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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

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가 진행하는고품격 시사 토크쇼 시즌 2
정치권의 정쟁 정략에서 벗어나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정책을 분석하는
살아있는 정치 비평 프로그램을 지향한다.






전원책의 이것이정치다 - 시청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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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 팩트(고고학)-고대 동아시아 지배한 한국회복이 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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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8 윤*현 조회수 155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12개의 연방국가들을 거느린 환인씨의 환국을 계승했던 배달국의 18대 거불단 환웅천왕의 천황자였던 단군왕검 천왕이 배달국 말기의 분열시기에 만주와 한반도의 황인종 중심의 5색 9환족을 통합하여 세운 단군한국의 직할 영토는 한반도(마한/1대 웅백다 단군)와 만주(진한/1대 단군왕검 천왕이 직접 통치)를 중심으로 요서지역(번한/1대 치두남 단군-치우천왕의 후손)이였으며, 이 단군3한국의 통치기록은 [환단고기]에 마.번한세기로 따로 정리해 두고 있다.

 

따라서 [환단고기]기록만 고고학적으로 잘 입증해 내면 단군한국(조선)사는 사실대로 기술되는 것이다.


 

 



강단ㅇ식민사관을 극복한 윤내현 교수는 먼저 이 ‘고조선’ 명칭에 대한 바른 인식이 중요함을 언급한다. 강단사학계에서 인식하는 고조선이란,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을 한데 뭉친 것으로 위만조선이 단군조선을 계승한 걸로 말한다.

그러나 실은 『삼국유사』에 「고조선조」와 「위만조선조」가 별도 항목으로 기록된 걸로 보아 두 왕조는 건국자의 민족성격, 혈통이 전혀 다른 왕조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먼저 ‘고조선’ 명칭에 대해 *‘기자국과 위만정권’이 포함되지 않은, “단군조선만이 고조선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연구해야, 고대사 연구체계가 바르게 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이하 고조선은 단군조선만을 말하는 것임).
 
강단사학계(또한 국사교과서)가 말하는 고조선 영역이란, ‘한반도 북부(대동강 이북)~만주 일부’이다. 이것은 기존 사학계가 고조선 중심지를 대동강 유역(평양일대)으로 본 친일사학자 이병도1)의 견해를 통설로 했기 때문이다.
 
이 학설에서는 연나라 사람 위만이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의 정권을 빼앗아 위만왕조를 세우고 위만왕조가 멸망한 후, 그 지역에 한사군이 들어 섰다는 것이다. 그 지역은 위만조선의 도읍지인 평양(대동강유역) 부근이므로 고조선 영역은 ‘한반도 북부~만주 일부’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저자 윤내현은 이런 과정에서 기존 사학계가 고대사 체계에 큰 오류를 발생시켰다고 말한다.

또한 이런 잘못으로 인해 한민족은 초기 역사부터 중국의 식민지배를 받은 미개한 민족으로 전락하고, 고대사는 결국 중국역사에 병합되어 사라진 역사가 되어버림으로써 국민들에게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여러 문헌에 의거하여, 당시 기준 왕이 통치한 기자국은 서쪽 변방에 있던 단군조선의 거수국(=제후국)이었으며, 위만정권은 한나라(서한) 외신(外臣)으로 기자국을 멸망시켜 단군조선과 대립관계에 있었고, 한사군은 한나라 영토에 편입된 행정구역 이었을 뿐 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후한서』『제왕운기』등의 중국과 우리 문헌들에 나타난 ‘고조선 기록’을 비교 종합해 보면, 기자국과 위만조선의 흥망, 한사군의 설치 등은 중국과의 경계인 고조선의 서부변경 지대에서 일어난 사건일 뿐이다.

본래의 고조선(단군조선)은 한사군 설치(위만정권 멸망 BCE 108년경) 이후에도 만주지역에 그대로 존속하고 있었다. 위만이라는 고작 한나라의 일개 장수 하나가 거대한 영토와 군사력을 보유한 단군한국을 무너 뜨리고 단군천왕이 되었다는 주장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코메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 때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문하시중인 이암 등이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사를 기록한 고서들을 모아서 편찬한 <단군세기> 등을 일제시대에 계연수가 한 권의 책으로 모은 『환단고기』에 의하면,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은 만주와 한반도에 걸친 전 영토를 마한, 진한, 번한의 3한으로 나누어 통치를 했으며, 이 때의 삼한을 북삼한이라 하는데 위만이 준왕을 몰아 내고 세운 위만정권은 요서지역을 중심으로 중국 동해안 지역에 해당한 번한이다.

