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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중친미 고토회복]낙랑공주의 낙랑국은 본래 요서지역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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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8윤복현 조회수 507


한민족 고대사의 진실을 환하게 밝혀 주는 한민족 정통사서는 환단고기 뿐이다!

한민족 정통사서[환단고기]23대 아흘 단제 갑신원년(BC1237)

“단제의 숙부인 고불가에게 명령하여 낙랑골樂浪忽 통치하도록 하고 웅갈손을 보내 람藍국의 왕과 함께 남쪽을 정벌한 군대가 은나라 땅에 여섯 읍을 설치하는 것을 살펴보게 하였는데 은나라 사람들이 서로 싸우면서 결판을 보지 못하니 마침내 병력을 진격시켜 공격하여 이를 쳐 부셨다.”

고불가는 낙랑골을 통치하고 구이의 하나인 람국藍國 왕과 더불어 남정군을 편성해서 은나라를 정벌하고 여섯 읍을 설치했다는 내용인데 우리 역사에 너무나도 자주 등장하는 ‘낙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짚고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낙랑이라면 흔히 북한 평양이나 고구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떠 올리기 십상이지만 대명일통지에 따르면 낙랑은 다름 아닌 중국의 수도 북평을 말합니다.

<대명일통지>에 명나라 때에 영평부를 설명하는 기사에 “낙랑은 고죽군의 옛 이름요 북평군은 진나라 때 이름이며 노룡군은 위나라 때 이름이며 북연 때에는 평주와 낙랑군으로 나누어 부르더니 북위 때에는 낙랑의 이름을 바꿔 북평군이라고 했다(郡名 孤竹爲古名 北平爲秦名 盧龍爲魏名 北燕平州及 樂浪郡 北魏改樂浪爲北平郡)” 하였으니 명나라 때는 북평을 영평부永平府라고 했는데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지명이 변천되어 왔습니다. 즉 고죽=북평=노룡=평주=낙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 단제한국의 서토를 침략한 은나라를 정벌하여 단제한민족을 이주시킨 아홀 단제는 고구려족인 색불루 단제의 아들이다!

낙랑국은 위만조선이 단제한국의 서토인 번한국(마지막 부단제는 기준/기준은 한반도로 이주하여 서남부지역에 마한건국)를 장악하자, 낙랑왕 최숭이 유민을 이끌고 한반도 평양지역으로 이주하니 낙랑공주의 낙랑국으로 고구려 대무신왕 때 망했다. 북한 평양지역에서 발견된 우수한 낙랑유물들은 최숭이 세운 낙랑국 유물들이다.


연나라 사람 위만이 위장투항하여 번한국을 장악하자, 단제한국의 제후였던 최숭 낙랑국왕이 요서지역에서 한반도 평양지역으로 이주하여 재건한 낙랑국이 바로 호동왕자에게 사랑에 빠져 조국 낙랑국을 바치게 된 낙랑공주의 낙랑국이다.

아래는 평양지역에서 발굴된 우수한 낙랑국 유물들이다. 황금 바클을 보면 우리 한민족의 우수한 금제기술을 알 수 있으며, 흉노의 황금문화가 단제한국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윤복현

[보도자료]화제의 유물은 1916년 평양 석암리 9호 옛무덤에서 출토된, 길이 9.3cm의 1세기 낙랑시대 금허리띠 버클(국보 89호)이다.

정밀 판독 결과, 버클 안에 손톱보다 작은 크기로 새김된 큰 용 아가리 속에는 혀는 물론 뻐드렁니와 무수한 이빨들이 금판 혹은 금알갱이로 만들어져 붙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훨씬 작은 여섯 마리 새김 용들도 모두 아가리 속에 금알갱이 이빨을 붙이고 있었다. 발톱 달린 용의 다리 언저리에는 미세하지만 듬직한 보주 장식까지 붙여 놓았다. 오영찬 학예관은 “이빨과 다리 장식들은 직경 1mm도 안 되는 금알갱이, 금실로 일일이 짜넣은 것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 버클은 한반도에서 나온 가장 오랜 금속 공예품 중 하나다. 말발굽 모양 금판에 큰 용 1마리와 작은 용 6마리를 두들겨 드러내는 타출기법과 금실, 금알갱이를 붙이는 누금기법으로 수놓았다. 중국 신장, 요녕성, 윈난성에서도 거의 같은 모양새의 버클이 나와 실크로드 교류를 실증하는 대표 유물로 꼽힌다.<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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