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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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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륙 소유권은 대한민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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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3윤복현 조회수 762





100년전까지 중국대륙을 지배하고



중국사에서 최대 영토를 만들어준



청나라(靑)는 신라(新羅)김씨왕족



따라서 중국대륙 소유권은 대한민국에 있다!


 

청나라는 왜 김(金)을 고집 하는가?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後金)을 세운 왕의 이름을 우리는 누루하치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들의 성(性)은 무엇인가?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府儀)의 성도 당연히 애신각라이다. “애신각라”라는 성에는 무슨 뜻이 숨어있는가?



애각(愛覺) 신라(新羅)라, 신라를 사랑하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 신라(新羅)? 삼국시대의 그 신라? 그렇다. 그 신라다. 다름 아닌 그 신라다. 청나라와 신라가 무슨 관계냐고? 다름 아니라 청나라의 왕족과 신라의 왕족은 멀리멀리 가면 그 뿌리가 같다.



우리가 오랑캐 청나라라고 알고있는 만주족이 세운 첫 나라는 청나라가 아니다. 대진국(발해)이 망한 후 북방 종족들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그중 거란(글안)족이 세운 나라가 요(僚)이고 만주족이 세운 나라가 금(金)이다. 나중 명나라를 몰아내고 중원의 패자가 되는 시점에서 이때의 전
통을 이어받아 나라 이름을 후금(後金)이라고 할 정도로 “金”이라는 이름에 집착하는데, 바로 이 金이 “심증”의 근거다. 김(金)씨는 신라왕족의 성씨이다.



기마종족(스키타이족)과 신라의 연관성



스카타이족이 바로 신라 김씨왕조을 세운 흉노




카스피해와 흑해부근의 스키타이 유물과 한반도 신라의 그것은 너무 닮아서 러시아 학자들조차 구분하기가 불가능하다. (KBS 일요스페셜.97.3) 특히 천마총에서 발굴한 금관(金冠)은 스키타이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으로 줄줄이 달린 곡옥은 지금도 흑해남부와 터키지방에서 발굴되는 스키타이 종족의 그것과 너무 똑같다!



고구려와도 다르고 백제와도 다른 이 금관의 주인공들의 강역은 카스피해 근처다.
이런 추정이 틀리더라도 최소한 동일한 문화를 뿌리고 가지고 그곳과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기마종족을 “페라스키야”라고 불렀다. 말을 탄 야만족이라는 이 뜻은 알고보면 “페라”와 “스키야”의 합성어인데, 페라는 “페르”,“펴라” 등과 같은 어원으로 고대 동,서,중앙아시아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던 “불(fire)” “벌(field)”의 뜻이다. 어떤가? 발음도 비슷하지 않은가?



평양도 이 어원에서 왔고 부여도 이 어원에서 왔다. 더욱더 신기하게는 페르-샤(터키지방의 고대제국)도 똑같은 의미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종교는 조로아스터교, 즉 배화교다. 불을 신앙하는 불종족인 셈이다.



만주족의 또다른 호칭인 “여진(女眞)족”만해도 그렇다. 그 말은 이두문자다. 즉, 한자의 음을 빌려 호칭을 적어 놓은 것이다. 이 여진이라는 말이 숙신(肅愼), 조선(朝鮮), 주신(珠申)과 똑같은 뜻이라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가? 그 말은 “밝은 온누리”를 뜻하는 말로써 마찬가지로 박달(밝은 들), 배달과 같은 뜻이라는 말을 그대는 아시는가?



단지 우리 민족(현재의 대한민국경제권을 형성하는)만이 아니고 고대 기마종족 전체가 밝은 들판을 지향해 뻗어나가는 이념을 공유했다는 추정을 할 수 있다.
경주 김씨들은 경주에 정착하기 전만해도 카스피해와 태평양 사이를 오가던 종족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황금족이라 칭하였으며 자칭 황금족들은 반도경주에서만 정착한 것이 아니고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대륙과 만주 곳곳에 정착하였다. 그들은 밝다는 뜻을 가진 金이라는 뿌리말을 지켰고 한 가지가 신라(새라불, New Land/Field)를 세웠고, 통일의 전통을 이어받고자한 후금(황금족의 후예)의 누루하치는 중원을 제패했다.


금나라(청)의 시조는 신라인이었다(KBS역사 스페셜)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보면 마의태자 혼자만이 경순왕에게 반기를 든 것이 아니라 많은 신하들이 반대를 하였다. 주전파들은 마의태자를 중심으로 강원도 인제지역을 중심으로 신라부흥운동을 했는데 그 증거들이 있다. 특히, 친신라적이고 군사적인 요충지였던 인제는 마의태자를 비롯한 신라세력이 정착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좋은 지역이었다



인제 갑둔리 어귀에 5층석탑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이 탑은 김부(마의태자)라는 사람을 위해 세워진 탑이다. 지명을 보면, 왕이 지나갔다는 지왕동이 있고 왕이 넘어 갔다는 왕터등이 있다.



금나라의 역사서인 <금사>에는 금나라의 시조가 고려로부터 왔다고 밝히고 있고, 또 <송막기문>은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인이라고 적고 있다. 함보가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의 7대조 이다. 대개 한세대를 30년으로 계산해, 한 200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건국하던 때다.



그러니까, 신라의 귀족이나 왕족의 한 사람인 김함보가 청의 전신인 금나라를 세운 시조가 되었듯이 신라부흥의 꿈은 만주대륙으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금(金)을 그렇게 고집한게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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