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천애인=한민족 정신
통일 한민족 태극기=3신1체 하나님 상징하는 한민족 원형정신
무궁화로 상징화되는 오직 양심 하나님만이 우리의 반석과 승리자
탐욕의 노예된 자들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니 헛되고 헛되도다!
고구려 국조-봉황-대한민국 권력 상징
봉황은 예시된 동방의인을 상징한다
[우리는 위대한 한민족이다]단군한국의 강역
단군한국의 영토는 치대 캄차카반도, 연해주를 비롯한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와 제주도, 일본, 몽골, 티베트와 중국의 중동부(하북성, 하남성, 산동성, 안휘성, 강소성, 절강성, 산서성, 섬서성, 감숙성, 호북성, 호남성 등)까지, 그리고 최소 만주대륙 전체와 한반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북아시아 대륙을 대통일한 민족국가였던 것이다.
단군왕검은 천하의 땅을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렸으며, 삼한은 5가(加) 64족(族)으로 이루어졌다. 삼한은 진한, 마한, 변한을 말하며, 진한은 단군왕검께서 직접 다스리셨고, 마한은 고시씨의 후손인 웅백다를, 번한은 치우천황의 후손인 치두남을 봉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단군한국의 대외관계
① 중국과의 관계
단군한국 시대에 요.순 나라를 비롯한 역대 지나왕조는 모두 단군한국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했고 당연히 친선관계에 있었다. 단군한국은 자비와 의로움(仁義)로써 주변국들을 대했으며, 항상 아낌없이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현재는 배은망덕하게도 동북공정으로 한민족의 고대사를 현재 자신의 영토에 속한다하여 왜곡 날조하여 한반도를 점유하려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천벌을 받을 일인 것이다. 한민족 고대사 인식이 부재한 대한민국 정치권부터 정신을 차려야 하는 이유다. 지나국이 경제지원을 받으며 지나국의 군사방패막이노릇을 하는 북괴와 북괴에 협력하는 종북숙주세력이 결과적으로 지나국의 견 집단에 불과하다고 규정하는 이유다.
시대적으로 요-순-하-은-주나라로 왕조가 바뀌어 갔으나 이 국가들이 모두 중국의 한족(지나족, 서토족, 하족)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며, 대부분 동이족의 국가가 많았으므로 현재 중국 한족의 시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나라들은 지도층에 불의한 일이 있어 민심을 얻지 못하고, 살기가 어렵게 되면 멸망의 길은 걸으며, 여러 왕조가 바뀌어갔다. 중국 역사상 3백년 이상 지속된 나라가 없었다.
최초의 봉건국가로 알려져 있는 주나라는 단군조선의 체제를 모방해 여러 봉토를 왕실의 친척에게 나누어주고, 공·백 등의 작위를 주어 제후로 다스렸다. 그러나 단군조선의 경우 단제께서 성인(聖人)이었으며, 동시에 제후들과 신하들의 스승이기도 하여 군신간에 절대적인 믿음으로 연결된 관계였었기에 한 나라가 2천년이 넘게 유지될 수 있었다. 이와 달리 주나라의 제후들은 그러한 신뢰들이 없었으므로 세월이 흐르면서 왕실을 무시하고 다른 욕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주나라는 270여년 만에 멸망하고 수많은 나라들로 분열, 마침내 춘추전국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그들은 서로 전쟁을 벌이면서 이합집산을 계속하다가 뿌리 국가인 단군조선을 침범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전국시대의 7개 국가중 가장 동쪽에 위치했던 연나라와 제나라가 주로 조선에 도발을 하였다. 그러나 한번 조선을 침략하면 그들 국가의 수도까지 함락당하는 등 철저하게 응징당하는 것이 통례였다.
그런데 단군조선이 멸망하고 조선이 열국으로 분열하여 힘이 급속도로 약화되어 갈 때, 반면 중국은 주로 200년 주기의 왕조의 변화 속에서 팽창을 계속하게 되었다. 이 왕조들도 한족(漢族) 만의 역사가 아니라, 동이계열이나 거기서 갈라져 나간 유목민족의 왕조가 많았다. 중국역사는 한족에 의한 왕조와 동이족 출신 유목민족에 의한 왕조<연(燕), 수(隨), 위(魏), 원(元), 금(金), 청(淸) 등> 간의 투쟁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② 주변국과의 관계
캄차카반도, 연해주를 비롯한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와 제주도, 일본, 몽골, 티베트와 중국의 중동부에 이르는 동북아시아 대륙 전체를 장악하고 있던 단군조선은 그 영토의 크기만큼 주변국과의 크고 작은 관계도 활발하였다.
몽골, 말갈, 흉노, 선비, 돌궐(투르크)등 모두 동이의 혈통에서 갈라져 나갔으며 각 지역의 토착종족들과 문화와 혈통이 섞이면서 근본을 잃어버리고 야만화되었다. 그러나 단군조선은 넘볼 수 없는 뿌리의 나라요, 스승의 나라였다.
