동장에 충혼탑을 세웠으며, 완도군민 성금과 군비로 기금을 조성해 1986년 11월 장용리에 충혼탑을 다시 건립했다. 매년 9월 14일을 전후해 장흥경찰서와 약산 참전동지회의 주관으로 약산 경찰충혼탑에서 위령제를 거행하고 있다.[끝] 약산면 장용리 경찰충혼탑에서 제61주기 완도약산 전몰경찰관 위령제가 거행됐다.2011년 09월 19일
위치 : 완도군 약산면 장용리 910-1
한국전쟁 시 완도는 경찰대가 공산폭도들에 맞서 싸운 경찰의 최대 격전지의 하나로 꼽힌다. 이때 순직한 경찰관 및 방어군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완도경찰서는 충혼탑 건립사업을 전개하였다. 전남일보 완도지국과 약산면 면민의 성금을 모아 1961년 9월 약산중학교 정문 옆에 첫 충혼탑을 건립했다가 1986년 10월 완도군비를 지원받아 현 위치로 이전 재건립하게 된 것이다. 장흥경찰서부대 70여명과 지역방위군 30여명 등 100여명이 완도 약산도에서 해안방어임무 수행중 1950. 9. 14 약산면 장용리 앞 해상으로 야음을 이용 대규모 선단으로 침공해 온 적 대대병력과 격전끝에 적 15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으나 경찰관 26명과 지역방위군 3명이 전사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1961. 9. 17 약산중학교 운동장에 협소하게 충혼탑을 건립하였으나 면모가 부실하여 1986. 11. 23 완도 군민의 성금과 군비로 기금을 조성하여 당시 격전지였던 약산면 장용리에 충혼탑을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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