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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인들이 고대에 고귀한 사람들로 부른 그들은 한ㅁ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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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30윤복현 조회수 938



때가 되니 감추어졌던 역사의 비밀이 환히 드러나더라!



백인.흑인 원주민들이 고귀한 사람들로 부른 그들은 한ㅁ민족


서양문명의 근원이 된 슈메르인들은 소호씨로서 배달(밝땅)한국시기에

한반도 압록강 지역에서 서진한 한민족으로 중동에 정착하여 문명건설


고대 동아시아 최고 지리서[산해경]



"소호씨는 황해 동쪽 압록강지역에서 전욱씨와 살다가 서쪽으로 이주하였다."


소호씨는 윤씨.김씨의 조상이 되며, 서진하여 일부는 감숙성에 정착하고 일부는 서진했다.


그래서 서양학자들이 슈메르인들이나 아리안족이 중앙아시에서 왔다고 말하는 것이다.


서양문명의 뿌리가 되는 소호씨가 남긴 점토판,


"우리의 왕권이 하늘(한국:당시 배달한국)에서 나왔다."


히틀러가 국수적 민족주의로 우월감을 가진 게르만족의 조상인 아리안족도 소호씨의 일파다.


그래서 히틀러는 게르만족의 뿌리를 찾아서 역사학자들을 동북아까지 보내어 연구케 했으며,


히틀러 스스로 세계로 흩어진 동방족이 동국(한반도)로 모이면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했다.




고귀한 사람들...1만년 인류문명의 어머니땅인 마고한국 땅 한반도에서 떠나 온 한ㅁ민족


백인.흑인 등 원주민들이 고귀한 사람들로 생각한 머리털이 검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한민족은


천신을 신앙하여 한반도 산 모양의 제천단(피라미드)을 만들고 제사를 지낸 사람들이고,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겠다는 홍익인간이념으로 문명이 저급한 백인.흑인 등의


원주민들을 불쌍히 여기어 한국말과 함께 한국문자(배달한국의 녹도문자가


서양문자의 기원이 된다)를 가르쳐 주고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었으며,개방성과 공존성으로 육로나 해로나 폭넓은 무역활동을 하였다.


저출산 양극화로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한반도나 세계 곳곳에 필요한 정치의식이다!



원주민들에게 한국인들은 고귀한 사람들이라는 칭송과 함께 신격화되기도 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고귀한 사람들인 한민족을 높게 생각한 것이다.


한민족의 피가 백인.흑인 원주민과 섞이였지만, 그들의 아버지.어머니가


한민족이기 때문에 혼혈화되어 갔지만 문명은 한국문명이 기반이 된 것이다.



진심으로 사랑할 때는 모두 고귀한 사람들이 되는 법이지요.


사랑할 때 보여주는 그 고귀한 모습이 본래 우리였다고 생각하세요


고향 땅을 떠난 고귀한 사람들을, 이주해 와서 살기 좋게 만든


고귀한 사람들은 그들 모두는 잊지 않았답니다.



Don`t Forget To Remember /ung by BeeGees




고대 경천애인의 정신문명을 소유한 한국의 통치집단은 단군왕검과 같이 신같은

사람들이였기 때문이다. 단군왕검 천왕이 나라를 건국하고 백성들에게 내린 훈시에서

하늘의 법칙은 어디서나 동일하다고 강조한 이유도 양심의 법칙에 기반하고 있다.



고대 환국시대부터 우리 선조들은 양심에 따라 사는 사람들을 환한 사람,즉 환인이라

부르고 스스로 환인되기에 힘쓰고자한 이유다. 그리고 고구려를 건국한 고추모 성조께서

아들인 유리에게 남긴 유언이 "도로써 다스리라!"인데,이것도 양심에 순종하여 다스려라다!


양심에 불순종하기 때문에 갈등과 전쟁과 혼란이 발생하는 것이다.그래서

새로운 시대란 고대 환국처럼 양심에 순종하여 사는 시대가 온다는 의미다.

그리고 정신혁명이고 종교혁명이고 모두 양심 안에서 실현되게 되는 것이다.





