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의 시원인 한민족 역사와
한민족의 정신과 한민족의 말과
한민족의 문자를 상실하면 천손
한민족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무능 부패 패거리 정치는 망국의
지름길이며, 이러한 부패 패거 무능의
정치로 인한 저출산 양극화 노령화 역시
망국의 지름길이다! 천손 한민족은 모두
부유해야 하고 양심적이어야 하며,
약자들에 대한 측은지심을 가져야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천손민족이 된다!
지금 자유 대한민국은 세습독재로
적화하겠다는 북괴의 핵도발로부터
구해낼 수 있는 안보와 민생을 책임질
광개토태왕과 징기스한같은 안보애민.
한민족통치자가 절대 필요한 상황이다!
* 고리(고려=고구려=코리아)족
출신의 광개토태왕과 징기스한은
우주 하나님을 섬기고 제사지낸
대제사장이였다!
- 동방의인 코리아 대한(윤/다스리다.바로 잡다.조화롭게 하다) -
[자료]한민족 국민정신 교육 자료
(1) 백두산과 기독교 (가) 「하느님」이라는 명칭에 대하여
* 하느님은 예수가 유대 나라에서 태어나기 2천년 전부터 우리 한민족이 섬기던 고유한 신앙의 대상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모시던 하느님은 우주를 낳으신 하느님이요(生天) 온갖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이요(造物) 또한 인간을 낳으신 아버지 되시는 하느님이시다(生我) 그리고 온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하느님이시다 (主無數世界)
우리 민족은 흔히 생사가 달린 죽음의 자리에서나 긴박한 일을 만날 때 저절로 '아이쿠 하느님'하고 소리를 내게 된다. 이것은 저절로 우러나는 소리, 생명의 소리다. 생명의 주인이신 우리 하느님을 찾는 본심의 소리인 것이다.
기독교의 신은 여호와신, 야훼신이다. 같은 기독교라도 중국에서는 상제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미사마로 부른다. 카톨릭 백과사전에 보면 '선교의 편의상 한민족의 신인 하느님을 신의 이름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을 유대민족의 신인 여호와, 즉 야훼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
* 야후기(여호와)의 신앙의 起源 이스라엘 민족사를 이루는 율법과 계약을 이스라엘 민족이 받은 곳은 시나이산이다. 이스라엘이 정착하기 전 팔레스타인 그 밖의 어느 곳에서도 야훼 신앙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그 이전의 문헌에서도 야훼라는 신의 명칭이 언급된 역사적 기록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야훼'라는 말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던 모세가 조상들이 부르던 씨족 신의 명칭을 이스라엘의 하느님 명칭으로 공식적으로 쓰면서부터이다.
성경상의 여호와신은 모세가 시나이산에 머물러 있을 때(BC1280 - 1278)로부터 쓰여졌다. '여호와'라는 신은 만주 요동반도 지방에 자리하였던 여와(如 )씨를 일컫는 말인데 여와씨는 여신이며 할머니 신이다. 모계 사회 시대의 사람들은 출산을 신성시하여 신비로운 여자들을 신으로 받들었다.
슈메르인의 원향(原鄕)이 소호금천씨국(少昊金天氏國)이었다는 사실과 이 나라는 여와(如 )에 관한 기록과 전설, 그리고 사당이 많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후한서와 삼황본기의 기록에 보면 '반고는 여와씨를 皇이라 하지 않고 어진 사람이라 했다 - 太皇安義氏 如 氏' 기록이 있고,
여호와신은 흙을 두드려 사람을 만들었다 - 博黃土作人 - 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슈메르인의 원조, 즉 아담과 이브가 모세의 25대조였다는 것은 혈통과 그 계보를 연구함으로서 여호와 신의 근원을 밝힐 수 있다. 여희(女希)는 YAHWEH로서 여호와의 YAHWEH와 같다. 우리나라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를 서양 학자들은 야훼(YAH-HEH)라 한다. (나) 백두산과 에덴 동산
성서의 에덴 동산은 과연 어디일까 ? 많은 신학자들과 성경 고고학자들이 에덴 동산을 찾고 있지만 아직도 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성경 창세기에서 말하는 에덴 동산은 유프라테스 근처나 티그리스 강 주위가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이다. 성경에는 비유와 상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창세기에 보면 에덴 동산은
첫째 - 동방에 창설하셨다고 했다. 둘째 - 에덴 동산에서는 네 강이 발원(發源)한다고 한다. 셋째 - 동선에는 각종 보석(황보석 금강석 청보석 화강석)으로 둘러 쌓였다고 했다. 넷째 - 하느님의 산이며 거룩한 산, 즉 성산(聖山)이라고 했다. 이 네 가지 조건이 갖추어진 산은 과연 어디일까 ? 1) 동방의 에덴 예로부터 동양(東洋) 삼국(三國) 하면 중국 한국 일본을 일컬었다. 중국에서는 네 가지 조건이 맞는 산을 찾을 수 없다. 일본은 둘째, 셋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산이 없다. 넷째 조건인 성산(聖山) 역시 일본인들은 후지산을 말하지만 후지산은 화산(火山)으로 오래 전에 죽은 산이다.
