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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이 자유와 인권을 말살한다면 홍콩은 분리독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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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6윤복현 조회수 738

자유.인권.시장.공존의 하늘혁명시대를 위한 윤복현 칼럼


 


▲ 대민민국 민주화세력은 현재 자신들의 권력의식이 군사독재의식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인류보편가치인 자유.인권.민주.시장.공존을 억압하는 어떠한 권력과 왕조도 오래 가지 못한다!


중공으로부터 자유와 인권보호를 요구하는 100만이 넘는 홍콩시민들의 강한 저항에 결국 중국이 잠시 굴복했다. 케리 람(林鄭月娥)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은 1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범죄인 인도법' 추진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전날 밤만 해도 주중 미 대사관의 부대사를 불러 "미국은 홍콩에서 손떼라"며 압박하던 중국이 갑작스레 태도를 바꾼 데 따른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 격화 속에서 홍콩에 또 하나의 전장이 생기는 데 중국은 부담이 컸다.


특히 740만 홍콩인 중 7분의 1 가까운 103만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정도로 격앙된 홍콩의 민심이 두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홍콩 '피플 파워'의 승리다. 그러나 홍콩시민들은 잠정 중단이 아니라 폐지를 요구하고 있어서 법안추진을 다시 시도한다면 홍콩시민들의 반발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홍콩은 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주권이 넘어갔지만 자유민주-시장주의라는 홍콩과 공산당 중심의 사회주의라는 중공이라는 ‘한 나라 두 체제(一國兩制)’란 등소핑(鄧小平)의 구상에 따라 50년간 고도의 자치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을 받았다. 즉 2047년까지는 철저하게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港人治港)’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 홍콩인들이 `범죄인 인도법`에 반대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누구든 중국으로 송환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즉, 홍콩은 자유-인권-민주-시장-공존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국가정체성으로 삼는 자유대한민국이고, 공산당 중심의 사회주의를 내세우지만 천안문사태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듯이 반체제 운동을 억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인권말살이 자행되는 중공은 북한과 같은 같다는 점에서 중공과 북한은 홍콩과 대한민국이 자신의 체제를 위협하는 눈에 가시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종속시켜야하는 대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자유민주진영인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이러한 중공과 북한으로부터 가치를 공유하는 홍콩과 대한민국을 지키고 궁극적으로 중국 공산당과 북한 노동당을 소멸시키려는데 현재 미중 무역전쟁과 북핵폐기 전쟁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질을 알지 못하고 중공과 북한과 짝하여 이용당하려는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정치인들이라면 그 자들은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자격이 없는 것이고, 인류보편적 가치의 힘에 의해서 소멸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 1980년 광주 민주화 집회(분수대 중앙에 태극기가 보인다)


홍콩은 중공이 5.18광주민주화 항쟁당시처럼 군사력까지 개입시켜 자유민주화항쟁을 억압하려 한다면 중공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선언하고 세계 자유민주진영과 힘을 모아 싸워야 할 것이다. 그러면 자국민들까지 차별하며 내부 식민지화하며 소위, 중화제국주의 노선으로 나가는 중국 내부의 중국인들도 자유민주화 항쟁을 통하여 자유.민주.인권.시장.복지.공존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실현되는 새로운 중국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중국의 새로운 변화는 북한 동포들의 거주이전.표현.비밀투표를 억압하고 우상화 신격화를 통한 정신적 노예인간육성으로 세습독재왕조체제를 유지해 온 북한을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 홍콩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사한 최루탄으로 홍콩 거리가 뿌옇게 물든 모습이 마치 홍콩의 불투명한 미래를 예고하는 듯 하다.


전 지구적으로 100%실현된 것은 아니지만, 자유-민주-시장-인권-복지-공존이라는 우주보편적 가치의 힘을 이겨낼 권력과 왕조는 지구상에 절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궁금한 건 도대체 무엇이 100만 홍콩인을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시위 현장으로 불러냈을까?