한민족의 봉황토템.옥.석관.천신신앙 홍산문명




1만년 세계문명의 어머니문명의 주역이 한민족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위 지도를 보면 만리장성이 산해관까지 표시된걸 알겠지만, 홍산문명이 발견된 만리장성 이북의 땅은 오랑캐들이 산다고 문헌에 기록해 놓은 중공이 자기들 문명이라고 날조하고 있는 홍산문명은 중국의 황허문명은 물론 이집트, 바빌론 문명보다 2000년이나 앞선 세계 태초의 문명입니다.


그렇다면 홍산문명은 중국문명은 물론 인도-유럽 등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문명의 어머니 문명이라 할 것입니다.


홍산문명은 중국 요녕지방에서 발견된 문명입니다. 그런데 그 문명이 중국(황하족)의 문명이 아니고 한(韓)민족의 문명으로 인식되는 증거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이 문명의 발견으로 중국은 황하중심 문명전파론을 철회하게 되었으며 '다중심 문화론'을 인정하고 산동에서 발견되는 북신문화,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가 바로 이 홍산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론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홍산문명이 바로 우리 한(韓)민족의 나라인 고조선의 중심지로 인정되는 요녕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한국학계의 일부에서도 홍산문명을 보고 고조선이 실제로 BC. 2333년에 건국이 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부근에서 발원한 부여와 고구려의 역사또한 고대 황화중심의 한(漢)족이 아닌 환(桓)족..즉 한(韓)민족에 가깝다는것이 중국 사학계의 터부시되는 고민입니다.

이 문명은 또한 강단 사학계를 '반도중심의 식민사관'이라 비판했던 사학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홍산문명은 황하문명보다 먼저 고대국가를 형성한 유적으로 성곽과 왕궁터가 발견되므로 고조선의 건국전에 이미 고대국가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사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에서 나오는 환국이 바로 홍산문명(BC.4500~BC.2500)이고 홍산문명은 흥륭와문화, 신락문화(BC.6000~BC.5000)을 기반으로 세워졌다는 주장이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매도할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명이 한(韓)족 문명임을 가장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매장문화입니다. 홍산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석묘계(石墓系) 돌무덤인데 돌을 쌓아 묘실을 구성하는 적석총(돌무지무덤)과 돌판을 잘라 묘실벽을 짜는 석관묘(돌널무덤)가 대능하 상류지역 요녕성 우하량유적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반면에 중국의 화하족은 땅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시신과 유물을 안장하는 토광묘가 유행하였고 주(周)나라시대에 들어서 나무로 관을 짜서 묘실을 만드는 목관묘가 유행합니다.


역사에서 홍산문명과 동일한 석묘계의 묘장법을 채용하고 있는 나라가 고조선이며 고조선의 전단계인 홍산문명은 고조선의 선조들이 이룩한 문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돌을 이용해 구조물을 축조하는 방식이 고조선 이후 부여, 고구려 그리고 백제에도 계속해서 계승되는 한(韓)민족 고유의 풍습이기도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농사 지은 한국 - 1만 5천년 전 쌀농사-영국BBC방송




~ 1만5천년전 - 대체로 황해에 바닷물이 빠진 상태. (황해는 평원)

1만5천년전에 급격하게 기온이 오르고 바닷물이 들이찼다가

다시 기온이 내려가서 바닷물이 빠진다.



1만2천년전 ~ 8천년전 - 차차 지금의 해안선까지 물이 들이찬다.

1만5천년전 이상 전에는 대체로 지금의 서해 , 남해의 얕은 바다가 평야지대.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었다.지금보다 날씨가 추웠으므로 당시 한반도 북부지방은 지금보다 추워서 사람 살기가 지금보다 더 어려웠고 위에 녹색 지역이 사람살기 제일 좋았던 곳.



1만5천년 전부터 지구기온이 갑자기 올라간다.

빙하가 녹으면서 바다물도 급격히 높아진다.

그리하여 황해(+ 남해)평원(현 충청도, 전라도,

경남 앞바다)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동하기 시작한다.


주로 한반도로 올라왔을 것인데

그 전까지 한반도에는 비교적 적은 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1만5천년전 ~ 8천년전 사이에 한반도에 사람들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그리고 세계로도 퍼진다.개를 데리고.