한국의 영산(靈山), 백두산은 동쪽에 우뚝 솟은 동방의 성산(聖山)이다. 주역에 보면 간(艮)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고 했다. 간은 산이요 문물이 시작된 곳이다. 간방(艮方)은 동북방인데 그곳은 바로 백두산이다. 사마천 사기에는 지금부터 2100년 전에 동이의 동북녘 땅에 이 나라의 한밝산(백두산)이 있는데 이 산에는 새 짐승들과 풀, 나무들이 모두 희다고 기록 하고 있다.
심광세의 태백신가(太白神歌)에서는 '해와 달이 정기 쌓아 성인을 저 나무 밑에 내렸네 해와 달이 함께 밝고 하늘 땅이 함께 커서 나면서부터 이미 상서롭고 신령스럽네 '
우리 한민족의 창세기인 삼국유사와 환단고기에서는 '옛날 환인(桓因)님의 아들 환웅(桓雄)님이 있어 항상 천하에 뜻을 두시고 인간 세상을 탐내시거늘 아버지께서 그 아들의 뜻을 아시고 삼신산인 백두산을 내려다보시고 가히 홍익인간 하겠다 하시고는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시면서 내려가 다스리라' 하시었다. 그리하여 신시(神市), 즉 하느님이 거하는 성스로운 곳이라 했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니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참전계경에서는 '하느님께서 하느님 사람됨의 그릇을 만듦이다. 만사람을 한 형상으로 만드시며 만 성품을 한 성품으로 만드시느니라(造器白天이 僞造人器也라 造萬人一人像하며 造萬性一品이라)' 고 했다 2) 에덴 동산에서 4강이 발원한다고 했다.
거여록에 이르기를 산은 모두 3층이며 높이가 이백 리에 가로는 천리요, 그 꼭대기에는 천지가 있으니 둘레가 80리요, 혹은 3,40리라고도 한다. 이 천지는 4강의 시원이 되었는데 첫째 강은 서쪽으로 흘러서 압록강 신의주와 단동을 이어 흐른다고 하여 앞누비 강이라고도 하는데 백두산 천지에서 직접 흐르는 유일한 강이다.
둘째 강은 북쪽으로 흐르는데 송화 강, 또는 혼돈 강이라고 한다. 송림 사이로 흐른다 하여 솔꽃 강이라고도 하며 만주 대륙을 적신다.
셋째 강은 동쪽으로 흐르는 두만강이 있다. 중국의 도문과 남양시를 이어 흐른다. 이 강은 700리를 뻗어 동해에서 만난다.