기준으로 지구촌 곳곳에 정신문명을 전파하여 스승의 역할을 해왔고, 그렇게 면면히 이어진 전통이 찬란하게 꽃피운 나라가 단군조선이었다. 이렇듯 모든 것이 천도(天道)에 기준을 두고 행해졌던 아주 특별했던 나라였으며, 그것이 바로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강대국의 모범이었다.
▶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의 기원
전체적으로 볼 때 단군조선 2천년의 역사 가운데 24회의 대소전란과 군대파견이 있었다. 그중 외국과의 싸움이 14회가 있었는데, 그것도 대부분 무도한 나라에 대한 징벌이요, 침략에 대한 응징이었다. 그러나 백년에 한번 꼴로 전란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며, 단군조선의 폐관이래 지금까지 2천년간 1000여회의 외침과 전란이 있었다니, 단군조선 시대가 얼마나 태평성대였는지 알 수 있다.
(8) 여러 민족과 각국의 기원
▶ 티벳
배달국 15대 치액특천왕은 티베트 즉 치액특에 신선도를 전해주었으며, 티벳의 신선도가 인도로 전해지고 힌두교의 사상이 합쳐져 불교가 탄생하게 된다. 티벳(西藏)의 수도는 장당경으로, 치우천황 때부터 8백년간 티벳을 직접 통치하였다고 한다. (일붕 서경보 박사의 증언)
단군조선때에는 3대 갸륵단군 이래, 5대 구을단군, 22대 색불루단제, 43대 물리단군, 44대 구물단군(B.C. 425)까지 장당경으로 수도를 이전하는 등 긴밀한 관련이 있었다.
삼국유사에도 기원전 425년(44대 구물단제 무렵) 나라이름을 대부여라 바꾸고 수도를 장당경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티벳의 신선도가 인도로 전해진 후 인도의 불교가 거꾸로 티벳에 전해져 티벳불교(라마교)가 되었으며, 그 라마교가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의 국교가 되어 다시 우리나라의 고려조에 들어왔다. 결국 근원을 따져보면 모두가 동족간의 교류였다.
▶ 몽골족
<한단고기>에서는 "4대 오사구단제 원년(B.C. 2137년), 큰아들 구을(丘乙)을 태자로 삼고, 아우 오사달(烏斯達)을 몽고지역의 왕으로 삼으니, 오사달은 몽고인의 조상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훗날 몽고의 부족장들이 테무진을 징기스칸으로 추대한 것은 1206년이며, 원나라는 한족의 송나라를 멸망시킨 후 1279년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세계최대의 제국을 이루었다.
※ 기타 : 말갈족(숙신, 읍루, 물길, 동예, 맥), 흉노족(연나라를 세움), 선비족(돌궐, 터키의 뿌리, 선비족의 후예가 수나라를 세움)
(9) 단군조선의 멸망
그런데 후단군시대에 접어들면서 세력이 커지게 된 장수들이 차츰 말을 잘 안듣게 되었고, 개인적인 욕망에 따라 이합집산하게 되었다. 고열가 단제때에 이르러서는 그 법통으로 연결된 끈이 없어져 버렸으며, 종래에는 멸망에 이르게 된다.
단군조선의 마지막 단군인 고열가 단제는 어질고 순하기만 하셨다고 기록은 말한다. 고열가 단제께서는 천시를 보신 후 때가 지났음을 알고, 영적인 눈으로 새로운 천시가 이천년후에나 이 민족에게 다시 돌아올 것을 보셨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시고는 "너무나 타락해서 고귀한 법을 전수해 줄 수 없다."고 하신 후 고열가 단제께서는 절망으로 통한의 가슴을 안은 채, 2천년 신선의 역사를 폐관하시고 아사달 산으로 들어가셨다.(B.C. 238년 3월)
본래 단군조선의 방대한 강역은 후기에 들어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의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그중 진조선은 단군의 직할통치 구역이었고, 번조선·막조선은 비왕을 두어 간접통치 했었다. 진조선은 B.C. 238년 47대 고열가 단제의 폐관으로 문을 닫았다. 번조선은 B.C. 194년 동이족의 모습을 한 연나라 사람 위만의 책략에 멸망했다. 마지막 42대 기자인 기준은 배를 타고 한반도로 피신하여 목지국의 금마군으로 가서 마한이란 나라를 세웠다. 제가(諸家)들은 한반도의 월지로 건너가 나라를 세워 익산 마한이 되었다.
막조선은 B.C. 238년 35대 비왕 맹남을 마지막으로 진조선과 함께 막을 내렸다.
위만조선은 번조선의 마지막 왕 기준의 정권을 찬탈한 위만으로부터 3대 우거까지를 말하며 내부분열 끝에 한나라에 항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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