( 1만5천년전 이상 전에도 비교적 소수의 마문명사람들이 세계로 퍼졌는데

1만5천년전 전부터는 비교적 다수의 마문명사람들이 세계로 퍼진다.

선진(앞선)문명을 가지고.)


세계학자들에 의하면 개는 동북아에서 맨 먼저 길들여졌고

1만5천년 전부터 세계로 퍼졌다.

개는 혼자 이동하지 않는다.

개는 사람을 따라서 이동한다.

사람을 따라서.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만5천년 전부터 바다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는데

[원조 마야인들(마문명인들)] 중 상당수가 대대적으로 세계로 퍼졌다고 본다.

많은 수는 남한지역으로

일부는 북한과 만주로

일부는 북미로 (초기 인디언)

일부는 서쪽, 남쪽으로

등등등 세계곳곳으로 퍼졌다고 본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바로 [신석기 혁명]

- 1만5천년전 이상 전에도 마문명 사람들이

세계 여러곳으로 퍼져나가기는 했지만

비교적 소수였다 본다.


서양학자들은 북미 인디언이 처음 북미로 온 것이 약 1만4천년전 이라 말한다.

그들은 최초의 북미 인디언이 시베리아에서 이동해 왔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은 황해평원 마문명에서 시베리아를 거쳐서 북미로 갔다고 본다.

1만5천년전 이전에는 최소한 10만년 대체로 지구가 지금보다 추웠고

시베리아도 지금보다도 더 추웠다. 사람 살기가 어려웠다.

문명이 자생적으로 발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원래 시베리아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

마문명에서 이동해간 사람들로 본다.

그래서 인디언들의 문화는 고인돌.짚신.매장풍습 등

한반도 문화가 지배적인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위 그림들은 한국에서 고인돌, 천손신화, 난생신화가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을 대강 보여주고 있다.

중국대륙에도 한국에서 전해진 천손신화, 난생신화가 널리 퍼져 있었는데

후대에 말하자면 '중국의 자존심'에 의하여 사라진 것으로 본다.


한국은 [고인돌]의 원조국이고

[천손신화]와 [난생신화]가 모두 다 있는 곳.

난생신화 - 조상이 알에서 나왔다는 신화.

천손신화 - 하늘의 자손이라는 신화.

난생신화는 쌀농사와 함께 1만년 이상 전부터 동남아, 인도 등으로 퍼진 것.


1926년 영국 육군의 예비역 대령인 제임스 처치워드가 쓴 책

『잃어버린 무 대륙(The Lost Continent of Mu)』에 보면

인도 고대 사원에는 1만년 이상 된 점토판 책들이 있고

동방의 어머니 나라 [무]에서 인도로 문명이 전파되어 왔다고 되어 있다.



[무대륙]이란 태평양에 무슨 대륙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대에 육지였던 황해대평원과 그 마문명이 퍼져나간

평야지대들(지금은 얕은 바다)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데

[황해평원 마문명]에서 퍼져나간 [어머니 나라 - 무]의 문명 수준은 어떻했을까.

물론 이 또한 현재 정확히 알수 없지만

전편에서 다룬 [오키나와 피라미드]가 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위 오키나와(= 류큐 = 유구) 피라미드는 수심 약 20~25m 지점에 위치해 있으니

약 1만년전에 바다에 잠긴 것으로 본다.

당시 인류가 살기 가장 좋았던 황해대평원에서 보면

당시에도 오키나와는 변방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저정도 수준을 보이고 있다.

마문명의 중심이었던 황해대평원의 문명은

저보다 훨씬 더 수준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오래전 문명이라고 무조건 무시하면 안된다.

현대 과학기술로도 [고려청자]를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고조선 고유문명인 [다뉴세문경]도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1만년전 마문명이 단지 돌도끼나 갈던 정도의 문명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현대인의 선입견, 오만 때문이라고 본다.

인도는 범어(산스크리트어)가 들어오기 전에 [드라비다어]라는 것을 썼다.

드라비다어는 지금도 많은 인도인들이 쓰고 있는데

한국어와 근본적으로 너무 비슷해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그에 대한 글들도 가면 갈수록 많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인도 [드라비다어]가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어가 되지 않았나 하는 소리까지 나오는데

이는 [황해평원 마문명]을 생각하지 않은 데서 나온 착각.

