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가 진행하는고품격 시사 토크쇼 시즌 2
정치권의 정쟁 정략에서 벗어나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정책을 분석하는
살아있는 정치 비평 프로그램을 지향한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언더우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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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1 윤*현 조회수 181 |
국적과 인종을 떠나 널리 인류를 이롭게 하는 사람들이
바로 한민족의 가치인 이화세계를 실천하는 홍익인간들이다
‘119년 한국사랑’ 美선교사 언더우드家기독교 집안인 김일성이도 하나님 신앙으로세습독재를 포기하고,북한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로바꾸었다면 지금과 같은 폭정과 배고픔의 땅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아름다운 자연을 본다면 조물주를 인지해야 기본 상식이거늘 신을부정하는 인간들의 말로는 우상화와 신격화를 통한 폭정과 탐욕이니모든게 헛되고 헛되어 모래성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가와 한국의 인연은 1885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영국 런던의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언더우드 1세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주에서 살다 그 해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광혜원(廣惠院)에서 물리와 화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그는 연희전문학교와 새문안교회를 설립하고 기독청년회(YMCA)를 조직했다. 그 후 2세 원한경(元漢慶) 박사와 3세 원일한(元一漢) 박사, 4세 원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언더우드가는 연희전문학교 교장직과 연세대 재단이사 등을 맡으며 한국 사학의 발전을 주도했다.
이들은 또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 가문으로 한국의 교회, 시민운동뿐 아니라 한미관계 발전에도 두드러진 공적을 남겼다.
이들의 한국 사랑은 유별났다. 언더우드 1세는 일제강점기에 “한국 민족이 일본에 주권을 침탈당할 만한 나라는 도저히 아니라는 생각이다”며 “문화를 보존하고 나면 언젠간 독립국가로 바로 설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가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에는 곳곳에서 ‘한국의 어둠, 속박, 우울로부터 한국의 빛, 꿈, 소망을 이루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기도가 들어있다. 그의 한국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백두산 천지의 깊이를 잰 것도 이들 1세와 2세 부자로 알려져 있으며 작고한 1세부터 3세까지 모두 ‘마음의 고향’인 한국에 묻혔다. 2세부터 4세까지 태어난 곳도 한국이다.
타계한 원일한 전 이사는 “내 몸속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말로 애틋한 한국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4세대에 걸친 일가의 부인 중 한국인은 없지만 이미 정신적으로 한국인이 됐다는 의미다.
서정민(徐正敏) 연세대 신학과 교수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한국을 사랑하고 이해한 서양인 가문”이라며 “섭섭하긴 하지만 이들이 떠나는 것도 엄연한 역사의 수레바퀴가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연세대는 2001년 ‘언더우드 기념사업회’를 조직하는 등 설립자 가문에 대한 기념사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지난해 말 언더우드 2세가 1920년대부터 살던 옛 집을 다듬어 ‘언더우드가 기념관’으로 개관했으며, 원 전 이사 사택의 수천 점에 이르는 자료 등을 정리해 전시할 계획이다. 또 2001년 ‘언더우드 선교상’을 제정해 3회까지 수상자를 배출했다.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040510/8060054/1#csidxe61611f925baebb988bd4f186253b16
거기서 우리 이제 영원히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우리가 지금껏 살 수 있는건
호흡과 일용한 양식을 주신
신의 은혜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정치와 권력을 통해서
탐욕적이고 교만한 인간의 속성을
본다.신같은 사람들이 이제 정치를
하고 국가운영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 시대를 해처럼 생각과 마음이 맑고
밝고 환한 신인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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