<중앙일보>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홍콩 정부가 추진하는 ‘범죄인 인도법’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법은 홍콩이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지 않은 국가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2월 대만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 법안 마련의 계기가 됐다. 홍콩인 천퉁자(陳同佳)가 대만에서 같은 홍콩인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망쳤다가 붙잡혔다. 그러나 홍콩과 대만 사이엔 범죄인 인도조약이 없어 천을 대만으로 보낼 수 없었다.


이에 홍콩 정부는 홍콩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고 있지 않은 나라들을 상대로 ‘범죄인 인도법’ 체결을 추진했다. 홍콩이 “범죄인의 도피 천당이 될 수 없다”는 주장과 함께다. 말은 틀리지 않는다. 한데 왜 이리 많은 홍콩인이 이 법에 반발하고 나선 걸까?

▲ 홍콩 경찰들이 쓰러진 시민을 지켜보고 있다. 홍콩의 자유와 인권도 이렇게 쓰러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게 홍콩의 현실이다.


문제는 홍콩과 범죄인 인도를 체결하려는 국가에 ‘중국’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중국을 비판하는 반체제 인사나 인권 운동가 등이 중국으로 송환되는데 이 법이 악용될 수 있다는 생각에 홍콩인의 격렬한 반발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생생한 예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2015년 발생한 홍콩 ‘퉁뤄완(銅鑼灣, 코즈웨이베이) 서점’의 주주와 직원 5명 실종 사건이 그것이다.


당시 ‘퉁뤄완 서점 실종’ 사건을 보도했던 홍콩 언론과 외신의 각종 내용을 종합해 사건의 자초지종을 살펴보면 왜 이 시점에 이렇게 많은 홍콩인이 생업을 뒷전으로 하고 거리로 나오게 됐는지를 나름 짐작할 수 있다. 퉁뤄완 서점이 중국 당국의 타깃이 된 건 시진핑 주석의 사생활, 특히 애정 문제를 파헤친다는 책 출판을 준비하면서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이 책엔 ‘시진핑과 그의 여섯 여인(Xi and His Six Women)’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표지만 봐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 중국 내부의 온갖 소식을 전하는 홍콩의 각종 시사 잡지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이후 된서리를 맞고 있다.


세 명의 주주 중 한 사람인 리보에 따르면 또 다른 주주 구이민하이는 과거 중국 고위 지도자의 정부(情婦)와 관련된 글을 써 이미 여러 차례 경고를 받은 바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준비한 서적은 너무나 민감했다. ‘실종’의 비극이 잇따라 발생한 것이다.


먼저 3대 주주 중 하나인 뤼보가 2015년 10월 14일 갑자기 사라졌다. 중국 선전에 있는 아내의 집에서 연행됐다고 한다. 3일 뒤엔 태국 파타야 아파트에 있던 구이민하이가 낯선 남자들에 이끌려 자취를 감췄다.


10월 24일께는 거류미디어유한공사의 직원 장즈핑(張志平)이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의 아내 집에 있다가 10여 명의 사복 경찰에 의해 연행됐다. 같은 날 퉁뤄완 서점의 점장인 린룽지가 선전에 갔다가 역시 사복 차림의 사람들에 의해 붙들렸다.


홍콩인을 경악시킨 건 다섯 번째로 실종된 리보의 경우였다. 4명이 잇따라 실종된 뒤 그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정치 서적이란 게 민감할수록 잘 팔리지만 근년 들어 “감히 대륙에 갈 수는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대륙에 가지만 않으면 내가 실종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2015년 12월 30일 홍콩에서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리보의 부인 차이자핑(蔡嘉苹)은 홍콩의 친중국계 신문인 대공보(大公報)에 글을 기고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차이에 따르면 리보가 실종되는 날 어떤 이가 전화를 걸어와 시진핑 관련 책들을 사겠다고 했다. 이에 리보가 홍콩의 차이완(柴灣)에 있는 창고로 직접 책을 가지러 갔는데 이후 연락이 끊겼다는 것이다. 리보의 경우 중국을 드나들 때 사용하는 고향 방문증인 ‘회향증(回鄕證)’이 그대로 집에 있었다. 훗날 어떻게 중국에 갈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리보는 “나만의 방식”이라는 말로 더 이상의 답을 피했다.


