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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

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가 진행하는고품격 시사 토크쇼 시즌 2
정치권의 정쟁 정략에서 벗어나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정책을 분석하는
살아있는 정치 비평 프로그램을 지향한다.






전원책의 이것이정치다 - 시청소감

전원책의 이것이정치다 - 시청소감
사학계 정화-아이들에게 바른 역사를 가르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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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4 윤*현 조회수 584


역사는 정신이고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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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 환인의 아들인 환웅과 인간이 된 곰의 자손인 단군왕검이 이천년 넘게 혼자 고조선을 다스리다 고조선이 망한 뒤 어느 순간 뿅! 하고 한인이라는 고구려가 등장하여 역사를 이어간다는 역사인지 신화인지 모를 내용을 배우며 초등학생이던 어린 나는 ‘그 옛날에는 곰도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나는 이걸 배워야하나... 고구려는 어디서 등장한 것일까...’ 하며 마치 앞뒤가 잘린듯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암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역사는 암기 과목이다. 단군신화라고 불리는 이 신화는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우리에게 ‘니들은 하찮은 민족이니 일제에 복종해라!’라는 시민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단군의 역사를 그냥 신화로 치부해 버려 47명의 단군이 2,096년 동안 고조선을 다스린 역사를 왜곡한 것 이었다. 고조선과 고구려사이의 역사도 이처럼 일제가 왜곡한 것 이었다. 이 왜곡된 역사는 바로 북부여사다. 북부여사를 이해하려면 고조선을 먼저 이해해야한다. 고조선은 2,096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오랜 역사의 끝자락에서부터 북부여가 등장하는데 이 끝자락부터 알아보자.

 

 고조선은 21세 소태단군 말에 개국이후 처음으로 위기를 맞게된다. 고조선을 다스린 삼한관경제가 붕괴될 위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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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한관경제란 고조선의 넓은 땅을 진한, 번한, 마한으로 3개로 나눠 다스린 것을 말한다. 고조선 신교의 삼신사상에 의한 제도이다. 삼신사상은 한인이 우주의 조물주인 하느님을 삼신하느님이라고 불렀다. 오직 하나뿐인 절대근원인 일신을 현실세계에서 보면 삼신이 된다. 하나의 손가락이 세 마디로 이루어지듯이 하나가 완벽한 작용을 하려면 세 개가 필요하다. 그래서 3이 가장 완벽한 숫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삼신사상은 고조선의 신교인 만큼 고조선을 다스릴 때, 제사를 지낼 때 등 여러 곳에서 사용되어 우리 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역사다. 그런데 이 삼신사상을 뿌리로한 삼한관경제가 붕괴되면 많은 혼란이 올 것이다.

 

  삼한관경제가 붕괴된 과정은 상나라 정벌에 공을 세운 욕살 고등과 욕살 서우여의 권력다툼이 발단이었다. 이 후 순행 길에 옥좌 이양 의사를 밝힌 단군은 서우여에게 왕의 자리를 넘기고자 했지만 고등의 손자 색불루가 군사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해간 바람에 어쩔 수없이 색불루에게 국새를 넘겨주었다. 3.jpg

 

  이에 서우여가 마한, 번한의 군대와 연합하여 색불루에게 강력히 저항하며 삼한의 군대가 서로 싸우는 내전이 발발하였다. 그러다 두 사람 사이에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져 내전은 가까스로 종결되었지만, 자칫 삼한관경제가 붕괴될 수 있는 위기를 겪은 것이다. 그래서 색불루는 이 폐단을 없애 국정을 새롭게 하기위해 백악산 아사달로 도읍을 옮기고 진한, 마한, 번한 삼한제도는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 삼조선 체제로 바꾸었다. 이전 통치 제도처럼 진조선이 병권을 가지지만, 성소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의식이 약해지면서 빈부격차와 계급분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결국 43세 물리단군때는 삼한관경제가 완전히 붕괴되었다.

