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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

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가 진행하는고품격 시사 토크쇼 시즌 2
정치권의 정쟁 정략에서 벗어나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정책을 분석하는
살아있는 정치 비평 프로그램을 지향한다.






전원책의 이것이정치다 - 시청소감

전원책의 이것이정치다 - 시청소감
김일성 전생은 가인/박정희 전생은 공민왕/육영수 전생은 노국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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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4 윤*현 조회수 417



 

태극기 깃발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기독경 예언서[이사야서]"동방의 땅 끝 땅 모퉁이(한반도)에서 의인 한 사람을 불러

 

만국의 통치자들을 회 반죽하듯 다스릴 것이다..태초에도 내가 곧 그니라"

 

한민족 예언서[격암유록]"남쪽바다 섬사람이 참사람(양심인=신인)이다"=해도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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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자료]6·25전쟁으로 제3차 세계대전을  초래한 김일성 주석의  전생은 가인

 

  ● 1948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한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전생(前生)은 인류역사를 출발시킨 첫 조상가정의 장남으로 등장하는 가인으로서 전생(前生)에도 가인(형)이 아벨(어린 동생)을 살해하였듯이,  

 

북한이 6·25전쟁을 일으켜 동족상쟁(同族相爭)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초래하였을 뿐 아니라 장남(長男)은 부모를 대신하는 위치이기도 하기 때문에 북한 동포들에게는 어버이수령으로 군림(君臨)하게 되었던 것이다. 

 

 

  ○  전생(前生)이 첫 조상가정의 장남인 김일성 주석이 해방이후의 성약시대(成約時代)에는 민족적 가인으로 윤회환생 하여 6·25사변을 일으켜 민족적 유혈비극을 초래하게 되었는데 전생로정(前生路程)은 곧 숙명로정(宿命路程)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민족적 숙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1950년부터 1953년까지의 3년에 걸쳐서 한반도에서 치르게 된 남·북한의 전쟁은 동족상쟁(同族相爭)이 아니라 세계가 참전하게 된 제3차 세계대전을 치러 놓고도 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한민족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고찰하여 볼 때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은 동맹국(오스트리아·독일·투르크·불가리아)과 협상국(러시아·프랑스·영국·이탈리아·미국)으로 나뉘어 대 전쟁을 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은 연합국(영국·프랑스·미국·소련·중국)과 동맹국(독일·이탈리아·일본)으로 나뉘어 대 전쟁을 치르게 된 것이다.

 

  제3차 세계대전(1950~1953)은 한반도를 무대로 하여 남한을 지지하는 민주주의 국가들과 북한을 지지하는 공산국가들로 나뉘어 세계에서 28개국이 직접 간접으로 참전하게 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세계적인 대 전쟁이다.

 

  이러한 제3차 세계대전으로 유엔 측은 제1차 세계대전 전비에 해당하는 1,500억 불을 지출하였고 쌍방이 약 150만 명의 사망자와 360만 명의 부상자를 냈을 뿐 아니라 조국강토는 초토화 되었던 세계대전으로서 첫 조상가정의 알파유혈비극을 세계의 오메가유혈비극으로 매듭짓게 되었으니 1950년의 6·25전쟁은 반드시 섭리적 차원에서 재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생자료]박정희 대통령의 전생은 왕건과 결부된 공민왕, 고유사명은 외적 구세주

 

  ●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을 출범시킨 박정희 대통령의 전생(前生)은 왕건로정과 결부된 공민왕으로서,  

 

공민왕도 당시에 원나라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던 사대주의(事大主義)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적으로 단행한 업적이 많았듯이, 성약시대(成約時代)의 대한민국도 강대국(미국·소련)들의 힘을 빌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약소민족이 존재하기 위한 신사대주의(新事大主義)로서 북한은 구 소련의 사상적 속국이 되었고 남한은 미국의 문화적 속국이 되었던 것이다. 

 

 

  ○ 이를 직시한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한민족의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위인·성현들의 추모사업으로서 충무공의 현충사, 최수운 대신사님의 유적, 윤봉길 의사의 충의사, 추사 김정희 서성의 고택, 곽재우 장군의 유적, 전국 사찰, 서원, 향교의 보수 및 복원사업, 밀양 아랑제, 신라고도의 정화사업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민족적 문화성업(文化聖業)을 수행했던 것이다.

