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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四庫全書에 고대사의 진실이 담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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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7 윤*현 조회수 699 |
한민족 일원으로 중국지배한 청나라 四庫全書에 고대사의 진실이 담겨 있다! 한민족 고대사와 고구려에 관심가지게 됐다는 도올 김용옥의 연구자료로 추천
여신(마고).상투.석관(피라미드).햇살토기.봉황토템으로 상징되는 홍산문화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한민족은 동북아를 중심으로 유라시와 아메리카 문명의 주역이 되었다.
[산해경] 등 고대 중국 문헌에서 기록한 조선은 주로 요서를 중심으로 중국 동해안 지역에 속하는 단군한국의 서토인 번조선이다.
단군한국은 한민족문화권의 중심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황하 유역의 동이는 은나라를 세워 중국 고대문명의 기초를 놓았는데 그 문화가 대부분 주나라를 비롯한 한족에 의해 계승되어 하화문명으로 꽃피게 되었다.
동이는 오랑캐란 뜻이 아니다. 이는 후대 중국인들이 자신들을 높이고 주변을 낮추기위해 만들어 놓은 개념일 뿐이다. 중국인들은 처음에는 동이를 오랑캐로 생각한것이 아니라 뛰어난 문명을 가진 사람들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동東이란 글자는태양이 떠오르는 광명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동방은 생명·탄생·시작을 의미한다. 광명사상은 동방 한민족 사상의 원형이며, 동방의 뿌리시대에 건립된 국가도 광명사상을 배경으로 하였다.
‘이夷’ 자를 어진 사람으로 해석한 것은 “이夷는 뿌리이니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하여”라고 한 『후한서』「동이열전」에서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사서석지四書釋地』라는 책에는“3대 이후에는 화華와 이夷가 정해진 구분이 있지만 삼대 이상에는 화와 이가 정해진 구분이 없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3대는 하·은·주 시대를 말한다. 즉 중화와 동이를 구분하여 존화양이를 내세운 것은 후기의 일이며 본래는 중국에 화와 이의 구분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다.
동이는 원래 국한된 한 지역이 아닌 전 중국에 걸쳐 사방에 골고루 분포되어 살았는데 나중에 화하華夏족이 중국의 집권세력으로 등장하면서 동방에 사는 이夷를 동이東夷, 서방에 사는 이夷를 서융西戎,남방에 사는 이夷를 남만南蠻, 북방에 사는 이夷를 북적北狄이라 폄하하여 부르게 되었다.
특히 한무제 때 사마천이 중국 최초의 정사인 『사기』를 저술 하면서 동이족 역사의 뿌리부터 왜곡하였다.
청나라는 스스로를 동이라고 당당하게 내세우고 주장하였다. 청나라는 한족의 거센 반청사상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 ‘사고전서四庫全書’라는 대규모의 국가적 편찬사업을 추진, 완성하였다
『후한서』 「동이전」 서문에는 우리 상고사의 잊힌 영웅 서언왕과 서이徐夷에 대해 “3대 강왕康王 때 숙신이 다시 왔고 뒤에 서이가 왕호를 일컫고 구이九夷를 이끌어 주나라를 쳤다. 이때 서쪽으로 그 세력이 성한 것을 두려워하여 동북지방의 제후들을 나누어 주고 서언왕을 시켜 이들을 치도록 했다”라고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무원현 동쪽 십 리에 서산의 돌집으로 된 사당이 있다. 서언왕은 진陳, 채蔡 사이를 드나들면서 주궁朱弓과 주시朱矢를 얻었다. 이것은 하늘의 상서로움을 얻었다 하여 언왕이라 하였다.” 이 기록에 보이는 언왕의 탄생설화는 한민족 고유의 설화 유형인 난생설화이다. 이 난생설화는 동명왕 고두막한과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설화와도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난생설화는 중원을 뒤흔든 서이, 회이가 단군한국계라는 것을 뒷받침하며, 선진시대의 동이와 단군한국의 관련성을 입증하는 근거라 할 수 있다.
그 당시 주나라는 이미 단군조선에 방물을 바치며 상국으로 받들고 있었다. 그런데 서언왕은 단군천왕의 허락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주나라를 공격했다. 처음에는 구이가 모두 서언왕을 중심으로 주나라에 대항했는데 주 목왕이 천리마를 몰아 황급히 단군의 증표를 가져와서 보여주자 구이가 도리어 주나라 편을 들게 되었고, 서언왕은 차마 동족끼리 싸울 수 없어서 전쟁을 포기했던 것이다.
그렇게 된데에는 우리 선인들이 동이관에 이중성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공자의 춘추관, 즉 배타적인 동이관에 안주하여 ‘소중화의식’에 사로잡힌 데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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