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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

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가 진행하는고품격 시사 토크쇼 시즌 2
정치권의 정쟁 정략에서 벗어나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정책을 분석하는
살아있는 정치 비평 프로그램을 지향한다.






전원책의 이것이정치다 - 시청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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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홍시황!홍콜라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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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3 윤*현 조회수 516


춘추 전국시대공자 - 춘추전국시대 : 공자를 통해 이 시대의 지도자를 생각하다


혼란과 분열의 춘추전국시대를 정리해줄 홍시황!


답답한 정치판 더위를 식혀줄 홍콜라가 필요해!




아가씨들! 시원해 보여!




피트니스 선수 홍지원, 공민서, 손소희, 이국영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역삼동 한 스튜디오에서 열린 '머슬마니아 4대 천왕 화보 현장공개'에 참석했다. 

춘추전국시대 VIP 파티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 낯선이여.


춘추시대 BC 770~403

 



단군한국이 승인하고 지원하여 성장한 주(周) 왕실이 동천하고 세력이 약해지자 100여 개국이 넘는 중원(中原) 지방의 제후들이 반독립적인 상태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이 나라들은 서주(西周) 시대 이래 존재하던 읍제국가(邑制國家)가 발전한 것이었다. 이들은 국도(國都)의 세력권 내에 크고 작은 읍들을 복속시켰는데, 국도의 정치력이 쇠약해지면 곧 제후의 이합집산이 격심하게 되고, 제후세력은 급속히 약해졌다. 그래서 춘추 제후는 국도에서 정권을 확립하고 여러 읍의 맹주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는 데 노력했다. 이렇게 성립된 제후는 다시 회맹(會盟) 외교를 통해 상호간의 세력과 균형을 도모했다.




허약해진 주 왕실을 대신하여 제후국 가운데 강자를 중심으로 여러 국가들이 회맹을 하게 된 데에는 남방의 강국인 초(楚)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했다. BC 658년 초가 정(鄭)을 침입했을 때 제(齊)의 환공(桓公)이 이듬해 제후들을 이끌고 초를 물리치는 데 성공했으며, 그 여세를 몰아 제후들과 규구(葵邱:지금의 허난 성 란카오 현[蘭考縣])에서 회맹하여 패업을 성취했다.




환공이 죽은 후 제는 내분으로 쇠약해지고 그 뒤를 이어 진(晉)의 문공(文公)이 중원의 맹주가 되었다. 그는 BC 633년 북진해온 초를 성복(城濮 : 지금의 산둥 성 쥐안청[鄄城])에서 대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천토(踐土:지금의 허난 성 정저우[鄭州] 동북쪽)에서 제후들을 모아 회맹했다. 문공이 죽은 후 진이 내분으로 세력이 약해지자 초가 다시 진(陳)과 함께 송을 침입했고, 나아가 육혼(陸渾:지금의 간쑤[甘肅], 산시[陝西] 서부에 속함)의 융(戎)을 치고 낙(지금의 허난 성 뤄양)에까지 이르렀다.




이때 초의 장왕(莊王)이 주 왕실의 상징인 보정(寶鼎)의 경중(輕重)을 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양쯔 강 유역에서 세력을 쌓아 북방의 패자가 된 초를 위협한 것은 춘추 후기에 세력을 키워 급성장한 오(吳)나라였다. 오왕 합려(閤閭)는 BC 506년초의 도읍인 영(지금의 후베이 성 장링 현)을 함락시키고 BC 482년 맹주의 지위에 올랐다. 그후 오는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으며 월은 다시 초에게 패자의 자리를 빼앗겼다.



전국시대 BC 403~221

 

춘추시대 초기에 200여 개가 되던 제후국은 말기에 이르러 10여 개국으로 감소했다. 이 시기를 전국시대라고 부른다. 각 제후국 내에서는 실력을 키운 일부 세경(世卿)이 독자적인 가계(家系)를 형성했다. BC 5세기말경 제에서는 진항(陳恒)이 간공(簡公)을 살해하고 실권을 장악했으며, 진(晉)에서는 한(韓)·위(魏)·조(趙)의 3씨(氏)가 구요(苟瑤)를 멸망시키고 국가를 3분했다. 이때 중국에는 제(齊)·연(燕)·진(秦)·초(楚)·한(韓)·위(魏)·조(趙)의 7개 국가가 큰 세력을 형성하고 서로 패권을 다투었다.



이 전국 7웅(七雄) 가운데 가장 먼저 발전한 나라는 위였다. 위의 문후(文侯)는 이회(李悝)와 서문표(西文豹)를 등용하여 농업생산력을 증진시키는 한편, 오기(吳起)·악양(樂羊) 등의 장군을 기용하여 영토를 확대했다. 그러나 상앙(商鞅)의 변법을 통해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고 급속히 강국으로 부상한 진(秦)의 공격을 받아 BC 340년 수도를 안읍(安邑:지금의 산시 성[山西省] 샤 현[夏縣])에서 대량(大梁:지금의 허난 성 카이펑 시[開封市])으로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진이 강성해지자 BC 318년초의 회왕(懷王)은 진 동쪽의 위·조·한·연·제와 함께 남북으로 동맹하는 합종책(合從策)으로 진에 대항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진은 6국 각각과 동맹하는 연횡책[連橫策]을 써서 합종을 방해하고 계속적인 침략으로 여러 중원 국가들 가운데 우위를 차지했다. 진은 BC 260년 장평(長平) 싸움에서 조를 이겨 조의 세력을 약화시킨 뒤 연합한 초·조·한·위의 마지막 저항도 물리치고, BC 221년 중국 전역을 통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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