넷째 강은 토문 강(土門 江)이다. 한반도 남쪽으로 흐르는 강인데 형제 폭포와 삼지연을 담아 백두대간의 혈을 타고 내면에 흐르는 강이다.(숙종 38년의 표석한 정계비를 놓고 송화강 두만강 토문강 정원의 경계비를 놓고 북조 청의 길림 장군이 논한 적이 있다.) 3) 동산에는 각종 보석이 있는데 황보석 금강석 화강석으로 둘러 쌓여 있다고 했다. 백두산은 16개의 봉우리로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데 한 옛날 화산 폭발에 의하여 각종 화강석 금강석 황보석등이 있어 아침 햇살이 빛날 때는 각기 아름다운 무지개 빛을 영롱히 발하고 있어 장관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또한 황혼이 지는 저녁 노을에 반사된 화강석의 찬란한 빛은 백두산의 위용을 한층 빛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1990부터 지금까지 백두산에 올라서 본 신비함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4) 하느님의 산이고 성스러운 산이라 했다. 한민족은 백두산을 민족의 성지(聖地)요, 영산(靈山)으로 늘 그리워하며 살아 왔다. 하느님께서는 홍익인간의 대 이상을 세우시고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을 찾으시다가 백두산을 정하셨다고 했다. 그리하여 단군께서는 백두산에 내리셔서 나라를 여시고 조선 나라를 세웠다.
선가서(仙家書)에서는 '삼신산(白頭山)에는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불로초가 있는데 일명 진단(眞丹)이라 했다. 또한 새 짐승 초목이 모두 희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위서의 물길전(勿吉傳)에는 '백두산은 신주의 황을 일으킨 신령한 땅이니 소도, 즉 제천의 옛 풍속이 이곳에서 시작되고 성스러운 산이므로 산에 오를 때는 대소변을 모두 담아서 내려 왔다'고 전한다. 한족(桓族)의 조상숭배(祖上崇拜)도 이곳에서부터라고 전한다. 삼한비기에는 '신인(神人)이 오르내리는 것은 실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의 시작이 백두산이요, 한얼 공경의 제단을 쌓음도 바로 백두산이다. 그러므로 [神市]라 했다. 고기(古記)의 기록에 백두산을 이전원(伊田園), 직역하면 에덴 동산이라고 분명히 기록 해 주고 있다. (2) 백두산과 불교
(가) 전불 시대와 대웅전에 대하여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 (서기 372)인데 삼국유사의 요동성 육왕탑편에 보면 소수림왕 이전의 성왕인 동명성왕이 국경을 순회하다 보니 삼중토탑(三重土塔)이 있었다. 이를 보고 신앙심이 생겨 칠중토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동서가엽불연좌석편에 이르기를 '신라의 월성 동쪽 용궁의 남쪽에 가섭불의 연좌석이 있으니 그곳은 곧 전불시절(前佛時節)의 절터이다. 지금 활룡사의 터는 곧 일곱 절 터 중의 하나이다'라고 했다.
동서아도기편을 보면 '아도본비(俄道本碑)에는 인도에서 석가가 태어나기 전 전불시대(前佛時代)의 일곱 절 터를 하나 하나 밝히고 있다. 즉 신라의 고도 계림에 금고동쪽 차경림 지금의 홍윤사. 삼천지 지금의 영흥사. 용궁 남쪽 지금의 황룡사등 그외 경기도 양주군 천보산 회음사의 절터를 서천축의 지공선사가 상세칠불 시절의 절터라 하였다. 이 절터는 석가 불교 이전의 고전불교(古前佛敎)의 전 불찰(佛刹)이 있었다는 충분한 증거이다.
고대 불교의 기본 사상은 신선도, 즉 풍류도를 포함한 삼교(三敎)의 사상이다. 환인 환웅 환검의 삼신 사상의 뿌리에서 고선(古仙) 고불(古佛) 고성(古聖)이 되었고 동시에 삼선(三仙) 삼불(三佛) 삼성(三聖)이 되었다. 현재에도 발해의 삼성사를 비롯해서 우리나라 전역에 전불시대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현재 모든 절의 중신 전각을 대웅전(大雄殿)이라 하고 불상을 모시고 있는데 인도의 석가 불교에는 대웅이라는 단어가 없다. 대웅(大雄)의 뜻은 환웅천왕을 기리는 신앙으로 큰 나무에 대웅상을 만들어 모시던 신앙이다. 대웅상을 모시던 곳을 대시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우리말의 '한'은 한자의 '대(大)'와 같은 뜻으로 환웅을 대웅(大雄)이라 하는데 절을 짓고 불상(佛像)이 처음 들어 올 때 대웅전으로 하여 모시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이것은 옛 고승들의 전불(前佛)시대의 뜻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 불교의 대웅전은 환웅전이 변화된 것이며 그 안에 모신 삼불(三佛)도 삼성(三聖)과 삼신신앙(三A信仰)의 고불(古佛)신앙의 전래로 볼 수 있다. (나) 석가세존의 씨족에 대하여
석가씨보와 석가보에 보면 '일명 사이(舍夷)는 외국의 귀성이라 했고 묘족의 후예라 하고 석가는 단종찰제리(檀種刹帝利)라' 했다. 동이(東夷) 서이(西夷)의 사이는 외국의 귀성이므로 인도의 원주민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드라비다계도 아니라 인도로 이주한 동이나 성이의 알타이족이다. 묘족도 고몽고계 인종이라 했으니 결국 같은 동이족이다. 특히 단종과 찰제리는 직접 우리 민족을 지칭한다.