이로써 거류미디어의 세 명 주주와 직원 하나, 그리고 퉁뤄완 서점의 점장 등 모두 5명이 2015년 10월과 12월 석 달 사이에 실종됐다. 세 명은 중국에서, 한 명은 태국에서, 마지막 한 명은 홍콩에서 사라졌다.



실종된 5명은 이후 어떻게 됐나? 가장 먼저 사라졌던 뤼보가 2016년 3월 4일 홍콩으로 돌아왔고 이틀 후 직원 장즈핑도 귀환했다. 3월 24일엔 리보, 6월 14일에는 린룽지가 다시 홍콩 땅을 밟았다.그러나 구이민하이는 3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처음엔 이들의 실종 사건 배경을 잘 몰랐다. 이들이 중국 지도부의 심기를 거스르는 금서 출판을 계획했다가 중국 당국의 괘씸죄에 걸린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추측만 난무했다.


실상은 2016년 6월 홍콩으로 돌아온 린룽지가 용기를 내면서 밝혀지기 시작했다. 린은 자신을 조사했던 중국 당국 관계자로부터 퉁뤄완 서점의 고객 명단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받고 홍콩에 왔다가 생각을 바꿨다.6월 16일 홍콩 민주당의 입법회 의원 허쥔런(何俊仁)을 찾아갔고 그날 저녁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실종 사건 전말을 폭로했다. 16일은 린이 퉁뤄완 서점 실종 사건을 폭로한 지 만 3주년이 되는 날이다.


린룽지에 따르면 그는 2015년 10월 24일 홍콩에서 선전으로 넘어가다 붙잡혔다. 이후 열 서너 시간가량 차를 타고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의 한 건물로 끌려가 자살방지 시설 등이 마련된 방에서 조사를 받았다.

▲ `범죄인 인도법` 반대에 나선 홍콩 시위대가 경찰의 진압 작전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


린은 그곳에서 가족과 변호사를 부르는 걸 포기한다는 각서에 강제로 서명해야 했고 욕설과 위협 속에 서점 경영과 관련된 각종 조사를 받았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찍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린은 기자회견에서 “만일 우리가 소리를 내지 못하면 홍콩은 구원받을 수 없다”며 “이번 일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홍콩인의 인권과 자유와 관련된 일이며 퉁뤄완 서점 직원 실종 사건은 중국이 ‘한 나라 두 체제’ 제도를 위반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린룽지는 캐리 람 정부가 중국에도 범죄인 인도를 가능케 하는 법안을 마련해 지난 3월 말 1차 심의를 하자 짐을 꾸렸다. 그리고 지난 4월 25일 홍콩을 떠나 대만으로 향했다. 법안이 시행되면 자신이 중국으로 보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로부터 사흘 뒤 홍콩에선 13만 명이 나와 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법안 2차 심의(6월 12일)를 앞둔 지난 9일엔 100만이 넘는 홍콩인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격렬한 반대 시위를 벌이기에 이르렀다.


법안이 확정될 경우 덩샤오핑이 50년 고도 자치를 약속했던 홍콩에서 두 발로 땅을 딛고 살아가는 그 어떤 홍콩인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이 100만 홍콩인을 최루탄과 고무탄, 벽돌이 난무하는 시위 현장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홍콩으로 돌아온 다른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당시 홍콩 정무사(司) 사장이 현재 홍콩특구 행정장관인 캐리 람이었지만 사건 해결에 이렇다 할 역할은 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전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인권.시장.공존의 가치가 실현되기를 바라며 안치환이 부른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듣기)도 집회에서 합창하기를 홍콩시민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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