사실은 1만년 이상 전에 일부 고대한국인들이 인도로 이동하고

그들의 말이 지금의 드라비다어의 뿌리로 본다.

그리고 전편에서 밝혔듯이 실제로

한국에서는 세계최초의 쌀농사 유물이 발견되었고

(충북 청원 - 1만5천년전 것.)

이 재배볍씨 중에서는 한국,

일본에서 많이 기르는 쌀인 [자포니카]쌀과 함께

현재 동남아, 인도에서 많이 기르는 [인디카]쌀도 발견되어서

자포니카와 인디카 모두 한국이 원산지 임을 밝혀주고 있다.


( 전세계 쌀은 크게 자포니카와 인디카로 나뉜다.)

즉 세계 모든 쌀의 원산지가 한국.

고대한국에서 기르던 개가 1만5천년전부터 사람을 따라서 이동하여

전세계 개들의 조상이 되었듯이

고대한국에서 기르던 쌀도 전세계 쌀들의 조상이 된 것.



때가 되어 감추어졌던 것들을 환히 드러내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우리가 문명의 원조랑께~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히틀러,"독일은 패망해야 하고 동방은 흥해야 한다!"


"동국(한반도)로 흩어진 동방족이 모이게 되면 세계는


종말(낡은 문명의 종식)과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것이다"


게르만족의 조상이 되는 아리안족의 우월성 강조한 히틀러가


동방을 강조한 이유는 아라인족이 동방에서 서진한 한민족이니까!


[고대 한국어]가 건너가서 [인도 범어(梵語)]가 되었다


현대 유럽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영어의 뿌리가 되는


인도범어란 산스크트어로 고대 한국어,즉 한반도 사투리


독일.프랑스에서 한반도사투리 억양소리가 이해가 갔다


서남해가 바다에 잠기자 마고한국인들은 한반도지역으로


가장 많이 이주를 했는데,고인돌이 한반도에서도 가장 많은


호남지역으로 가장 많이 이주했다고 본다.고로 전라도사투리는


홍산문명의 어머니문명이 되는 마고한국의 언어라고 본다.


한반도에서 중동으로 이주해간 소호씨족의 갈래가 되는


인도 드라비다족의 언어 80%가 전라도사투리가 되는 이유다.



[알타이 파지릭 고분에서 발굴된 그림]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당시 제1계급 [브라만]

동북아인의 모습.


[브라만]은 인도로 들어온 [아리안]을 말하는 것이고

7천년 전부터 이미 중앙아시아에 나타났다는 [아리안]은

고대한국인들의 이동으로 본다.

고대 인도에서는 민족에 따라서 계급이 나뉘었던 것으로 본다.

이처럼 인도에는 크게 보면 2번의 문명전파가 있다.

1) 약 1만년 이상 전의 황해평원 마문명의 전파( 쌀농사, 고인돌, 난생신화)

-> 드라비다어

2) 약 1만년전 이후의 고대한국의 문명의 전파.

-> 범어 (산스크리트어)


[ 아리안의 이동과 언어의 전파 ]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듯이 [인도-유럽어족]은 세계 3대 어족(같은 언어의 집단)중 하나.인도(산스크리트어)와 유럽의 대부분의 언어가 이에 속한다.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거의 모든 유럽언어가 여기에 속하는데 이 [인도-유럽어족]은 다른 말로 [아리안어족]이라 한다.

학계에서 [인도 - 유럽어족]이라 하지 [유럽 - 인도어족]이라 하지 않는이유는

그 언어가 유럽에서 인도로 전파된 것이 아니라

인도에서 유럽으로 전파되었기 때문.

인도 -> 유럽

[아리안]은 수천년전 유럽에 문명을 전해 준 전설적인 종족이름이고

[아리안]이 없었다면 유럽의 고대문명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히틀러는 독일인이 유럽에 온 [아리안]의 '제1 적통'이라 주장하면서

그 [아리안]의 원형을 찾으려고 멀리 티벳에까지 사람을 보낸 사실은 널리 알려져있다 하겠다.

