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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

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가 진행하는고품격 시사 토크쇼 시즌 2
정치권의 정쟁 정략에서 벗어나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정책을 분석하는
살아있는 정치 비평 프로그램을 지향한다.






전원책의 이것이정치다 - 시청소감

전원책의 이것이정치다 - 시청소감
누명을 쒸워 십자가에 매 단다면 누가 죄인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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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1 윤*현 조회수 229




 

 

 

해(하나님+동방의인) 아래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죄 없는 자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 예수 -


 

저 여인은 그저 간음했다는 음해를 당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녀가 무고함에도 누명을 쒸워 십자가에 매 단다면 십자가에 매 단 자들이 죄인

 


 그가 찔림은 


2003년 3월 5일, 요한 바오로 2세의 지시에 따라 교황청은 《기억과 화해: 교회와 과거의 잘못》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발표해 과거 교회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핑계로 인류에게 저지른 각종 잘못을 최초로 공식 인정했다. 이때 마녀사냥에 대한 잘못도 인정하며 전 세계적으로 가톨릭의 이름으로 사죄했다.

 


마녀사냥에 대해 정치학에서는 전체주의의 산물로 보고 있고, 심리학에서는 집단 히스테리의 산물로 보고 있으며, 사회학에서는 집단이 절대적 신조를 내세워 개인에게 무차별한 탄압을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히틀러 나치의 '우생학', 일본 제국의 '불령선인', 미국의 'KKK'과 '매카시즘', 소련과 아프리카 등에서 벌어진 '인종학살' 등이 근현대에 벌어진 마녀사냥의 대표적인 예다.

 

 

 

 


마녀사냥(魔女 - ,프랑스어: Chasse aux sorcières)은 중세 중기부터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북아메리카, 북아프리카 일대에 행해졌던 마녀나 마법 행위에 대한 추궁과 재판에서부터 형벌에 이르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마녀사냥'을 '마녀재판'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마녀재판의 피해 사례

잔 다르크: 백년 전쟁 때 종교 재판에서 마녀 판결을 받았고 나중에 화형당함. 훗날 명예회복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음.
세일럼 마녀 재판: 미국 뉴잉글랜드 세일럼에서 일어난 청교도들의 마녀사냥.

 

 

 

마녀재판의 실제

 

 

 

마녀재판을 하는 방법

 

네 가지 방법 중 첫 번째로 눈물 시험(Traenenprobe)이 있었다. 마녀망치에서는 ‘마녀들은 사악하기 때문에 눈물이 없다, 그래서 혐의자가 눈물을 흘릴 수 있나 시험해보라’고 나와 있다. 눈물을 흘려서 혐의자가 죄가 없다는 것을 실증해 보여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바늘 시험(Nadelprobe)이다. 바늘시험은 성경 구절의 예언서에서 유래된 것으로, 구원받은 자의 표식으로 이마에 먹이나 도장을 친다는 논리에서 유래됐다. 타락한 악마들은 지울 수 없는 표식을 가지고 있으며, 마녀 또한 마찬가지라는 논리다. 따라서 재판관이 그녀들의 나체를 관찰하고, 또 관찰의 용이성을 위해 몸의 털, 음모, 눈썹을 깎거나 태운다. 관찰에 의해 사마귀, 융기, 부스럼, 기미 ,주근깨 등 마녀의 점이 나오면 형리는 그 자리를 누르거나 바늘로 찔러 감각을 느끼는지, 피가 흐르는지 시험한다. 사바스에서의 난교에 의해 마녀는 피를 다 써버렸기 때문에, 마녀는 피를 흘리지 않는다고 간주되었다.
세 번째는 불시험(Feuerprobe)이다. 재판관은 혐의자에게 그들의 무혐의를 증명하는 방법으로 달구어진 쇠로 지지는 것을 견딜 수 있는지, 그리고 다치게 될지를 시험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제안했을 때 혐의자가 승낙을 한다면 그는 마녀가 된다. 마녀는 이 난관을 악마의 도움을 받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물시험(Wasserprobe)이다. 일반적으로 물은 깨끗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졌다. 형리들은 혐의자를 단단히 묶고 깊은 물에다 빠뜨린다. 물은 깨끗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녀가 들어올 경우에는 물 밖으로 내쳐진다고 믿어졌다. 만약 혐의자가 물에서 익사한다면, 그는 혐의를 벗게 되겠지만, 물에서 떠오른다면 마녀로 간주되어 화형 되었다. 마녀든 아니든 죽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마녀재판의 기원

 


중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독교 사회권(주로 이단)에서는 악마가 인간이나 동물 등을 이용해 악한 행위를 한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이러한 생각은 기독교 이전부터의 민족 신앙에 대한 불신감이나 십자군 병사들에 의해 동방에서 가지고 온 사상 및 문화 등이 융합하여 생겨났다고 추측된다. 또 고대 이래, 악마가 인간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 사람들은 그것을 근절하려고 애써왔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로서 악마의 하수인으로 여겨진 인간에 대한 규탄이 있었다. 마녀재판은 스위스와 크로아티아의 민중 사회에서 시작되어 이윽고 민중 법정의 형태로 마녀를 단죄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단에 관해서는 깊이 개입했지만, 마녀에 관해서는 별로 관여하지 않았던 로마 가톨릭이 이단 심문을 통해 마녀 재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5세기에 들어가면서부터이다.

 

 

 

 


마녀 용의자

 

 

 

 


마녀 용의자는 주로 엄청나게 부유한 과부들이다. 특히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으면서 돈은 엄청나게 많은 여자들이 마녀로 잡혀가는 경우가 많았다. 과부들은 증인해줄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 또한 아프리카에서 숭배하는 부두교라는 종교를 믿는 자들 역시 ‘악마를 숭배한다’는 명목하에 마녀로 잡아갔다. 마녀 사냥꾼들은 마녀에 대해 이러한 혐의를 적용하며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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