사냥꾼 우화충이 반란을 일으켜 도성을 공격하자, 단군이 피난하던 중 붕어하였다. 이때 욕살 구물이 장당경에서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평정하여 장당경 아사달에서 고조선의 제3왕조 시대가 열려 구물이 44대 단군으로 즉위하였다. 구물단군은 국호를 대부여로 바꾸었다. 그런데 부단군이 다스리는 번조선, 막조선이 똑같은 병권을 가지게 되어 중앙의 진조선과 대등한 관계가 되어 대부여는 예전의 진한과 진조선 같은 통치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고조선은 급격히 몰락의 길을 걸어, 기원전238년 마침내 47세 고열가 단군은 오가 족장들에게 나라를 맡기고 산으로 들어 가버렸다. 이렇게 고조선은 2,096년으로 그 역사를 끝냈다. 이렇게 대단군의 통치권이 약해지자 부단군과 지방군장들의 힘이 세지던 고조선말기에 요하 상류에 위치한 고조선의 제후인 고리국 출신의 해모수가 일어난다. 해모수는 기원전239년에 웅심산을 근거지로해 대부여의 강역 중에서 북녘을 중심으로 해 북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으로 북부여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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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부여는 고조선의 정신과 법통을 계승한다. 북부여가 고조선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을 때, 번조선에 전국시대의 혼란을 피해 한나라 사람들이 몰려오자 조정을 하는데 그중 위만이 숙청당할 위기에 처하자 조선인으로 변장한 뒤 부하 1천명을 데리고 번조선의 준왕에게 투항하였다. 준왕은 위만을 지금의 북경과 난하 사이인 서쪽 변방인 상하운장을 지키는 장수로 임명 했었는데, 위만이 거기서 세력을 기르고 왕검성을 쳐 준왕을 내쫓고 왕이 되었다. 막조선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위만이 번조선을 차지하자 번조선의 상장군 탁이 백성을 이끌고 한강 이남으로 이주하여 마한을 세우고 요서지역출신의 최숭이 바다 건너 남으로 내려와 막조선의 왕검성지역에 낙랑국 세운다. 이때 진조선과 막조선의 백성도 한강 아래로 이주해 진한과 변한을 세운다. 마한은 전북 익산, 진한은 경북 경주, 변한은 경남 김해 중심으로 자리하는데 이것을 남삼한 이라고 한다. 정리하면 북부여가 진조선을 계승했을 때, 요서의 번조선은 망명객 위만이 차지하고 막조선의 한반도에는 낙랑국과 남삼한이 들어서면서 한국사는 열국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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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북부여 얘기로 돌아와서 북부여는 4세 단군때 큰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 가운데 한사람인 한나라 유방의 7세 손인 무제의 침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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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9년,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가 무제 때 동방점령을 목적으로 요동지방 진출을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한나라의 무력침공은 당시 동북아시아를 장악하고 있던 위만조선과 불가피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 무제는 우거왕이 다스리던 위만정권의 번조선에 침입하여 이듬해에 왕검성을 함락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요동을 지나 북부여까지 침공한다. 이때 의병을 일으켜 군대를 물리친 영웅이 있었는데 바로 고두막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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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두막한은 졸본에서 나라를 열어 졸본부여라 하고 스스로를 동명왕이라고 칭한다. 고두막한은 47세 고열가단군의 직계후손으로 동명왕이란 칭호는 동방의 광명을 부활시킨다는 뜻으로 한 무제를 물리쳐 고조선의 영광과 위엄을 되찾고자 하는 구국의지가 있다. 졸본부여란 국호는 부여의 일족이 졸본에 도읍하여 세운 나라라는 뜻으로 고구려의 첫 수도이다. 북부여가 자칫 사라질 수 있는 큰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후 북부여의 5세 단군으로 즉위한다. 그 후 북부여는 고두막단군의 아들 6세 고무서단군에 이르러 182년의 짧은 역사를 끝내고 고주몽의 고구려로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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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부여는 한민족 고대사의 국통 맥을 바로잡는 중요한 역사의 연결고리다. 그런데 식민사학과 강단사학계는 위만정권이 고조선을 계승하고 한나라는 위만조선을 굴복시키고 점령지역의 통치를 위해 4개의 지방행정구역으로 분할하는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주장한다.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환국, 배달, 고조선을 신화로 만들고 중국이 북부여는 없애버리고 위만정권이 고조선을 계승하였고 한사군이 고구려에 설치됐다고 주장하면서 우리 민족의 구천년 역사를 잘라내며 국통 맥을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왜 북부여사를 이렇게 왜곡 시켜 놓았냐면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한 무제가 동명왕 고두막한에게 대패한 치욕을 숨기고자 의도적으로 북부여사를 누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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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 중국 대부분의 사서에서 북부여사가 사라지고 고려와 조선의 사대주의 사가들이 이것을 그대로 모방하였고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국내 주류 강단 사학자들이 이것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여 고조선의 건국 사실 만 있고 그 과정이 없듯이 북부여도 해모수의 건국 사실만 있고 구체적인 역사 내용이 없다 그래서 우리 역사교과서에서 환국, 배달, 고조선, 북부여를 쉽게 찾아보기 힘들고 왜곡된 것이다. 북부여는 우리 민족의 국통 맥을 이어가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하지만 그 연결고리를 우리 교과서에서 쉽게 볼 수 없고 왜곡 되어 앞, 뒤가 잘린 조각난 역사를 배우고 있으니 초등학생이었던 나처럼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역사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암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민족의 정신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해'하는 과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조선과 고구려를 이어가는 중요한 연결고리를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어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암기해야하는 현실이 슬프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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