분명히 존재했고, 영어 등 지금의 대부분의 유럽언어의 뿌리가 되었던 [아리안]

그런데 유럽인들은 그 [아리안]의 실체를 찾기가 쉽지 않았고

그저 "[아리안]이 7천년 전에도 이미 인도북부와 중앙아시아에 나타났으며

그들이 유럽으로도 퍼졌다(진출했다)."

정도의 사실을 밝혀냈다 하겠다.

그런데 고대사를 살펴보다 보면

분명히 존재했지만 실체를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이 [아리안]이

사실은 동북아시아에서 끊임없이 서쪽으로 문명을 전하러 이동해 간 사람들이라는 귀결이 나온다 하겠다.

즉 [아리안]이라는 사람들은 단순히 '어느 한 시대의 한 무리의 부족'이 아니라

수천년 동안 계속해서 선진문명을 가지고 동방에서 서방으로 이동해간 사람들의 [통칭]이라는 것.

영어에서 [오리엔트(동방)]이라는 말은 그 말 자체가 [오리진(근원)]이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다.

이 [오리]와 아리안의 [아리]가 같은 말이라는 것.

"빛은 동(東)방에서"라는 말이 있듯이.


인도 남부에서 주로 쓰이는 [드라비다어]는

1만년 이상 전의 [마문명] 때 전해진 것이고

인도 북부에서 주로 쓰이는 [산스크리트어]는

1만년전 이후의 [한문명] 때 전해진 것이라 하겠다.

- 약 1만년전 [마문명(모계사회)]가 끝나고

황해평원에서 한반도로 상륙한 사람들이 [한문명(부계사회)]을 열었다 본다.

한반도 중부, 남부 사람들이 스스로를 [마한]이라 한 것은

스스로 [마문명]과 [한문명]의 후계임을 표방한 것이라 본다.

원래는 한반도 전체를 [마한]이라 했다.

[마한]은 후대에 [마한(馬韓)]이나 [마한(摩韓)]으로도 기록되었지만

[마한]의 원래 표기는 [마한(麻韓)]이라 하겠다.

[마한]이라는 말은 한반도가 [문명]과 [문명]의 적통계승임을 표방한 것.

한국어가 인도어와 유럽어의 뿌리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어는 왜 인도어, 유럽어와 그토록 다른가.

축구의 박지성선수가 네덜란드에서 활약할 때 현지 팬들이 박지성선수를 뭐라 불렀을까.

그들이 [박지성]을 발음 할 때

지쑹빠르크, 위쏭빠르크, 위쏭빠레

이런식으로 불렀고, 물론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박지성]과 [지쑹빠르크, 위쏭빠르크, 위쏭빠레]가 같은 말이라는 얘기.

언뜻보면 완전히 다른 말들이지만 사실은 같은 말.

지금도 우리가 유럽에 가서

빨갛다는 의미의 []이라는 말을 유럽인들에게 하면

그들은 []을 [부르크]라 발음할 것이다.

[]이라는 말은 [바르크]라 할 것이다.

유럽에는 함부르크, 룩셈부르크 등 수많은 [부르크]들이 있다.

지금도 유럽에는 중요한 자리에 [레드 카펫]이라는 것을 까는 전통이 있다.

[붉은 색]을 숭상하던 흔적이라 하겠다.

태양이 떠오를 때 (일출, 해돋이) 태양의 색이 붉은 색.

- 다 뜨면 태양이 하얗게 된다. ( 은 색 )

유럽에서 붉은 색이 숭상되던 제1 이유는

[붉은 색]이 해뜨는 동방(東方)을 뜻하는 색깔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고대 유럽의 중심지들에 붉(부르크)이라는 말이 많이 붙은 이유는

고대한국인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말 중에

, 이라는 말을 많이 써서 그렇지 않나 한다.

한국어에서 [얼굴이 발그스름(밝으스름)하다]는 표현은

얼굴이 [붉어졌다]는 얘기이듯이

한국어에서는 [붉다]와 [밝다]가 혼용되는 면이 있는데

이는 우리 한국인들이 스스로

한국이 [붉은 태양] 즉 해뜨는 나라라는

[태양이 생성되는 근원국]이라는 자부심이 커서 그러한 것으로 본다.

또한 중국 황제들의 상징색에 [붉은 (빨간) 색]이 있는 것도

[붉은 색]이 문명의 근원인 동방 즉 고대한국을 상징하는 색깔이어서 그렇지 않나 한다.

