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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

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가 진행하는고품격 시사 토크쇼 시즌 2
정치권의 정쟁 정략에서 벗어나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정책을 분석하는
살아있는 정치 비평 프로그램을 지향한다.






전원책의 이것이정치다 - 시청소감

전원책의 이것이정치다 - 시청소감
韓은 단군한국임으로 대한민국 미래지향은 단군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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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4 윤*현 조회수 294


단군한국 권력집단(제후국)들의 상징인 비파청동검이 출토되는 단군한국의 직할영토


단군한국의 국호(韓)를 사용하는 대한韓)민국이 반드시 회복해야 하는 고토이다!


단군한국의 주역은 상투를 틀고 옥을 중시하고 대한민국 권력의 상징인 봉황을 토템으로 사용한 요서지역 홍산문명인들이다


그리고 홍산문명의 뿌리가 서남해 바다지역인 마고한국(마한)이였으니 韓이란 본래 곧 현재 대한민국 지역이다!


단군왕검 천왕이 국호를 韓이라 정함은 조상의 뿌리땅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고로 현재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가 오리지날 韓인 것이다


韓한은 韓민족의 지구촌 이주와 함께 변음화되니 칸.간.안이다!




고종은 청-일 전쟁에서 청이 패하자,


500년 소중화 조선왕조의 문을 닫고


국호를 단군왕검 천왕이 건국한 나라


韓이 큰 나라였음을 알고 계승하겠다는 의미로 국호를 '대韓'으로


정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하였다! 고로 현재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에서 '황제-제'를 '백성-민'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어리석어 부패 무능 패거리 정치권의


노예가 된다면 이 또한 망국의 공범이 되는 것이니,신적


존재가 다스리는 나라가 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은 '단군한국 백성의 나라'라는 의미이니


대한민국의  지향국가는 바로 뿌리나라 단군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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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북극성'이라 칭한 단군왕검 천왕의 주요 치적

년대

나이

주요 치적

BCE 2333.10.3

38

9환족을 통일하고 천제에 즉위

BCE 2285

86

9년 홍수가 발생
(
노아의 홍수사건과 동시대에 발생)

BCE 2283

88

강화도 마리산에 제천단을 쌓음

BCE 2280

91

마리산에 오르시어 하늘에 천제를 드림

BCE 2267

104

순임금이 보낸 우(禹)에게 부루태자를 보내 오행(五行)치수법을 전해주어 중국의 홍수를 다스리게 함

BCE2241.3.15

130

붕어하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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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후(韓候)는 韓의 제후이니 고조선의 처음 국호는 韓(마.번.진韓)


한후(韓候)=韓의 제후(부단제)=번한=기자조선


한후(韓候)=연나라 부근=요서지역/위만에 망함



유방을 도운 명장 한신(韓信)=춘추전국시대에 진에 망한 韓 후손


한신(韓信)의 조상나라 韓은 단군왕검 천왕의 국호로 연나라가


단군한국의 서토를 침략할 때 중원으로 이주하여 훗날 韓 건국




한(韓)은 중국에도 존재했던 나라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시황제가 통치했던 진(秦)나라가 망하고 초(楚)나라의 항우와 한(漢)나라의 유방이 천하 패권을 놓고 다툴 때 유방을 도왔던 명장 한신(韓信)이 바로 진나라에 망한 한(韓)나라의 후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맞다. 한신의 조상 나라인 한(韓)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먼저 한을 국호로 쓴 나라이다.


실제로 이 나라는 춘추전국시대 전국칠웅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이 한나라의 건국 시점은 BC 403년이다. 하지만 한혁편에 나오는 선왕은 춘추전국시대보다 한참 앞선 시대인 주(周)나라의 왕인데, 재위 기간이 BC 827~782년이다. 그러니까 한후가 그보다 400년이나 앞선 시대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두 나라는 전혀 별개이다."



<시경(詩經)>과 <잠부론(潛夫論)>의 기록은 사실 그대로이다. 실제로 <시경> '한혁(韓奕)'편에는 '한후(韓候)가 수도에 들자 선왕(宣王)은 경계를 논하였으며 조카딸을 시켜 밤 시중을 들게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한후가 바로 한국인의 조상이다.


 <잠부론(潛夫論)>은 후한(後漢)의 대학자 왕부가 지은 문집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의 씨성(氏姓)편에 한후가 다시 등장한다. 실제로 '한후는 연나라 부근에 있었다'거나 '그 후에 위만에게 망하여 바다를 건너갔다' 등의 대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후한의 왕부는 <잠부론> 씨성편에서 한후의 후손이 위만에게 망하여 바다를 건너갔다고 기록했다. 작품 속에서 천년의 금서로 묘사한 <씨성본결>은 바로 이 '씨성'편을 모델로 설정한 것이니,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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