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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

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가 진행하는고품격 시사 토크쇼 시즌 2
정치권의 정쟁 정략에서 벗어나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정책을 분석하는
살아있는 정치 비평 프로그램을 지향한다.






전원책의 이것이정치다 - 시청소감

전원책의 이것이정치다 - 시청소감
한비자,세력 있어야하고,사리사욕 간신들 제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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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3 윤*현 조회수 320

한비자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원칙과 법이 사리사욕의 패거리들에게 악용되면 그건 반칙과 악법이다



고로 공정한 국회논의절차없이 언론기사내용으로 탄핵소추안을 작성하여


탄핵가결시키고 헌재에 제출한 국회나,무죄추정원칙이라는 형법의 기본을


위반하고 탄핵파면시킨 헌법재판소 모두 공정성을 상실했기에 국가반란죄다!


고로 안민석일당이 3년간 충분히 준비해서 터트렸다는 김성태 진술에 의거하여


탄핵의 진실을 철저히 수사하여 기획한 주범들을 반란죄로 사형에 처해야 한다!





한비자에 따르면 세력은 군주에게 있어서 밑천이다. 일찍이 신도가 두 신하와 한 군주가 세력의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를 언급했다. 임금은 두 신하 중 하나를 쳐서 세력의 절대우위를 점하라는 충신의 간언을 무시하였다가 한 명의 신하가 다른 신하를 쳐서 세력을 흡수하자 열세에 놓여 당하고 말았다.





이처럼 세력은 군주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밑천이다. 술책은 군주가 신하를 부리는 술수이다. 군주는 적절한 신하를 뽑아 임용해야 하며 신하의 실적에 따라 상벌을 명확히 해야 한다. 군주가 신하를 제대로 부리지 못하면 국정은 온전히 운영될 수 없다. 법은 신하가 백성을 다스리는 규칙이다. 법이 엄정하지 못하면 나라가 어지럽다. 세, 술, 법을 적절히 병용하는 것이 치국의 요체이다. 법과 술은 군주의 수단이며 세력이 없으면 수단을 부릴 힘이 없다. 한비자의 많은 부분은 술책에 할애되어 있다.






고분편에서 한비자는 술과 법을 다루는 선비에 대해 논한다. 지술지사, 술을 아는 선비는 식견과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사리사욕을 취하려는 신하들이 꾸미는 음모를 밝힐 수 있다. 능법지사는 법을 아는 선비인데 굳세고 곧아야 한다. 굳세고 곧지 못하면 간교함을 바로잡을 수 없기에, 이를 등용해 사리사욕을 꾸미는 간신과 귀족을 몰아내야 한다. 그러나 세력을 따르지 못할 경우 법술지사는 누명이 씌워져 죽거나, 자객의 손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법술지사는 군주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저러한 운명에 취할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현 대한민국의


국호를 가진 韓은 단군족 나라


단군왕검 나라=만주 진韓 중심의 마.번韓의 3연방국가


韓은 단군왕검 천왕이 나라를 열고


정한 국호로 韓은 단군한국 계승를


담고 있는 국호라고 할 것이다!



관련 이미지


단군족 韓非子. Han Fei Zi. (BC280? ~ BC233)



중국 전국시대철학자. 본명은 한비(韓非)이다. 전국시대 말기에 (韓)나라에 살던 공자(公子)로 한왕(韓王) 안(安)의 서자로 태어났다. 법치주의를 주장했으며 법가를 집대성한 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통이라면 '한자(韓子)'라고 해야겠지만, 후에 한유를 한자라 부르게 되면서, 유가가 아닌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의 우선순위가 낮기 때문에(...) 이 한자 쪽을 이름 전체를 넣어서 한비자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젊어서
(秦)의 이사(李斯)와 함께 순자(荀子)의 밑에서 동문수학했다. 이사는 매우 언변이 뛰어났으나 한비자는 말더듬이었다고 한다. 허나 학문에 있어서는 이사가 한비자에 미치지 못했다. 이 때 한비자는 법가 뿐만 아니라 도가, 유가, 묵가 등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법에 의한 부국강병의 논리를 정립했다. 한비는 철학자 중에서도 형명가(刑名家)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형명학을 주장하는 사람이란 뜻이며 형명학은 명실론(名實論)을 법의 적용에 응용하려던 일종의 법률학이다. 한나라는 전국칠웅 중에서도 문화가 떨어지고 당시에는 세가 기우는 형국이어서 한비자는 이를 걱정하여 여러 계책을 한왕에게 간하였으나 별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동이족의 후손인 진시황이 매우 존경했던 인물로도 유명한데, 사마천사기에 의하면 한비자가 쓴 저서인 고분(孤憤)과 오두(五蠹)를 본 진시황이 크게 감명을 받아 "이 사람과 교유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라고 했다고 한다. 진나라의 재상이 된 이사는 "한비를 얻고 싶다면 한나라를 공격하라. 그러면 한비가 사신으로 올 것이고 그때 회유하면 된다"라고 진시황에게 간한다. 물론 그게 아니라도 어차피 공격을 했겠지만.



어쨌든 대륙 통일의 신호탄으로 한나라를 공격했을 때 한나라에서는 예상대로 한비자를 사신으로 보내어 침공을 막으려고 하였고, 한비자는 진시황에게 가서 한나라를 공격하지 말고 조나라를 공격해야 하는 이유를 진시황에게 설명했는데




  • 첫째. 한나라는 이미 진나라의 속국이나 다름없어 한나라를 공격하면 아무도 진나라를 믿지 않게 될 거다.

  • 둘째. 한나라가 멸망하면 조나라가 즉각적으로 위나라와 동맹하여 조나라를 공격하기 힘들어진다.

  • 마지막 이유. 조나라를 먼저 공격해 위나라와 제나라를 정벌하면 한나라는 편지 한통으로 항복하게 되니 굳이 공격할 필요가 없다.


이상 3가지 이유를 들었다.

한비자는 원래 말더듬이라 달변가는 아니였지만 논리 정연한 글솜씨에 진시황은 넘어가버리고 게다가 한비자는 진나라 같은 대국이 요가를 이용하여 뇌물로 타국의 관리를 매수하는 건 법가사상을 기초로 하는 진나라에겐 맞지 않다고
요가를 욕하였다.



이를 알게 된 이사와 요가는 진시황에게 한비자는 한나라의 왕족 출신이라 진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도 없고 한비자가 이야기한 계책은 전부 한나라를 위한 계책이라고 설득하여 한비자를 감옥에 가두고 독살시켜버렸다.



여기서 만약 진시황이 한비자를 죽인 이사와 요가를 원망해 진상을 밝히고 이사와 요가를 처벌할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진시황은 이사와 요가의 계획의 실용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리하지 않았다. 대신 한비자가 죽은 이후 한비자를 사면하여 그의 정책과 사상을 이용하고 알릴 수 있게 하였다.



이사가 한비자를 죽인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견해가 달라 죽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 한비자에 대한 질투가 아니었다. 설사 한비자와 친한 친구사이였다해도 한비자가 한나라를 정벌하는데 방해가 되어 죽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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