예수교 경전인 바이블에 '바벨탑 전설'이 나오는데

'인류가 원래는 같은 언어를 사용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 다 그 이유가 있다 하겠다.

- 바이블의 구약이 주로 유태(이스라엘)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지만

사실은 세계 공통적인 고대사 이야기들도 상당부분 들어있다 하겠다.

어느 민족의 고대사 이야기나 대개 다 그러하듯이.

수메르인들 (어디선가 나타나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 역시

통칭 아리안의 일종으로 본다.

그들은 6천~7천 년전에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머리카락이 검은 사람들]



[5천년전에 만들어진 수메르 왕조 지도자 '구데아(gudea)'의 인물상]

수메르의 말이 한국어와 비슷하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1만5천년전부터 지구기온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바다물이 밀려들고

1만4천년 전에는 마문명이 지금의 경기, 충청, 전라, 경남의 앞바다 지역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위 지도에서도 보이듯이 경기, 충청, 전라, 경남의 앞바다는 수심이 낮다.

즉 가장 마지막에 바다물이 들이찼을 것이다.

1만4천년전부터 지구 기온이 다시 내려갔다가

1만2천년전부터 다시 지구기온이 올라가면서 바다물이 다시 들이차고

황해평원 마문명 사람들은 현 남한지역으로 대대적으로 올라온다.

(8천년전에 대강 지금 정도의 해안선이 됐다는 것이 기상학자들 이야기.)

전남 화순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

즉 8천년전 고인돌이 있는데

이는 황해평원 마문명 사람들의 이동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강원도 양양군에서 발견된 8천년전 빗살무늬토기 역시 마찬가지.

빗살무늬토기(한국)



빗살무늬 토기 (한국)

빗살무늬토기 : 한국에서 시작하여 세계로 퍼지다. <- 관련글

물론 한반도에도 8천년 이상에도 고인돌과 빗살무늬토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한반도가 비교적 높은 지대였고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아서

(당시에는 사람들이 대부분 황해, 남해 평원에서 살아서)

8천년 이상 전에는 지금의 한반도 땅에 고인돌과 빗살무늬토기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8천년 이상 전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하겠다.

한반도의 황해, 남해속에는 8천년 이상 전의 수많은 고인돌과 빗살무늬토기가 묻혀있을 것이다.

고인돌, 빗살무늬토기는 황해평원 마문명 사람들의 문화로 본다.

왜 한반도에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이 몰려있는지

왜 한반도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들이 있는지

이러한 상황이 그 이유를 알려주고 있다 하겠다.

경남 창녕 고인돌



전북 고창 고인돌



전북 고창 고인돌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강원도 양구 고인돌

- 장승(황헌만 사진, 이종철 외 3인 지음, 열화당, 1993)에서 인용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고인돌 집중지역]

고대황해평원 마문명에서 남한땅에 전해진 고인돌문화는

차차 황해도 등으로 북상한다.

대동강에서 제주도까지의 영역은

세계고인돌의 절반이 몰려있는 대단히 특수한 곳.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한반도 남부]의 고인돌문화는 차차 [한반도 북부와 만주]로 전파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고인돌 주요 분포도]

- 백두산 부근은 지대가 높아서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았고, 그래서 고인돌이 많이 발견되지 않는다.


고인돌 문화는 차차 퍼져서

한반도 북부와 만주로 전파되고

산동반도와 일본 규슈 지방으로도 전파된다.

물론 산동반도의 고인돌도 한국보다 늦은 것들이고

일본의 고인돌은 한국보다 수천년 이상 늦다.

일본의 고인돌은 약 2천수백년전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전해준 것인데

그들은 쌀농사와 금속문명도 같이 전파해준다.

그전까지 일본은 원시석기시대였고

기원전 4세기 경에 한국인들에 의해서 문명화되기 시작한다.

이것을 학계에서는 [야요이(彌生) 문명]이라 부른다.

이때가 되어서야 일본은 비로소 원시석기시대에서 벗어난다.

한국보다 최소한 수천년 늦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 지식인들의 심각한 [역사 컴플렉스]가 되어

일제 때 극심하게 한국고대사를 왜곡, 날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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