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 인류가 10만년전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각지로 이동하였다는 설을 "Out Of Africa"라고 합니다.
이러한 주장의 기저에는 인류의 mtDNA,즉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디엔이 의 유전자 풀에서 아프리카인의 유전적 다양성이 다른 어떤 제 민족의 그것보다 높다는 결론 때문인 것이죠.
스포르짜교수를 비롯해서 현행 학계가 인정하는 현생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가 극동에 도착한 것은 지금으로 부터 약 4만4천년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 인류문명의 이동은
동방에서 서방으로!
Picture and text courtesy of Dr M. Feldman, Dr L. Cavalli-Sforza and Nature Genetics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4만년전이라면 중기 구석기에 해당할 것이고 인류가 문명의 씨앗을 잉태하기 시작한 시기는 지금으로 부터 약 1만5천년전으로 소급되는 후기 구석기와 신석기초기 인 것이죠.
김산호 화백님을 비롯해 많은 재야사학들은 아마도 이러한 4만년전 현생인류의 이주경로를 우리 민족의 이동경로로 착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현생인류의 이동 경로가 아니라 1만5천년전 시작된 신석기혁명과 문화의 동==>서 이동과 전파경로 입니다.
이러한 점은 우선 인류의 정착생활을 담보하는 토기의 출현이 극동에서 가장 이른 시기 인 1만2천년전에 만주 흑룡강(아무르)유역과 일본 조몬문화지역(10200BP),그리고 우리 나라 제주 고산리 유역 (9,000~10,000BP)을 아우르는 동아시아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사실로서 분명해 집니다.
아울러 스웨덴 왕립기술원의 사폴라이넨이 네이처지에 발표한 개의 사육과 전파에 대한 유전자적 연구도 지금으로 부터 1만5천년전 동아시아를 기원점으로 잡고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로 부터 영향을 받은 일본 죠몬시대의 초기적 농경형태가 전세계 농경의 시작으로 알려진 비옥한 초승달의 메소포타미아를 앞설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학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유전자와 언어학적 일치로 증명했던 카발라 스포르짜의 주장 가운데 동아시아인의 주 확산이 초기 조몬지역에서 시작되어 확대 전파되었다 는 사실입니다. ( 이 당시 죠몬문화 지역은 황해평야로 보아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 잉그펜과 윌크슨(Ingpen & Wilkinson)은 1만2천년전의 초기 조몬인들이 동아시아를 떠나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죠.
아울러 인도-유러피언 문화 즉 아리안의 기원으로써 알타이를 주목하는 학계의 관심도 우리는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제가 사이언스의 논문을 찾아 제시했던 헬리코 피로린 박테리아의 유전적 분포와 농경과 언어전파의 학설들은 한결같이 동에서 서로 문명전파의 가설을 지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알타이문화 주인공들의 금속기문명에 대해 동아시아 은의 청동기 문명이 독자적이고 일부 모티브에서는 시기적으로 앞선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인류 문화의 시원과 전파가 바로 동==>서라는 심증을 더욱 굳혀 줍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보면 비록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도착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4만년전의 이야기이고 전 세계 인류문화의 시작과 여명을 연 주인공들은 1만5천년전 극동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확산된 동아시아인들이라는 것을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이죠. 저는 그 주인공의 후예가 바로 우리 동이족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우리 한겨레가 그 중심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민족주의적 시각의 발로가 아닙니다.
같은 동아시아권에서도 우리 한겨레의 언어, 문화는 그야말로 수수께끼입니다. 어떠한 카테고리로서의 포함도 거부하는 이 유니크함은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요?
인도의 지식인들은 인도 문명이 아리안의 식민문명인 것으로 알고 있다가 인더스벨리의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인더스문명이 아리안 문명보다 선행했으며 오히려 아리안문화가 인더스문화로 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에 눈뜨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세계문명의 시원으로까지 주장하는 인더스 벨리의 유적이 실제로는 어딘가로부터 집단적으로 이주해 온 문화이고 그들의 지역적 토대가 되는 동인도인이 오래전 동아시아 인과의 유전적 혼혈이라는 점은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이겠습니까?
(Mitochondrial DNA analysis reveals diverse histories of tribal populations from India )
Richard Cordaux1, Nilmani Saha2, Gillian R Bentley3, Robert Aunger4, S M Sirajuddin5 and Mark Stoneking1 /
Within India, northeastern tribes are quite distinct from other groups; they are more closely related to east Asians than to other Indians. Sience .March 2003, Volume 11, Number 3, Pages 253-264
역사를 살피기 위해서 오류를 신념화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 민족이 천산에서 왔다든지 알타이로부터 이동이니하는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것은 적어도 4만년전의 호모 사피엔스 이동경로를 착각한 것입니다.