단군나라의 국호는 한국(1대 단군왕검 천왕)=> 조선(22대 색불루 단군천왕)=>대부여(43대 구물 단군천왕)으로 변경된다. 그리고 47대 고열가 단군천왕이 천왕권을 포기하고 옛 아사달로 떠난 이후 길림지역에서 세운 해모수의 부여는 단군나라의 국호를 그대로 계승한 국호이다. 그리고 고조선이 붕괴되고 요서지역의 기자조선이 망하면서 조선유민들이 한반도 한강 이남으로 대거 이주하여 단군3한국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서남부지역의 마한을 중심으로 남삼한을 이루었다.

 


고조선 영역과 더불어 윤내현 교수는 ‘요동’ 지역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고대문헌에 나타난 중국과 고조선의 경계지역인 요동은 요하의 동쪽이라는 기존의 역사체계는 잘못되었다고 한다. 실제 고대 문헌 속의 요동은 ‘중국의 먼 동쪽 국경’을 말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고조선 말기 이후 중국국경이 확장될수록 고대 문헌상의 요동의 경계는 달라졌고, 이로 인해 요동지역의 설정에 있어서 사학계의 혼동이 생겼다고 말한다.

즉, 국경근처인 요동지역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던 사실을 염두에 두고 문헌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저자 윤내현은 본인이 1980년대에 하버드대 옌칭 도서관에서 발견한 증선지의 <십구사략통고>지도를 토대로 한 지리학적 비교연구와 『사기』, 『후한서』, 『회남자』 등 많은 중국 문헌과 『삼국사기』등 우리측 사서들의 문헌 비교연구를 통해 고조선의 영역에 대해 7가지의 결론에 도달했다.
 
 1. <십구사략통고>의 지도에는 고조선의 위치가 만주로 표시되어 있다.
 2. 고조선과 진나라 국경은 갈석산 지역이었다.
 3. 고대 요동은 지금의 난하 유역(난하 동쪽 경계)이었다.
 4. 만리장성은 갈석산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5.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은 난하 서쪽에 있기도 했다.
 6. 고조선의 북쪽 국경은 얼구나하와 흑룡강이었다.
 7. 고조선의 국경은 한반도 남부 해안선(한반도 전역)이었다.
 
위 결론을 종합하여 필자 윤내현은 ‘고조선 영토는 한반도 전역과 지금 난하의 동쪽인 만주 전지역이었다’라고 확정짓고 있다.

"그 동안 식민사학이 지배하고 있던 강단사학에서 왕따와 음해를 당하면서 오로지 단군조선사 연구에 몰두했던 윤내현 교수가 이루어낸 연구성과는 [환단고기]가 기록하고 있는 고조선의 영역과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윤복현)


복식으로 본 고조선의 영역 - 박선희 교수

한편 윤내현 교수의 제자로서 한국 고대 복식을 연구해 온 박선희 교수는 신석기 시대로부터 고조선 붕괴시기인 BCE(서기전) 1세기 초까지의 복식자료를 바탕으로 고조선의 영역을 조사했다.
 
저자는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출토된 복식자료 중 가락 바퀴(가는 베실을 뽑는 기구), 원형과 나뭇잎 모양장식, 긴고리 모양 장식, 갑옷조각 등에 나타난 무늬나 양식은 공통성을 지니고 있는 반면, 중국과 북방 시베리아 지역의 복식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복식문화의 공통성은 동일한 정치체제를 갖는 문화공동체를 형성한 것을 말하므로, 복식문화가 동일한 지역을 동일한 고조선 문화권(영역)으로 확정지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주목할 만한 점은 현재까지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출토된 ‘청동장식 옷단추’ 중에 가장 앞선 것은 BCE(서기전) 25세기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평양부근 강동군 용곡리 4호 고인돌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이는 중국의 상나라 후기(BCE 11C)의 청동단추와 비교하여 적어도 14세기 정도 앞선다고 한다. 또한 시베리아 청동문화의 시작도 BCE 18세기 무렵이므로, 결국 동아시아에서 고조선이 최초로 청동단추로 장식한 갑옷을 생산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더불어 저자는 중국의 청동단추 생산은 그보다 앞선 고조선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짓고 있다.