단종(檀種)은 단군종족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고 삼국유사에 보면 우리나라 신라왕을 찰제리(刹帝利)라 했다. 우리 민족을 배달민족이라 하는데 배달은 광명을 숭상하는 태양족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석가족은 우리 동이족, 즉 단종 단군족의 후예임을 알 수 있다. (다) 석가세존과 백두산 고행(苦行)
석가는 보살 당시 설산(雪山)에서 6년 고행을 하고 염부주에 득성각도(得成覺道)하나 후 설산총림 방중의 진귀조사(眞歸祖師)로부터 종지를 받았다고 한다. 불경의 장아함경에 보면 석가가 6년 동안 고행한 곳을 설명하고 있다. ' 정상에는 흰눈의 설산(雪山)이며 큰못인 아뇩달지(池)가 있고 그곳에는 용왕이 살며 사방에는 사대하가 발원하여 흐르는데 동쪽에는 황하 남쪽에는 신두하 서쪽에는 파차하 북쪽에는 기타하가 흐른다고 했다.
또한 고행했던 땅은 염부주라 했는데 소미산 남쪽 해중에 있으니 삼변이 비등하고 불활 남협하여 인면상이다. 염부주는 진단이니 신주의 호이다. 염부주는 일대지가 있으니 아뇩타 답다 소위 불경에서는 아뇨달지니 지름은 8백리요 서안이 보물장식이다. 정남에는 평지와 동쪽에는 5천리에 이른다. 또한 천왕목이 있고 북으로는 대단한 미라천 폭포가 있어 북으로 흐른다'고 했다.
석가세존이 6년간 고행했던 설산과 백두산을 비교해 보자. - 일반적으로 설산을 히말라야 산으로 알고 있는데, 백두산의 순우리말 명칭은 흰머리 산이다. - 설산은 3층이며 대지(大池)인 아뇨달지가 있다고 했다. 백두산은 3층으로 되어 있고 천지(天地)가 있다. 최남선은 무열뢰지라 했다. - 아뇨달지를 근원으로 사방에 사대하가 흐르고 그 하수는 오른쪽으로 돌아 요하가 있다고 했는데 백두산에는 천지를 근원으로 4강이 흐르고 오른쪽으로 요하가 있다. - 아뇨달지에는 용왕이 살고 북쪽에는 천주목이 있고 미라천 폭포가 있다. 백두산에는 용왕담이 있고 신단수가 있고 68m의 천지 폭포가 있다. - 아뇨달지 4안(岸)에는 보물과 8백리의 둘레와 대평지가 있다고 했는데 백두산에는 정금과 각종 보석, 80리 둘레의 산과 만주벌이 펼쳐 있다. 이와 같이 백두산과 불경의 설산은 일치하고 있다. 인도의 히말라야 산은 큰못도 없고 대 평야는 물론 불경의 기록과 일치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기록한 대로 백두산은 신령한 땅이니 이곳에서 천제(天祭)가 시작된 곳이다. (라) 석가세존이 우리나라에 왔었다는 기록
삼국유사 어산불영편에 보면 '명종 11년(서기1180)에 만어사를 지었는데 기이한 자취가 셋이 있으니 그 중의 하나가 부처가 가사를 받은 곳이라' 했다. 관불삼매해중에는 '부처가 야건 가락국 고선산 남쪽에 이르렀다' 가락국은 김수로왕이 세운 나라요 고선산은 삼신산이요, 백두산을 가르친다.