한때 저도 이 주장을 신봉했었지만 말이죠...
우리 민족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황해평야를 중심으로 중국 동부, 한반도, 일본,만주등에 터잡고 살아 왔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곳에서 부터 인류문명의 싹이 텄고 전세계 인류문명의 시원점이 되었던 것입니다.[끝]
지구촌으로 이주해 간 동방 한민족의 영산
개천절의 주인공인 국조 커발환 환웅천황이
황도로 정하고 삼청궁을 지어 하나님께
제사지낸 배경이 한민족 영산이 된 이유다! [규원사화/조선 숙종시대 북애노인]'태백'을 달리 일컬어 '백두'라 하였으며, 갑비고차에서 하늘에 제사지내던 곳을 '두악'이라 하였는데, 이는 단지 단군이 반드시 '머리'라는 이름이 붙은 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 아니라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은 반드시 '머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음을 말한다. 무릇 '머리'라 함은 가장 높다거나 혹은 으뜸 되는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백두'가 동방 모든 산의 으뜸이 되고, 또한 동방의 사람이 하늘로부터 처음 내려온 땅이 되며, 게다가 더하여 으뜸 되는 우두머리인 단군이 항상 그 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예식을 행하였기에 당시의 사람들이 '머리산(頭山)'이라 이름하였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니 갑비고차의 '두악'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수하(牛首河)'라는 이름은 알지 못하겠는데, 이 역시 단지 소머리를 물 속에 담그는 풍속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는 단정지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신시씨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이미 백두산에 있으면서 점차 서남쪽으로 옮기고, 다시 패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으며, 삼씨(三氏)의 겨레들은 각자 더욱더 사방으로 옮겨갔다. 또한 태백이 이미 동방의 신령스러운 땅이 되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큰 의식은 반드시 그 산에서 시작하였으니, 예로부터 동방 민족이 이 산을 숭상하고 공경함은 남다른 것이었다. 또 옛날에는 짐승들이 모두 신의 교화에 젖어 그 산에 편안히 깃들여 살며 사람을 해치지 않았으며, 사람 또한 산에 올라가 오줌을 누는 등의 신을 모독하는 행위를 감히 하지 않았으니, 만대에 걸쳐 항상 받들고 보호하는 지표가 되었다. 무릇 우리 선조들은 모두 신시씨가 거느린 3천의 무리에서 나온 후예들이다. 뒷 날 비록 여러 씨(氏)의 구별이 있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단군 선조께서 똑같이 어여삐 여기는 신의 후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환인(桓因)·환웅(桓雄)·단검(檀儉)의 삼신이 나라를 열고 기초를 바로잡은 공덕을 항상 전하여 예기하고 잊지 않았으니, 곧 옛 백성들이 그러한 신령스러운 산을 가리켜 '삼신산'이라 하였음은 당연한 일이다.[소중화 조선의 얼빠진 정치꾼들을을 질타하며)
余嘗論之, 强國之要, 有三; 一曰「地廣而物博」, 二曰「人衆而合」, 三曰「恒守其性而不失其長」. 此所謂地利.人和及[保性也. 而朝鮮, 則得地利而不全, 失人和]14)而亡其性, 此萬世之患也. 何謂得地利而不全. 夫, 朝鮮(之)地, 北連大荒, 則凍天氷地, 斷我後退之路; 西接蒙古, 而萬里流沙, 斷我左展之臂; 西南隣漢土, 而無泰岳峻峙.長江大河之限, 則其勢易於進攻, 難於防守; 東南阻大海, 而無前進一步之土. 且漢人者, 盤據萬里金湯之地, 容百族以爲衆, 蓄布粟以爲富, 鍊百萬之師而以爲强, 則恒涉野跨海, 以侵西鄙. 時有굴强桀오者, 蹶起於北方, 則爲後顧之慮, 必來겁攻. 倭, 海洋萬里, 各據島嶼, 有事則以易自保, 無事則順風駕帆, 任志來寇, 譬如床下맹之恒致其苦. 若我常强而無衰, 則可抑漢士而郡其地, 斥倭寇而鎖其海, 可號令天下, 囊括宇內也. 