"이러한 고고학적 사실만 보아도 중국 문헌인 <후한서/동이열전>의 기록대로 "만물의 뿌리가 동방"이라고 명확히 기록하고 있듯이 문명의 빛은 동방 한국임을 명확히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청동기.유리기술의 경우에도 만주보다 한반도 지역이 훨씬 앞선다. 이는 인류문명의 시원지역으로써 우리 한민족사의 시왕모가 되는 마고문화(모계문화)인 남방식 고인돌이 호남을 중심으로 남한에 집중 분포된 것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참고로 마문명지역인 서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반도 남한지역은 고고학적으로 세계 최초 최고의 유물 유적들이 출토된 지역이다. 볍씨만 하더라도 마문명지역인 서해 충북 청원군의 경우 10만년에 가까운 볍씨로 인류의 농경문화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고, 역시 마문명지역인 남해 제주도에서 출토된 옥 유물은 중국이 자기들 문명으로 날조하고 있는 요서지역의 홍산 옥유물보다 수천년이 앞서는 유물로 소위, 홍산문화의 뿌리가 마문명지역인 서남해 지역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러한 마문명 사람들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북-서진하면서 만주와 중국, 그리고 유라시아와 아메리카에 한국문명이 건설되었다고 규정할 수 있다."(윤복현)


고인돌을 통해 본 고조선 - 하문식 교수

세 번째는 마고문화의 유적인 고인돌 유적을 통한 고조선의 영역 조사다.

"마고문화인 지석단.지석묘가 고인돌인데, 무덤양식은 쉽게 바뀔 수가 없어 고조선시대까지 한반도토착민들의 무덤이였다고 할 수 있다. 무덤연대로 따지면 1만년에 가까운 무덤이다. 전남 화순의 고인돌의 경우가 8천년전의 무덤으로 세계 최고의 고인돌이기 때문이다.

일부 어떤 정신나간 자들은 고인돌 문화가 영국에서 출발하여 해로를 따라 한반도까지 들어 왔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말도 안 된 서양논리다. 영국이 고인돌의 원조지역이라면 영국지역이 고인돌 최다 분포지역이여야 논리가 해당된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겨우 수십기에 불과하며, 고인돌 양식도 한반도 고인돌 양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세계 최다분포지역인 호남지역의 고인돌의 경우에는 세계 모든 고인돌 양식이 산재되어 있어 고인돌의 원조지역은 한반도에서도 마문명권에 속한 호남지역임을 알 수 있다."(윤복현)

수백 수천명이 동원되어야 만들 수 있는 고인돌은 고대 국가 사회에서 자연숭배(제단기능), 무덤기능, 영생염원, 벽사(?邪), 강력한 지배자의 상징물로서 동일한 문화권을 추정하는 연구방법으로 많이 활용된다.

같은 형태의 고인돌 분포지역은 동일한 하나의 고대 국가를 형성한 지역으로 설정할 수 있다.
 
그림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문식 교수는, 조사 결과 고인돌 유적은 지금의 요동지역에만 있고 요서지역에는 고인돌이 1기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요서지역도 같은 문화의 영역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면 요서지역에는 큰 돌이 거의 없고 황토가 많이 퇴적되었기 때문에 움무덤이나 돌널무덤이 주로 발견되지만 그 곳에서 출토되는 청동유물은 고조선 지배층의 대표유물인 비파형 청동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인돌 연구에 동일형태의 청동검 분포지역 연구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현재의 요서지역 또한 고조선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현재의 요서는 최소한 요하서쪽에서 난하(=만리장성 경계)까지의 영역을 말함)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각기 서로 다른 분야에서 다른 자료를 바탕으로 검토했음에도 ‘고조선 강역’에 대해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니다. 우리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도 뿌리역사는 반드시 제대로 밝혀야 할 것이다.

I love Korea(고구려)

나의 코리아

마음 속 코리아

잊을 수 없는 영원한 내고향

사랑과 평화 눈물어린 만남

마음이 정으로 바뀌는 순간

통일된 자유의 코리아

저 우주의 별 하나 되듯이

서로 손에 손을 맞잡고

이제부터 시작이야

지금 우리 모두 다

한겨레 아름다운 강산

한겨레 한민족

끊어진 다리 다시 이읏고

달리는 기차는 동방의 밝은 빛

오 나의 미래 대한민국

I love Korea !

I lov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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