신라의 고승 대덕자장이 이르기를 '너희 나라의 황룡사는 석가와 가섭불이 강연하던 땅이다'라고 하였다. 경남 금산 쌍흥문에는 '석가세존이 이곳에 석단(石丹)을 타고 왔다'는 안내 간판이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김수로왕의 비가 인도의 아유타국의 공주'라 했고 '인도에서 돌을 가져와 신앙의 조국에 금관 호계사의 파사석탑을 세웠다'고 했다. 영국의 국립박물관에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의 하나인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모습을 그렸는데 모습은 한국 사람의 얼굴이요 옷은 한복을 입고 있다고 한다. (3) 유교(儒敎)사상의 뿌리
(가) 유교는 동이 사상이다.
유교는 공자로부터 비롯되었는데 공자의 사상은 요임금 순임금의 가르침을 배우고 해석하여 후학들에게 전한 것이다 (仲尼 祖述堯舜 述而不作) 한자는 맹자란 책의 서문에서 기록하기를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전하고 순임금은 우 임금에게 우 임금은 탕 임금에게 탕 임금은 문무 임금 주 임금께 전하고 이들이 공자에게 전하고 공자는 맹자에게 전하고 맹자가 죽은 뒤 전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요순임금의 도가 계승되어 공자님에 이르러 유교의 사상을 낳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요임금과 순임금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나) 요임금과 순임금
요임금은 동이 땅인 기주에서 갑신년에 나서 갑진년에 임금이 되었고 탁록성에 도읍 하였다. 임금이 회중을 명령하여 우이의 땅에 살았는데 이 우이는 청주로서 동이 땅이다. 요임금은 신사년에 죽으니 118살이요 98년 동안 다스렸다. 순임금은 맹자가 말하기를 '제빙에서 나고 부하에 옮겨갔다가 명조에서 죽었는데 그는 동이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또 제빙 부하 명조는 동이의 땅 이름이요 중국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곳이라 하였다.
유교의 중심 경전은 [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지은 책이지만 그 내용은 창작이 아니고 공자와 그의 제자인 증자에게서 배운 바를 실전 될 것을 염려하여 기록했다고 했다. 머리말을 보면 '대개 상고에 성신(聖神)이 있어 하늘을 받들어 제왕의 자리에 나아감으로서 도의 전함에 있다. 그 경에 보면 진실로 중(中)을 잡으라고 한 것은 요가 순에게 전한 바요'라 했다.
위와 같이 요순은 동이족이요, 그들은 조상의 성신 도를 받고 후손이 공자에게 전하여 유교와 그 사상을 집대성하기에 이른 것이 된다. 그러므로 공자님의 사상은 동이의 사상이요, 그 동이 사상은 한민족의 배달 사상이다. (4) 도교(道敎)사상의 뿌리
도교는 황제 헌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황제 헌원은 중국인들이 시조로 모시고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황제는 동이 겨레인 소전의 자손으로 '자석동이요, 동이지인이라 - 나는 스스로 동이 사람이요 동이 겨레라 -' 고 했다.
포박자는 고대 문헌에 이르기를 ' 옛날에 황제가 있었다. 청구에 이르러 풍산(白頭山)을 지나다가 자부 선생을 만났는데 자부 선생으로부터 3황내문을 받아 만신을 전했다' 한다. 이것은 황제가 청구 땅, 우리 조선 땅 백두산에 계신 자부 선인으로부터 3황내문을 공부하시고 뭇사람을 교화하는 도를 받으시게 된 것이다. 바로 이 도가 황노지학이요, 황노교요, 도교의 뿌리가 된다.
태백일사에서는 ' 자부선생이 3황내문을 황제에게 주어 마음을 밝히고 의로 돌아가게 했다 ' 는 기록이 있다. 이상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노자의 도교의 뿌리는 황제 헌원이요, 황제헌원은 백두산의 자부선생으로부터 받은 3황내문에 근원을 두고 있으티 도교의 뿌리는 고대 우리의 풍류도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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