若我勢一弱, 則敵騎長驅, 蹂린闔國, 虜掠吏民, 焚燒閭里. 此, 所謂得地利而不全者也. 내가 일찍이 말하기를 강한 나라의 요건에는 세가지가 있다 하였으니, 그 첫번째가 땅이 넓고 산물이 풍부한 것이고, 그 두번째가 사람이 많으면서 화합하는 것이며, 세번째는 항상 그 본바탕을 지키며 자기의 장점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는 지리적 이익과 사람의 화합 및 본바탕의 보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지리적인 이익을 얻었으나 온전한 것이 못 되며, 사람들은 화합을 잃은 데다 본 바탕을 망각하고 있으니, 이것은 만세에 걸친 근심이라 할 것이다. 지리적인 이익을 얻었으나 온전한 것이 못된다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무릇 조선의 땅은 북으로 대황(大荒)과 연결되어 있으니 곧 얼어붙은 하늘과 빙판 같은 땅이 우리의 퇴로를 끊고 있고, 서쪽으로는 몽고와 접하니 만리에 뻗친 사막이 우리의 왼쪽으로 뻗은 팔뚝을 끊고 있으며, 서남으로는 한나라 땅과 인접하여 있으나 태산의 험준함이나 장강의 큰 물줄기 같은 경계가 없기에 곧 그 형세가 나아가 공격하기는 쉬우나 지켜 방어하기는 어려우며, 동남으로는 큰 바다에 가로막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땅이다. 한나라 사람들은 만리에 뻗친 철옹성 같은 땅에 자리잡고 살면서 수많은 종족을 포용하여 이들로 그 무리를 삼고, 베와 곡식을 축적하고 1백만의 군대를 훈련시켜 이로서 부강함을 삼으며, 항상 들을 건너고 바다를 뛰어 넘어서 서쪽의 먼 변방까지 침략하여 들어갔다. 때때로 뛰어나게 강인하고도 굳세어 굴하지 않는 자가 나타나 북방에서 떨치고 일어나면, 곧 뒷날의 우환을 염려하여 반드시 와서 으르고 공격하였다. 왜(倭)는 바다 1만리의 크고 작은 섬에 제각기 살면서, 유사시에는 쉽사리 스스로를 보호하다가 무사하면 곧 순풍에 배를 몰아 마음대로 와서 노략질을 하니, 마치 마루 아래의 등에가 항상 골치인 것과 같다. 만약 우리가 항상 강하여 쇠퇴함이 없으면 곧 한나라 선비들을 눌러 그 땅에 군림하고 왜구를 배척하여 그 바다를 봉쇄할 것이니, 가히 천하를 호령하며 세상을 주머니 속에 넣고 주무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의 기세가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곧 바로 적의 병사가 멀리로부터 말을 몰고 와서 온 나라를 유린하고 백성들을 노략질하며 고을을 불사를 것이니, 이것이 소위 지리적인 이익은 얻었으나 온전한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昔者, 蚩尤氏卽帝位於탁鹿, 屹達陳兵於빈.岐, 藍侯建四侯於殷地, 奄薄姑王誘三監而唆武庚, 幾撓周室, 徐偃王抑宗周而王潢池之東朝三十六國. 後世, 遼.金.淸者, 皆起於舊朝鮮[地]而有中原. 高句麗之方盛也, 强兵百萬, 南擊吳.越, 北挑幽燕.齊.魯, 恒虎威於漢方. 百濟則跨渤海而略遼西.晉平, 越草海而占越州. 新羅[則]鯨濤萬里, 陳雄兵於明石, 刑白馬而盟赤關. 此皆, 我强而易於攻彼, 是得地利也. 옛날에 치우씨는 탁록에서 제위에 올랐고, 흘달 임금은 빈·기에 병사를 주둔시켰으며, 남후는 은나라 땅에 네 제후를 세웠고, 엄박고왕(奄薄姑王)은 삼감(三監)을 꾀고 무경(武庚)을 부추켜 주나라 왕실을 거의 휘어잡았으며, 서언왕(徐偃王)은 종주(宗周)를 누르고 황지(潢池)의 동쪽을 다스려 서른 여섯 나라로부터 조회를 받았다. 그 뒤에 요(遼)와 금(金) 및 청(淸) 등이 모두 옛 조선의 땅에서 일어나 중원 땅을 차지하였다. 고구려가 막 번성하였을 때는 강병이 1백만으로서, 남방의 오와 월을 치고 북방의 유연(幽燕) 및 제(齊)·노(魯)등과 싸움을 일으키는 등 항상 한나라 땅에 위엄을 세웠다. 백제는 발해를 뛰어넘어 요서와 진평을 공략하였고, 초해를 건너 월주를 점령하였다. 신라는 1만리 길의 거대한 파도를 넘어 명석(明石)에 뛰어난 병사들을 주둔시키고 백마를 잡아 적관(赤關)의 맹세를 받았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우리가 강하면 저들을 공략하기 쉬운 것이니 이것이 지리적인 이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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