 

  또한 정치적인 고유사명(천업)으로서 우리 인간의 외적인 육신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외적 구세주 사명수행으로는 민족적 숙원이었던 가난을 물리친 대통령으로서 1차적인 사명은 완수하였고, 2차적인 외적 구세주 사명은 인류가 땀 흘리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이상세계로서 정신문명발동과 결부되는데,

 

이 문제는 현생(現生)의 부녀지간(父女之間)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계승되었기 때문에 제정일치(祭政一致)에 의한 제7공화국(후천모계시대) 출범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인류가 땀 흘리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이상세계(지상천국)는 창조주(하나님)께서 을미년(乙未年:2015년)에 단행하시게 되는 천지개벽(미완성한 인간 재창조)에 의한 인내천(人乃天)의 시대를 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인데 때가 이르렀기에 神의 섭리를 먼저 깨달은 선지자(先知者)의 이름으로 거듭 천명하게 된 것이다.

 


 

[전생자료]육영수  영부인의 전생(前生)은 노국공주

 

  ● 육영수 영부인의 전생(前生)은 전자(前者)의 노국공주
  ● 차지철 경호실장의 전생은 공민왕 시대의 신돈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전생은 공민왕을 시해한  환관  최만생

  박정희 대통령의 전생(前生)은 왕건로정과 결부된 공민왕으로서 전생(前生)의 인연으로 노국공주(육영수 여사)를 현생(現生)에서 다시 만나 대한민국의 국부(國父)와 국모(國母)로 등단하시게 된 것이다.

 

  ○ 그런데 전생로정(前生路程)은 곧 숙명로정(宿命路程)이기도 하기 때문에 노국공주도 왕비가 된 후 14년 동안 공민왕을 잘 보필하여 도탄에 빠진 고려를 이끌어 낸 왕후로서 덕망이 높았지만 경사스러워야 할 출산이 난산이 되어 피 흘리며 돌아가시게 되었듯이,

 

육영수 영부인께서도 1961년부터 1974년 까지 영부인으로서 14년 동안 박정희 대통령을 잘 보필하여 민족적 숙원이었던 가난을 물리쳤지만 경사스러운 광복절 날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저격사건으로 인하여 유혈이 낭자하신 채로 돌아가시게 된 것이다.

 

  ○ 전생(前生)의 공민왕도 노국공주를 잃게 된 이후 고독한 생활을 하시다가 가장 가까이서 보필하던 환관 최만생이 확인사살까지 하였듯이, 현생(現生)의 박정희 대통령도 권력의 오른팔로 보필하던 중앙정보부장(김재규)이 확인사살까지 하였으니 인생은 연극인 것을 어찌하랴?

 

  ○ 전생(前生)의 공민왕(박정희 대통령)과 노국공주(육영수 영부인)의 비운희생로정은 인류역사를 출발시킨 첫 조상가정에서 부모시대(아담·해와)에서 실수하고 죄 값은 대통을 계승해야할 자녀시대의 아벨이 희생의 제물이 되었던 알파(아벨제물)의 대통계승 탕감복귀로서 인류역사를 출발시킨 한반도에서 한민족이 알게 모르게 지은 죄 값을 아담조상과 해와조상의 육신을 대신한 국부(國父:박 대통령)와 국모(國母:영부인)께서 오메가(부모제물)로 치르고 영원한 후천모계시대(後天母系時代)를 열게 될 현생(現生)의 부녀지간(父女之間)으로 딸(박근혜)에게 외적 구세주의 사명을 계승시키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섭리적 근거로서 지금부터 2000년 전에 하나님의 계시로 명시하여 놓은 신약성서그 날 환란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하니 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는 비유와 상징으로 밝혀놓은 말씀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1979년 10·26사태로 해(日:국부)가, 1974년 8·15광복절에는 달(月:국모)이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되었고, 10·26사태이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하여 별(星:장성)들이 예편하게 되었으니 어찌하랴?

 

 

  ○ 차제에 전생(前生)의 인연으로 현생(現生)에서 다시 만나게 된 공민왕(박정희 대통령)과 노국공주(육영수 영부인)의 시대를 전생과 현생을 결부시켜가면서 다시 한 번 되돌아본다면 공민왕 시대에도 노국공주가 세상을 떠난 직후부터 발탁되었던 신돈이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 6년 동안 국정을 전횡하였을 뿐 아니라 결국은 참형 당했던 것이다.

 

  ○ 마찬가지로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도 육영수 영부인께서 세상을 떠난 직후부터 박종규 경호실장 후임으로 발탁된 차지철이 무조건적인 충성으로 박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6년 동안 권력을 남용하게 된 것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되었을 뿐 아니라 결국은 총탄에 쓰러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974년 8·15광복절에 문세광에 의한 국모(國母)의 비극은 전생(前生)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현생(現生)의 국부(國父)와 관련된 문제로서 1974년 7월 11일에 열린 비상보통군법회의 선고 공판에서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8명의 청춘(서도원·김용원·이수병·우홍선·송상진·여정남·하재완·도예종)들을 북한의 지령을 받는다는 민혁당재건위와 결부시켜 사형선고를 내린 팔청애사(八靑哀史)와 결코 무관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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